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7일 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MBC에서 열린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 출연했다. 이 대통령이 사전에 준비한 영상 자료에 '수질조사용 물고기 로봇'이 보인다.
27일 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MBC에서 열린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 출연했다. 이 대통령이 사전에 준비한 영상 자료에 '수질조사용 물고기 로봇'이 보인다. ⓒ 청와대

'대통령과의 대화'라고 했다. 하지만 보는 내내 불편했던 건 '대통령과의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대통령의 설교와 질책'이었기 때문이다. 토론자들은 사실상 반론권 없이 묻기만 하고 대통령은 마음껏 대답하는 게 어찌 대화겠는가. 대통령은 컴퓨터 물고기 영상까지 제공하고, 과거에 안 해본 게 없는(정말 안 해본 게 없다?) 화려한 경력담으로 자신에게 오직 구원의 길이 있다고 설교하지 않는가.

 

게다가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이든 세종시 문제이든 의견반대자를 호되게 질책했다. 먼저 4대강을 반대하는 국민들을 두고서 "상당수는 알면서도 반대하거나 아니면 모르고 반대"한다고 했다. 반대자들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거짓말하는 사기꾼이거나 아니면 알지도 못하면서 반대만 하는 용감 무식한 사람들로 일순간 몰아갔다.

 

지난 11월 26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발표에 따르면, 성인남녀 700명 중 70% 이상이 당장 4대강 사업을 중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고 했다. 70%가 넘는 절대 다수의 국민이 졸지에 사기꾼이거나 용감 무식한 사람으로 대통령에게 찍혔다. 세종시 원안 추진을 주장한 연기군수도 주민들 표만 생각하지 말고 국가 차원에서 "냉철하게" 생각하라고 질책 당했다.

 

'대화' 아닌 '군기반장'으로 나선 대통령

 

대통령은 논란의 핵심이 된 국가문제를 두고, 의견을 내고 설득도 하고 수용도 하는 "대화"를 하러 나왔다는 사실을 망각했음이 틀림없다. 대통령은 대화가 필요없는 군기반장을 자처했다.

 

국민들에겐 호된 채찍질을 하는 대통령이 1만4백 중앙부처 공무원에게는 어찌나 자애로운지. 서울 사는 공무원들의 편의를 봐서 이렇게 발언했다. "1만4백 공무원이 세종시로 내려갈 것 같은가. 점심때 식당은 좀 되겠지. 서울로 출퇴근하고 밤이면 텅 비게 될 것이다. 그 공무원들이 서울에 출장 와서 3시에 일 끝나고 나면 다시 세종시로 내려가겠는가."

 

이게 대통령이 할 말인가. 지역을 살리기 위해, 공무원들이 지역에 내려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유도해야 할 책임자가 공무원들은 아무도 안 내려갈 것이다, 출장을 핑계대고 서울에서 적당히 뭉갤 것이다, 라고 발언했다. 공무원을 무시하는 발언인가. 아니면 서울을 떠나게 될지도 모를 공무원의 처지가 애처로워서 하는 발언인가.

 

정말 1만여 명의 공무원들은 세종시로 이사할 생각이 전혀 없고, 서울출장 끝나면 적당히 서울에서 게길 것인가. 만약 출장이 끝나고도 근무지로 복귀하지않는 나태한 공무원들이 있다면, 공무원 기강을 확립해야 할 문제이지 그 걱정을 핑계로 삼아야 하는가. 그 논리대로라면, 현재 사교육 받는 사람이 많으니 사교육은 그냥 놔둬야 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서울·경기도 대통령은 아닌데도, 지역을 간단히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그 용감함에 놀랐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지방은 무엇인가. 대통령 되고 나면 간단히 엎어버릴 일이라도, 대통령 선거 때 표나 얻을 요량으로 거짓말을 해도 되는 그런 대상인가. 그래놓고도 "그 표 아니라도 난 대통령 되었을 것"이라며 지역을 쉽사리 무시하는 그 생각이 놀랍다.

 

한 곳에 모든 게 다 있어야만 효율성이 있다는 논리로 서울·경기도만 계속 확장하고, 그곳에만 정치 경제 문화 사람들을 다 쏟아 부으면 대한민국은 발전하는가. 서울·경기도를 뺀 국토의 대부분은 서울·경기도 사람들이 지방축제나 즐기고 꽃놀이나 가는 휴양지란 말인가. 지역민들은 그 휴양지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적당히 쓸고 닦으면서 주인을 기다리는 별장지기들인가.

 

걸핏하면 대한민국이 좁은 땅이라고 하는데, 제발 이 땅이라도 골고루 쓰겠다는 대통령을 만났으면 좋겠다. 한 탤런트의 말에 맞춰 대통령이 환경을 생각해 "내복 입었다"고 얘기하는데, 차마 민망해서 TV를 껐다.


#대통령과의 대화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