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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골집의 문패와 우체통
▲ 집 입구의 문패 시골집의 문패와 우체통
ⓒ 김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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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까지만 했어도 벼가 누렇게 익어 들판 가득히 출렁이고 있었는데 벌써 들판이 텅 비어 있다. 오늘 따라 바람 불고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들판이 몹시도 황량하다. 그래도 띄엄띄엄 붉게 익은 사과 밭이 보여 좋다. 시골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산의 단풍과 잎이 다진 감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빨간 감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기막힌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농촌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도시 사람들의 감성과 같을까. 그들에게도 그저 농촌의 사계(四季)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을로만 느껴질까. 인간의 감성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느낄지 모르지만 일 년 내내 노동에 찌들리는 그들에게는 아름다움은 뒤로하고 오히려 도시가 동경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요즈음 농촌에는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고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들을 수 없고 노인네들만 가난을 겨우 이기며 모여 사는 곳이 되고 만 농촌의 실정이다.

그런데 오늘 만나려는 사람은 포항시 북구 기계면 봉계 1리에 사는 젊은 농군 김주락(46세)씨다. 이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나서 한 번도 마을 떠나 본적이 없고, 오직 농민으로서 흙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하기에 찾아가는 것이다.

그 마을 사람들을 만나서 김주락씨 집을 물었을 때 쉽게 안내 받을 수 있었다. 김주락씨는봉계리 이장이며 모범 농민이라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안내 해주는 분으로부터 대충 정보를 얻고 그의 집을 찾았다. 집은 넓지는 않았지만 마당 가운데 정원이 아담하게 꾸며져 있고 시골집답지 않게 비교적 깨끗하고 잘 정리 되어 있다.

시골 집과 농기계가보인다
▲ 김주락씨의 마당 시골 집과 농기계가보인다
ⓒ 김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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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김주락씨가 농기계를 만지고 있었다.

- 수고 하십니다. 기계를 수리하시는 군요.
"추수를 끝내고 일 년 내내 부려먹었던 농기계를 닦고 기름 칠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어떤 일로 오셨어요."

-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데 이장님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 촌놈에게 무슨 이야기 들을 것이 있다고 여기까지 찾아 오셨어요. 여하간 내 집에 오신 손님이신데 방으로 들어가서 차나 한잔 들고 가십시오.

(들국화를 따서 집에 만들었다는 차를 마시며)
- 부모님은 계셔요?
"아버님은 제가 어릴 때 돌아가시고 팔순 노모만 계십니다."

-  부친 작고 이후 어머님을 모시기 위해서 여기 남아서 농사꾼이 되셨나요.
"어려서 그런 생각을 못했었지요. 조금 더 자라서 형님이 도시로 나갔습니다. 평소 장남인 형만을 사랑한다고 여겼던 나는 이때다 싶었어요. 형이 없으면 어머니 사랑을 독차지 하겠구나하는 욕심에서 여기 있게 되었지요. 어쩌면 이것이 나의 소박한 나의 꿈이었는지 모릅니다."

- 처음엔 어머님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 남았지만 청년기에 들면서 형도, 친구들도 떠난 농촌 마을에서 그들처럼 떠나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사실 여기를 떠나서 도시에 가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더군요. 그러나 그 동안 어머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마음속에 크게 남아서 어머니 혼자 두고 도저히 떠날 수 없었지요."

- 당시 가정 살림형편은 어떠했습니까.
"그 당시 어느 농촌이나 거의 그러 했었지만 참 어려웠어요. 특히 우리 집은 아버지 때부터 소작농이었으니까.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 그런데 그 가난을 어떻게 이길 수 있나요.
"흙과 작물은 절대 속이지 않테요. 거두면 거두는 만큼이나 만지면 만지는 만큼이나 보답하지요. 작은 땅이지만 그저 열심히 가꾸었더니 소득이 늘어나더군요. 그래서 열심히 일하게 되었고 차츰차츰 늘어나는 살림살이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도시인들 보다 더 잘 살지는 못하지만 마음 편하게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 결혼 이후 부인께서 여기서 살 것에 쉽게 동의 하셨나요.
"처음에는 두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여 농토도 좀 이루게 되니까 둘 다 농민으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태어나 성장하게 되니까 교육문제를 두고 먼저 마누라가 맹모삼천(孟母三遷)을 이야기하며 도시로 나갈 것을 내 비추더군요. 사실 나도 며칠간 고민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누라를 설득했지요. 고목은 옮겨 심으면 죽는 것처럼 노인네를 모시고 도시로 가면 오래 살지 못하니, 인간 도리를 못한다는 것과 배운 것이 농사일인데 무작정 도시로 나가서 어떻게 사느냐구요. 그래도 설득이 쉽지 않더군요. 하하...."

시골 마당 가운데 있었음
▲ 김주락씨의 시골 정원 시골 마당 가운데 있었음
ⓒ 김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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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아이들 교육문제는 쉽게 해결 될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누구나 그카지요. 농촌의 열악한 교육환경이라고요. 그러나 농촌의 교육환경이 도시에서처럼 다양한 학원이 부족하다는 것뿐이지 도시보다 못한 것이 없습니다. 나 혼자 생각일지 몰라도 자연의 변화를 보며 자라는 농촌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그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자연 속에서 익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자연을 닮아서 순수한 심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밥상머리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좋지요. 오히려 도시의 물질문명에서 자라나서 영악한 인간이 되기보다 인간 됨됨이를 옳게 갖출 수 있는 농촌 환경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은 윤보선 대통령 빼고는 모두가 시골 출신 아닙니까. 허허.."

- 바쁜 농사일을 하면서도 마을 이장과 면 이장 협의회 의장을 맡고 계신다면서요.
"맡아서 일할 사람이 없으니까 나 같은 사람이 맡게 된 거지요."

- 시골 이장으로서 애로 사항들이 있다면?
"사실 농촌에는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이 없습니다. 거의 노령 인구들로 채워져 있어서 문제지요. 이장을 맡아서 일을 해보면 노인네들이 '내가 어른이니까. 또는 무조건 요구하는 것이 민원인 줄 알고 막무가내로 무슨 일이든지 해 내라는 겁니다. 도시 도로는 넓고 깨끗한데 마을길은 포장조차 잘 안 되었으니 포장을 빨리하라든가. 어디 그 뿐입니까. 하수도 시설, 상수도 문제 등등. 관의 예산은 쉽게 배당되는 것은 아니지요. 말 그대로 골치 아파요. 어쩌면 골치 아픈 것 같지만 노인네들이 도시 구경하고 보면 농촌과 너무 격차가 나니까 그런 생각이 들겠지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참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 옛날 마을 공동체처럼 일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눈이 많이 내렸을 때 노령인구 마을인지라 노인들이 다치기 쉽습니다. 이때에 여러 사람이 나와서 눈치우기 공동 작업을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실 이런 일도 나 혼자의 몫입니다."

- 개인으로서, 이장으로서 앞으로 꿈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별 다른 꿈이 있겠어요. 노모를 편하게 모시면서 온 가족이 서로 쳐다 보며 항상 웃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나의 꿈이지요. 아이들이 자라서 제 갈 길로 가서라도 오고 가고 쉽게 자주 만날 수 있는 것 그 것이 나의 희망 사항입니다. 그리고 이장 일을 하는 동안에 마을 회관과 어른들이 편하게 휴식하고 즐길 수 있는 경노당을 지금까지의 타 마을의 것보다 좀 다르게 미래 지향적인 건물을 짓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 일 바쁜 사람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인사를 전하고 나오는 내게 잘 익은 감 몇 개를 쥐어 주면 잘 가라고 인사하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있는 시골 인심은 나를 감동하게 하였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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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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