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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밤 고향집에 혼자 와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 시골 좁은 방안에 가득한 향기, 그 속에서 오래전 저승으로 떠나신 어머님을 만난다. 어머니 생전에 커피를 무척 좋아하셨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음식이 바로 커피였다. 어머니는 커피를 마시기 전 반드시 잠시라도 김이 솟는 커피 잔을 앞에 두고 계셨다가 마시곤 하셨다.

 

"커피 식어요"하는 나의 성급한 목소리에 어머니는 언제나 조용하게 "얘야, 커피는 커피향부터 마셔야지 왜 뜨거운 커피부터 마시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며 웃음을 보여주셨다. 이처럼 마시는 맛보다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며 커피향이 더 좋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커피를 처음 대하신 것은 1960년대다. 내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고 돌아올 때 시레이션(Cration, 미육군휴대식량)에 든 봉지 커피를 모아서 한 상자 가져온 게 계기다.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곧 대학에 복학하였다. 그럭저럭 한 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맞아 고향집에 갔다. 어머니께서 자식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면서 가져온 귀한 것이라며 시레이션 커피를 그대로 간수하고 계신 것을 알았다.

 

어머니께 이 커피는 오래 두면 녹아버려 먹을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다시 공부하러 떠났다. 그 이후 어머니께서는 커피를 한두 잔 타서 드시기 시작하셨고 커피 향에 반해서 커피를 계속 접하게 되셨다. 김이 떠오르는 커피를 앞에 두고 손님을 맞으셨다. 혼자 계실 때는 도수 높은 돋보기 너머 남의 결혼시 편지글이나 제문(祭文)을 대필(代筆)하시거나 고전 소설을 읽으셨다.

 

어쩌다 공부하러 도회지로 떠났던 아이들이 오는 날이면 커피 한 잔을 두고 밤새껏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셨다. 공부하러 떠났던 자식들과 집에 남아 있던 아이들 10남매가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운데 어머니는 어려운 살림인데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중국 역사 이야기나 우리나라 고전 이야기를 해 주셨다.

 

지금에 와서 아쉽고 후회스러운 것은 관혼상제에 대한 예법 이야기를 흘려들었던 것이다. 당시 10남매 중 누구 하나 어머니 이야기를 제대로 들었던 자식이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쉽다. 지금까지 집안에 혼사나 제사 등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모르는 일이 생기면 형제 중 하나가 "엄마한테 물어 보고 올 테니 좀 기다려"라고 말하며 벌떡 일어서 모든 사람들을 웃기곤 한다. 그러나 10남매 모두 예의나 행동거지가 남들에게 밑지지 않는 것은 평소 이야기처럼 들려주신 어머니 덕분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커피를 남들 입맛을 고려하고 타지는 않으셨다. 뜨거운 물에 커피 세 숟갈을 푹푹 떠넣은 블랙커피를 타고 설탕은 딴 그릇에 놓았다. 그리고 본인은 설탕 없이 쉽게 마시곤 하셨다. 요즈음도 남매들이 모이면 블랙커피를 보며 '엄마 커피'라 이름 부르고 한 바탕 웃으며 어머니의 커피 이야기를 나누며 회상에 젖곤 한다.

 

내 나이 이제 어머님만큼 됐다. 고향집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자라서 살 길 찾아 집 떠난 자식들 기다리시며 커피가 식도록 밤을 지새우던 어머니 마음을 알 것만 같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도 커피향처럼 조용한 웃음이 우리 가슴에 스며들게 하시던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립다.

 

겨울 대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 더욱 커지고 밤의 깊이만큼이나 나의 마음속엔 어머님이 그리워지고 지난 날 어머니 앞 커피처럼 커피는 식어간다.


태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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