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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시장 식품 가게를 하는 포항시 2,3대 시의원 이순동씨 부인인 정종숙씨를 만났다. 전 시의원 부인이라서 만난 것이 아니다. 절망의 끝자락에서도 가족과 이웃을 끌어안고 다시 일어섰다는 남들의 이야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은 식품가게로 배추를 절여 팔고, 우거지를 삶아 팔고, 콩나물 천원어치도 배달하는, 잠시도 쉴 시간 없는 그야말로 몸으로 부딪치는 일입니다. 그러나 가족과 고마운 이웃이 있어 신나고 행복합니다."

 

그동안 살아 온 이야기를 해달라는 부탁에 스스럼없이 답했다.

 

"남편과 나는 중매로 만나서 결혼 했었고 주위 사람들이 시기할 정도로 하는 일마다 잘 되어 우리는 괜찮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끝까지 행운을 주지는 않았어요. 1997년 11월 IMF의 여파는 우리 가족에게 고통과 희망의 의미를 알게 해주더군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빌려 쓴 은행 채무는 IMF 여파로 인하여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이자를 견뎌내지 못하고 파산하고 말았지요.

 

어제까지 다정했던 사람들에게 하루아침에 빚쟁이라는 죄인이 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사업장, 건물, 부동산 등 재산 모두가 경매에 붙여지고 98년 8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 월세로 얻은 햇빛도 들지 않는 다락방으로 옮겨 비참하고 처절한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유치원 원장, 시의원 등 그런대로 남부럽지 않는 좋은 직함과 부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항상 밝게 살던 남편도 채무자라는 부끄러운 새직함을 갖게 되자 거의 매일 술만 마시며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느냐'며 삶을 포기한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그 때 나 역시 부끄러움과 절망감에 세상을 원망하며 살기를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거기서도 끝이 아니었어요. 엎친데덮친다는 격으로 99년 1월 몇 채권자들의 형사고발로 남편에게 구속 영장이 떨어졌지요. '빼돌린 돈이 있다. 빼돌린 땅이 있다' 등의 억울한 말이 잘 조사되어 빼돌린 사실이 없어 '강제집행면탈'죄는 무혐의를 받았지만 사채를 빌려 쓸 때 이미 건물이 은행에 융자를 받은 것과 공인이라는 직분 때문에 구속이 불가피하였다는 검사의 소견이었습니다.

 

1999년 4월 남편이 추울까봐 두꺼운 옷 몇 벌 챙겨서 면회를 갔지요. 포승줄에 두 팔이 꽁꽁 묶여서 나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빨리 돌아가라는 남편의 등 뒤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던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살아보려고 노력 하던 그 강인한 모습은 어디가고.... 그때 모든 것이 끝인 것 같았습니다.

 

남편 없이 혼자 살림을 꾸리자니 막막했지만 보험설계사 식당일 등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일하며 가족을 지켰지요.

 

 

남편이 1년이 지난 2000년1월에서야 다락방으로 돌아왔어요. 얼굴은 야위었지만 건강해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기쁨도 잠시. 우리 둘은 살기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상대시장 입구의 현재 가게 주인의 따뜻한 배려로 식품 가게를 열게 되었어요.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상우회 회원들이 몰려와 힘내라며 청소도 하여 주고, 또 이웃 분은 무료로 지붕도 고쳐주고, 00대리점에서는 물건을 외상도주고 그리고 대도동 청년회 회원들도 자주 찾아와서 잘 살아보라며 격려와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지요.

 

그 뿐만 아니라 다시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빌어주는 경노당 할머니, 함께했던 자원봉사자 분들, 좋은 물건은 다른 손님들에게 팔라며 자신은 좋지 않는 것만 사가는 인심 좋은 우리 이웃 분 그런 고마운 분에게서 힘입어 새롭게 제2인생을 시작했었어요.

 

세월이 지나고 이제 살림살이는 어느 정도 좋아 졌지만 아직 넉넉한 편은 아닙니다만 전기장판 한 장에 발만 넣고 자던 추운 겨울밤 다락방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질 번한 새벽도, 더워도 씻을 곳이 없어 공중화장실에 불안해하며 남몰래 목욕하던 순간도, 어리석게 살았다고 후회하던 순간도, 재산을 빼돌렸다는 소리에 억울해서 울던 순간도 우리의 삶을 힘들게 했던 모든 일들도 이제는 모두 안고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하고 열심히 삽니다.

 

 

우리에게 많은 재산보다 더 귀한 우리를 걱정해주고 아껴주시는 진정 귀중한 분들 바로 "소중한 이웃"이 있기에 길바닥에 앉아 웃으며 파를 다듬고 배추 한 포기를 들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배달을 갈 수 있습니다. 따뜻한 이웃 소중한 이웃이 있어 남편과 나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고 이길 수 있습니다.

 

어려운 가정환경 가운데서도 잘 자라 준 자식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남편은 요즈음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시장에 가서 물건을 해오고 8시면 상대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오후에 여가 있으면 봉사 활동 나갑니다. 이웃에서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돌려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 가족에게 보내준 따뜻한 이웃의 정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면서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다락방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정종숙씨의 얼굴에 이웃의 사랑이 배어 있다.


태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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