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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남부지역에 대한 공세강화를 천명했을 당시, 국내언론의 논조는 수렁에 빠진 아프간상황이 일거에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에 유리할 것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후속보도는 오히려 탈레반이 공세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다국적군의 월간 사망자수는 매월 그 기록을 경신해, 아프간주둔 미 사령관이 행정부와 입법부에 병력증파를 애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동평화를 위한 노력과 핵무기 감축을 위한 의지표명으로 노벨위원회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목되었으나, 하루가 지나지 않아 파키스탄 육군본부가 무장세력에 피습당하는 등 중동정세는 미국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에 미국은 각국에 아프간사태해결을 위한 외교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이는 우방국인 한국의 300명 파병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서구사회와 한국 등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들의 재정, 군사지원은 아프간에서 탈레반세력을 제압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알카에다와 탈레반세력은 넓게 파키스탄의 아프간접경지대까지 펼쳐있고, 사실상 파키스탄은 신규 전사를 양성하는 훈련장과 은신처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은 28일(이하 현지시각) 이러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개하기 위해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파키스탄에 파견해 파키스탄정부압박에 나섰다. <CNN>의 30일 보도에 따르면, 클린턴 장관은 미국의 전형적인 '힘을 바탕으로 한 외교'를 3일간의 파키스탄 체류기간동안 구사했다.

 

클린턴 장관의 식민지 총독을 방불케하는 발언들

 

마지막 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클린턴 장관은 "2002년부터 파키스탄은 알카에다의 안전한 천국이다. 파키스탄 정부가 알카에다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그들을 체포할 수도 없다는 것을 믿기 힘들다"며 질책성 발언을 쏟아냈다.

 

하루 전에는 국립라호르대학에서 열린 학생들과의 자리에서 "여러분의 영토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싶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자유지만 좋지 않은 선택이다"라며 아프간전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 파키스탄에 극언을 쏟아냈다.

 

이는 즉각적으로 파키스탄인들의 반발로 이어졌다. 31일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30일 열린 문제의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는 클린턴 장관의 방문 중 파키스탄 북서부 페샤와르지방에서 자행된 최악의 테러(100명 이상 사망)를 염두에 둔 듯, "왜 파키스탄에 테러공격이 집중되고 있고, 테러와의 전쟁에 왜 다른 나라가 아닌 파키스탄이 더욱 집중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미국이 시작하고 마침내 수렁에 빠지고 있는 아프간전에 의문을 던진 것이다.

 

라호르대학에서는 당시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하고 있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파키스탄과 손잡은 미국이 결국 파키스탄을 배신한 전례를 든 날카로운 질문도 이어졌다.

 

이 같은 클린턴 장관의 내정간섭에 가까운 발언에 파키스탄 정치권에서는 볼멘소리도 터져나왔으나, 결국 그의 요구에 굴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장관의 비행기가 이륙한 30일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은 "단 한 명의 테러세력이 남을 때까지 철수란 없다"며 미 국무장관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국가의 국무장관이 다른 국가에게 군사적인 문제를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내정간섭이다. 현재까지 파키스탄이 '테러와의 전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온 것도 아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인물이다. 흔히 국내의 정당성이 없는 국가지도자들이 전두환의 미국 국빈방문과 김대중석방과의 맞교환 사례에서 보듯이, 외국의 비호에서 그 결여된 정당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한다. 무샤라프 전 대통령도 2001년 아프가니스탄 개전 이래 미국을 적극 지원했고, 탈레반을 비롯한 과격 이슬람세력의 파키스탄내 테러가 활발해진 것도 이 시기다.

 

현 자르다리 대통령은 무샤라프 전 대통령의 폭탄테러에 숨진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남편으로, 파키스탄의 제 1당인 파키스탄 인민당의 당수자격으로 적법하게 대통령으로 추대된 인물이다. 하지만 미 국무장관의 요구에 변명없이 굴복하는 모양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주민의 호응을 부를 수 있는 외교정책 펼쳐야

 

'식민지 총독'이라는 용어는 비식민지국가에서 쓰일 경우 수사적 어구에 가깝다. 현재 최강국인 미국의 공격적인 외교는 흔히 내정간섭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나아가서, 식민모국이 식민지국가에 전하는 명령시스템과 같다는 비유를 만들어낸다.

 

이번 파키스탄에 대한 클린턴 장관의 발언 역시 이러한 시비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고, 파키스탄의 반미 여론에 불을 붙이는 측면이 있다. 파키스탄내에 알카에다나 탈레반 세력이 테러와의 전쟁 이후 증가한 것은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국경을 통해 건너온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나, 미국의 일방외교에 대한 반발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미국이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을 빼는 것은 탈레반의 정권회복이라는 미국으로서는 괴멸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1000명에 가까운 군인의 희생을 무릅쓰고도 철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일단 아프가니스탄 주민들과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처럼 오폭, 때로는 몇몇의 테러요원들 때문에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장면은 신규 알카에다대원의 수만 증강시킬 뿐이다.

 

외교정책 역시 변화해야 한다. 이번 클린턴 장관과 같은 무례한 외교는 파키스탄 주민들의 탈레반과의 유대감만을 높일 뿐이다. 미국은 눈 앞에서 자르다리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강경한 반응에 도취되기보다는, 파키스탄 주민들의 마음을 끌어올 수 있는 그러한 외교를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힐러리#파키스탄#알카에다#탈레반#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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