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포항 송라면 보경사가 있는 산 입구
▲ 내연산 입구 포항 송라면 보경사가 있는 산 입구
ⓒ 김수일

관련사진보기


내연산 산행을 하고 내려 왔다. 시장기가 돌아서 00식당에 들렸다. 보경사 근처에 오면 가끔 이 집을 찾는 편이다. 특히 칼국수가 맛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칼국수를 시켰다. 평일이라서 손님이 없고 늘 바쁘기만 하던  주인아주머니(황위생. 71)의 수다가 옆에서 쏟아진다. 역시 40년 전통이라는 이름에 걸 맡게 구수한 국수의 맛이 좋다. 80대의 할머니가 국수를 밀고 주인아주머니가 육수를 만들어서 맛이 있다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이다.

80대 할머니가 국수를 밀고 있다
▲ 할머니 80대 할머니가 국수를 밀고 있다
ⓒ 김수일

관련사진보기


- 아주머니 국수는 누가 밉니까.
; 국수는 83세 되시는 할머니가 그 때부터 지금까지 밀고요 육수는 제가 만들지요.

- 점포 유리창에 40년 전통 칼국수라 있는데 처음부터 음식 장사를 하셨나요. 40년 동안 돈을 많이 벌었겠어요.
; 처음에 여기서 먼저 여관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여관업이 어려워지면서 칼국수만 조금씩 하다가 차츰차츰 여러 가지음식을 파는 전문음식점으로 전환 했어요. 그런데 돈도 안 벌었다고는 할 수 없지요. 처음부터 땅도 남의 땅에서 시작해서 집도 지어야 했고, 이제까지 자식들 공부시키고 겨우 땅과 건물이 남았어요.

- 요즈음은 장사 경기와 손님들의 식성은 어떻습니까.
; 요사이 나라경기도 그렇고 젊은 사람들의 식생활 습관도 바뀌어 비빔밥, 칼국수 등 전통음식을 선호 하지 않기 때문에 장사도 그럭저럭합니다. 여기는 주말이면 늘 꾸준하게 손님이 있지만 인건비, 양념값이 워낙 비싸서 별로예요.  요즈음 사람들은 식성이 까다로워서 입맛을 맞추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그러니 국수 한 그릇에도 호박 부추 감자 등 여러 가지를 넣어 맛나게 해야 합니다. 옛날 같으면 식당에서 해주는 음식이 다 그런 줄 아는데 조금만 짜도 싱거워도 야단납니다. 맛이 없으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이 고객 아닙니까.

- 원래 장사하는 집에 시집오신 겁니까.
; 아니지요. 내가 18살에 시집오니까. 농사를 지었어요.

- 18세에 시집 오셨다고요. 왜 그렇게 일찍 결혼 하게 되었습니까.
; 모두가 가난의 탓이었어요. 가난했기 때문에 그저 식구 한 사람이라도 더 줄여보자는 것이 뜻에서 어려도 신랑감만 있으면 보냈던 것이지요. 어린 나이에 뭐 알았겠습니까. 그저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었지요.

- 시집올 당시 시가의 살림살이는 넉넉하였겠네요.  
; 그것도 아닙니다. 시집 와서 보니까. 시할아버지 내외 계신 다 남매의 대가족이었어요. 농토는 남의 것 사정해서 얻어 붙이는 소작농 몇 마지기뿐인 찌들게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그 때서야 시집가면 먹는 것이라도 실컨 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도 사정없이 무너지더군요. 하루 종일 부엌일을 하면서 울기도 많이 했고 굶기도 많이 했어요. 거기다 김해 김씨 파 갈래의 종손 집이었지요.

- 종가에 시집 오셨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아주머니가 종부가 아닙니까. 그 역할을 어떻게 감당 하셨나요.
; 시집 와서 처음에는 종부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였지요. 옛날 말에 "없는 집에 제사 많고 자식 많다"고 하는 말이 있듯이 말 그대로였어요. 이너무 제사는 끝났나 싶으면 또 닥치고 또 닥치는 겁니다. 그 때마다 제수 구입비 걱정해야지요. 거기다 제사 끝나면 일일이 개인상을 따로 하여 대접하였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이런 일들을 힘이 들어도 시키는 대로 만하다가 어느 정도 살림살이를 아는 나이가 되고 제법 옳고 그른 것을 알게 되어 종부인 제가 나섰지요. 마침 집안 어른 중에 재산을 많이 가지신 분이 계셔서 찾아 갔지요. 좀 살게 해달라고 말입니다.(그 어른은 그 이후 포항 국회의원을 지냈다고 함) 그랬더니 선선히 달전과 보경사 두 군데 땅을 선택하라고 하시더군요.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 보경사를 선택했어요. 지금 여기 땅입니다.

앞에서도 얘기 하였습니다만 처음에 이 땅과 또 다른 땅에서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서 살다가 어렵게 이 자리 건물을 건축하여 여관업을 하면서 빚지면 못 산다는 생각을 하고 손님 없는 날에는 이집 저집 품도 들고 하여 무조건 열심히 살았지요. 그래서 오늘에까지 온 것입니다.

거침 없이 살아온 이야기를 쏟아 놓는 황위생 아줌마
▲ 황위생 여사 거침 없이 살아온 이야기를 쏟아 놓는 황위생 아줌마
ⓒ 김수일

관련사진보기


종부란 것과 맏며누리 역할은 참 어려워요. 종부 역할은 역할만 잘 하면 되지만 맏며누리 역할은 노력만으로 잘 되지 않더군요. 시누이 시동생 줄줄이 시집보내고 장가보내야 하는 그 경제적인부담과 정신적인부담도 컸고, 어른 모셔야지 많은 시동생 시누이들 다독이며 말없이 살려니 정말 어려웠어요.

- 이제야 시조부모님 시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시동생 시누이 모두 출가해서 각자 독립해서 사는 지금에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 지난날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니 참 보람 있었어요. 모두가 다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니까.....(어떤 회한이 있는 것인지 아줌마의 눈에 눈물이 비치고 잠시 말을 끊는다.)

- 어떤 후회 같은 것은 없으신지요.
; 지금 살아 있는 분들께는 잘 못 된 것도 바로하고 보상 해 줄 수 있지만 산다는 게 바빠서 돌아가신 시조부모님께 제대로 효도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지요.

- 이주머니 지금의 소원은 무엇인지요.
; 이제 늙은 주제에 무슨 소원이 있고 꿈이 있겠소. 그저 자식과 가족 모두 건강하고 우리 부부 건강 할 것을 바라고 살아가야지요. 어려웠던 과거도 현실도 행복해요

* 어려웠던 과거도 행복하고 현실도 행복하다는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 행복합니다. 바라보면 행복한 사람들을 아직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아직도 이 세상이 살 만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태그:#운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