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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장관 안병만·이하 교과부)가 김상곤 경기교육감에게 '시국선언 교사를 징계하라'며 내린 직무이행명령 시한일인 12월 2일이 그냥 지나갔다.

 

앞서 교과부는 지난 11월 1일 김상곤 교육감이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 등 경기교육청 소속 시국선언 교사 15명에 대한 징계를 "법원 판결 이후로 유보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자, 이틀 후인 3일 곧바로 김상곤 교육감에 대한 '직무이행명령'을 발동했다. 교과부가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이하 지방자치법) 제170조 직무이행명령을 근거로 '교사들을 징계하라'는 명령을 강제로 내린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사에선 최초로 일어난 일이었다.

 

김 교육감은 교과부의 이런 법적 압박에 같은 법으로 대응했다. 지난 18일 김 교육감은 '직무이행명령 취소청구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결정신청'을 대법원에 냈다. 우리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와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거하여 교사의 시국선언 자체가 징계 사유 또는 형사처벌 사유가 되는지 법원의 판단을 들은 후에 징계를 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대법원은 아직까지도 본 소송은 물론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이다. 12월 2일이 지나감으로써 교과부는 직무유기 혐의로 김 교육감을 형사고발하는 것은 물론 재정지원 삭감 등 행·재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김 교육감을 고발한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경기지부 회장 등에 대한 피고발인 조사도 마쳤고 곧 김 교육감을 직접 불러서 소환 조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시작된 시국선언 교사 징계... 무더기 소송 이어질 것

 

3일 현재 강원과 경북, 대전 등 8개 교육청에서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징계 절차가 완료됐다. 이미 8명이 해임됐고 17명이 정직처분을 받는 등 25명이 중징계를 받았다. 이후 경기도를 제외한 나머지 시도교육청들도 곧 징계 절차를 완료할 것으로 알려져 해직교사들은 이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무더기 소송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다. 아니, 이미 시작됐다. 먼저 교과부 징계에 대한 '징계 무효 행정소송'과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재심 청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위원회에는 해고무효 청구와 부당노동행위 고발이 이어질 것이다. 또 교과부의 집단행위 금지 위반 형사고발에 대한 형사 재판도 진행되고 있는데, 곧 1심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징계를 유보한 경기도교육감에 대한 직무이행명령 취소 소송의 대법원 결정과 직무유기 고발에 대한 검찰 기소 결정에 이은 형사 소송이 진행될 것이다.

 

이런 무더기 소송에 대해서 법원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까지 법조계의 중론은 정권과 교과부가 무리를 하고 있어 시국선언 교사들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소송의 결과가 무죄 또는 해고 무효 결정이 나올 경우 MB정권은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수없이 많은 판례와 법률가들의 의견, 교수·교총의 시국선언 등이 시국선언 처벌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이미 잘 보여주고 있다. MB정권, 교과부, 검찰과 시국선언 전교조, 교육계 개혁 세력의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 소송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보여주는 두 가지 사건이 벌어져 눈길을 끈다.

 

[시국선언 처벌이 불가한 이유①] 집단행동 교장은 처벌 대상 아니다?

 

똑같이 '국가공무원법 제66조의 집단행동금지 의무'를 적용받는 교수들은 수많은 시국선언에도 불구하고 처벌받은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시국선언을 시작한 것은 서울대 교수들이었고 전국 방방곡곡의 교수들이 뒤를 따랐다. 그런데 교과부와 검찰은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전교조와 같은 교원단체인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수없이 많은 시국선언과 집단 서명을 한 바가 있지만 이 역시 처벌 받거나 징계 받은 사례가 없었다. 그런데 검찰은 이를 무시하고 전교조 교사들에게만 적용하였다.

 

그런데 최근 교수와 교총의 시국선언에 이어 교장단들도 집단행동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요즘 우리 교육계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단연 외고 폐지 문제이다. 지난 정권에서는 침묵하던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이 앞장 서는 가운데 교과부는 외고 폐지 문제에 대한 최종안을 마련해 오는 10일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전국외국어고교장단협의회는 지난 1일 이화외고 유관순기념관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정부가 내놓은 외고 개편안에 대해 "외고에 대한 모욕과 폄하로 시작해 비현실적 제안들로 끝을 맺고 있는 교과부의 외고 개편안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이 부여하는 모든 권리를 행사해 강력 대응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성명을 발표했다.

 

교장은 되고 교사는 안 되는 이상한 대한민국 교육계

 

 

이에 앞서 외고 교장들은 지난 11월 27일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열린 '고교 체제개편 공청회'에서도 "외고 개편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퇴장하는 집단행동을 했다. 4일에는 전국 18개 사립 외국어고등학교 학부모가 가입되어 있다는 '전국외고학부모연합' 회원 2000여 명이 서울 이화외고 유관순기념에서 '외고 폐지 반대 학부모 대회'를 개최한다 한다.

 

이런 학부모들의 집단행동도 외고 교장단과 연관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일부 언론에서는 외고 교사들의 수업 거부 이야기도 나온다. 외고 폐지 문제와 관련하여 외고 교장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단 성명을 발표하고 집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학부모들까지 선동하는 꼴인 것이다.

 

지금 외고 교장들이 외고 문제를 가지고 성명을 발표하고, 집회를 하고, 공청회에서 항의하여 집단 퇴장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은 전교조가 미국산 쇠고기 수업 문제와 자율형사립고 문제 등을 가지고 시국선언을 발표한 행동 방식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교사들의 시국선언이 훨씬 얌전하고 덜 과격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교과부가 이런 외고 교장들에 대해서 '집단행동 금지 위반'이라며 형사 고발하고 파면 해임 등 중징계 한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도 없다. 왜 정부의 자율형사립고와 미국 쇠고기 수입을 비판한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은 파면 해임에 형사처벌 사유가 되고, 외고 폐지에 반대하는 교장들의 집단행동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시국선언 처벌이 불가한 이유②] 시국선언 처벌은 국제적 망신거리

 

 

두 번째 추가 이유는 멀리 전세계 방방곡곡에서 도착했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교원노조가 있다. 최근 전교조는 시국선언 교사 처벌에 대한 전 세계적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전세계 172개국 401개 회원단체, 2900만 교사들이 가입해 있는 세계 최대의 교원단체 '국제교원노조연맹(Educational International. EI)'을 통해 시국선언 관련, 세계 각국에 몇 가지 질의를 하였다.

 

이를 통해 확인한 결과 교사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선언과 서명을 하였다는 이유로 징계나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는 한 나라에도, 단 한 건도 없었다. 더 나아가 대부분의 나라들이 교사의 직위를 이용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정치활동에도 참여하고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고 있었다. 즉, 교사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여 교사들을 해고하고 형사처벌 하는 것은 MB정부가 그토록 내세우는 세계적 표준, 즉 글로벌 스탠다드에 위배되는 세계적인 망신거리인 셈이다.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스위스, 덴마크,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 세계 각국의 교원노조들이 공식적으로 보내온 자료에 의하면, 교사들의 정치적 견해 표현을 이유로 징계 또는 형사처벌하는 사례는 전혀 없었다. 나아가 거의 모든 나라에서 교원들의 정치활동을 합법으로 보장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선거운동도 자유롭게 보장하고 있다. 일부 규제하고 있는 일본도 직위를 이용하지 아니하고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교원의 정당 가입이나 정치 활동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캐나다 교원노조(BCTU)의 입장

-No criminal punishment or disciplinary action has been taken against teachers for expressing opinions that are critical of government policy.

-No law prohibits teachers in Canada from belonging to a political party.

-No law bans teachers taking part in an election campaign.

-교사들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의견을 표현하여 형사 처벌 또는 징계 받은 적이 없다.

-교사들이 정당에 가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도 없다.

-교사들이 선거운동에 참가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도 없다.

 

특히 캐나다의 교원노조 BCTU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의견을 표명했다고 징계나 처벌을 하는 사례는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교원의 정당 가입이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법도 전혀 없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심지어 선거 운동 기간 동안 휴직하고 선거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다시 교사로 복직하여 근무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덴마크, 스위스 등 유럽의 나라들은 교원의 정당 가입이나 활동을 금지하기는커녕, 많은 교사들이 국회나 지방의회의 의원으로 당선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스위스 교원노조(LCH)의 한국 정부에 대한 마지막 당부가 우리를 놀라게 한다.

 

"We appeal to the Korean authorities and responsible politicians to give Korean teachers the same rights Swiss teachers already have since 1848."

(우리 스위스 교원노조는 한국 정부와 책임 있는 정치인들에게 "스위스 교사들이 이미 1848년-지금으로부터 150년 전-부터 가지고 있는 교사들의 동등한 권리를 한국의 교사들에게도 부여할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교사들 승리' 점치는 법조계와 교육계

 

현재 진행 중인 시국선언 교사 기소에 대한 1심 선고가 곧 내려질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이와 관련하여 수없이 많은 소송과 재판이 이어질 것이다. 결과는 거의 교사들의 승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는 것이 법조계와 교육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MB정부는 언론 장악을 위하여 KBS 정연주 사장과 신태섭 이사를 강제로 몰아낸 것, 그리고 YTN 기자들을 대량 해고한 것 등이 법원에 의하여 취소당하여 망신을 당한 바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하여 아무도 책임지고 있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KBS와 YTN을 중심으로 이어졌던 방송 장악 음모가 법원에 의하여 제동이 걸린 것에 이어, 시국선언 교사들에 대한 대량 해고와 형사 기소를 통하여 교육계를 길들이겠다는 시도가 역시 법원에 의하여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큰데, 이것은 MB정권에게 또 다른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정부는 국제적 망신을 초래한 시국선언 교사 처벌과 징계를 멈추고 이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교육계와 법조계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이고 있다.


#시국선언#국제적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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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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