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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내년 집값이 4%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언론들은 이를 그대로 보도한 반면, 누리꾼들은 "부동산 판촉성 전망"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내년 집값이 4%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언론들은 이를 그대로 보도한 반면, 누리꾼들은 "부동산 판촉성 전망"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 선대식


"내년 집값 4%, 전셋값 5~6% 오른다."

지난 4일 대부분의 언론이 일제히 보도한 내용이다. 이날 언론은 한 부동산 관련 전문연구기관에서 내놓은 내년 부동산 전망을 지면에 그대로 옮기기 바빴다. 방송사들도 이 대열에 동참한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언론에 의해 '중대한' 뉴스로 취급된 이날 발표 내용을 수첩에 꼼꼼히 받아 적었을까? <연합뉴스> 기사에 달린 "내년 연말 예측치와 실적치가 오차를 크게 벗어나면 언론사와 정보제공자의 직위·성명 등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 "전문가들은 집값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4% 오른다는 것은 건설사들의 바람 아니냐"는 댓글은 독자들의 냉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전망이 100% 맞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부동산 전문연구기관들이 내놓은 '엉터리' 전망치와 이를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에 이미 독자들은 "부동산 판촉성 전망과 언론보도"라며 신뢰를 버린 지 오래다.

2006년 집값 4.7% 하락 전망... 현실은 집값 폭등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006년 아파트 매매가격이 4.7%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006년 아파트 매매가격이 4.7%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건설산업연구원

내년 집값이 4% 오른다는 전망을 내놓은 곳은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이다. 건산연은 주택산업연구원과 함께 부동산 분야에서 언론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곳이다.

지난 4일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2010년 건설·부동산 경기 전망 세미나'에서 김현아 건산연 연구위원은 "거시경제여건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금리 상승 등의 유동성 흡수라는 불안요인이 존재한다"면서도 "서울 도심의 공급부족, 재건축 시장의 기대감, 지방선거 등의 영향에 따라 주택가격은 4% 수준의 상승이 전망된다"고 밝혔다.

과연 이 전망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과거 전망치를 살펴보면, 그 신뢰도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건산연은 2009년 주택가격이 5%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아파트 가격은 3.3% 올랐다.

특히, 집값이 폭등해 '부동산 망국론'까지 제기됐던 2006년에 건산연은 주택 가격 하락을 예측하기도 했다. 그해 국민은행 전국 주택가격 동향조사에 따르면, 연간 전국 아파트값 상승률은 13.8%에 달했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에 따라 20~30% 이상 폭등했다고 전망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005년 말 강민석 건산연 책임연구원은 '2006년 주택·부동산 시장 전망'이라는 보고서에서 "2006년에는 주택시장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감, 정부의 시장안정화 기조, 주택시장의 주변여건 변화 등으로 주택가격 하락은 불가피하다"며 "2006년 아파트 매매가격은 4.7%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역시 집값이 폭등했던 2002년과 2003년에도 건산연의 전망치는 실제 집값 동향과 큰 차이를 보였다. 건산연은 아파트가격이 22.8% 폭등한 2002년에는 "주택 가격이 5%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고, 또한 9.6% 오른 2003년에도 건산연은 "주택 가격이 1% 상승에 그쳐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주택산업연구원이 내놓는 집값 전망 역시 '낙제점' 수준이었다. 집값이 폭등한 2006년에 "주택가격이 2~3% 정도 하락하는 등 약보합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후에도 집값 전망에 실패하자, 주택산업연구원은 결국 "집값 전망이 어렵다"며 2009년 집값 전망 제시를 포기했다.

건설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연구기관, 무비판적으로 받아적는 언론들

 집값이 폭등했던 지난 2006년, 판교신도시 임대 및 분양 아파트 청약 현장접수장에서 많은 신청자들이 몰려 도우미의 설명을 듣고 있다.
집값이 폭등했던 지난 2006년, 판교신도시 임대 및 분양 아파트 청약 현장접수장에서 많은 신청자들이 몰려 도우미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언론으로부터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부동산 전문 연구기관의 전망은 왜 실체 수치와 어긋나는 것일까? 이들 기관이 어떻게 설립됐는지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건산연은 지난 1994년 대한건설협회 부설기관으로 설립됐다. 건설협회는 건설사들의 권익옹호를 도모하기 위한 곳이다. 주택산업연구원 역시 1994년 주택건설사들의 모임인 대한주택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와 대한주택보증이 공동 출연해 설립된 곳이다.

이들 기관들이 집값 전망을 하면서 내놓는 의견을 살펴보면, 건설업체들의 태도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건산연은 '2010년 집값 상승'을 전망한 이유로 공급 부족을 들면서 "분양가 상한제 폐지가 지연되고 있어 주택공급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은 건설업체의 오래된 숙원이다.

특히, 건산연은 2006년에 입주물량이 풍부해 집값이 떨어진다고 전망하면서도, "노무현 정부는 규제완화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 건산연은 "시장기능의 회복을 위해서는 우선 투명하고 원활한 부동산 거래를 유도하여 시장의 순환문제를 해결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주택산업연구원도 2006년 집값이 하락한다고 전망하면서도 "향후 주택가격 상승 요인이 작용할 수 있으므로 강북 뉴타운 사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연구기관의 연구 내용이 건설사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남상오 주거복지연대 사무총장은 "건산연은 건설경기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주택산업연구원은 여전히 주택공급이 부족하니 주택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며 "또한 이들 기관은 정부로 하여금 미분양주택을 매입하게 했고, 최근에는 정부에 분양가 상한제 폐지를 위한 논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 비판 목소리도 크다. 서화숙 <한국일보> 편집위원은 5일 칼럼에서 "(언론이) 연구원의 성격을 소개해놓지 않아서 이름만 보면 공신력 있는 기관이 예측한 것처럼 보인다"며 "부동산에 관한 한 언론은 건설경기를 무시하지 못하는 걸로 봐도 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시장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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