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명절이 지났는가 싶더니 여기저기서 힘들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학생들이나 직장인은 더 쉬고 싶고, 추석 때 여러 가지로 분주했을 아주머니들은 "어디 안 아픈 곳이 없다" 며 어김없이 명절증후군을 호소합니다.

여러분도 다들 알고 계시듯이 명절 증후군의 가장 큰 이유는 차례 음식 준비를 정점으로 한 음식 준비와, 10분 이상 편하게 앉아 쉴 수도 없을 만큼 계속되는 각종 일 때문입니다. 명절 연휴마다 방이나 텔레비전보다 부엌의 가스레인지 앞에 서 계신 때가 더 많은 어머니와 작은어머니들께 "쉬지도 못해서 어떡하냐" 고 걱정할 때마다, "1년에 두 번 있는 일이니까 괜찮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모이겠느냐" 고 말하기는 하지만 힘들어 보이는 표정까지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명절 증후군" 못지 않게 심각한 것은. 이른바 "큰집 증후군" 이 아닐까 합니다. 명절 때마다 차례 음식을 먼저 준비해야 하고 아쉬움 속에 친지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가장 늦게까지 집안 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저희 집은 큰집입니다. 명절 연휴마다 찾아오는 가족이 모이는 큰집들은 연휴가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차례 음식에 쓸 재료들을 먼저 준비하고 집안을 청소하면서 멀리서 오는 식구들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몇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식구들이기 때문에, 반찬 하나에도 신경을 쓰다 보면 차례 비용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도 만만치 않은 경비가 들곤 합니다.

친지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면 다시 집안을 청소하고 일상으로 오랜만에 친정을 방문하는 누나들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하루 정도 집에 머물다 누나들이 돌아가고 나면 시간은 어느덧 연휴 마지막날 저녁이 되어 있곤 합니다.

그러나 이제 "큰집 증후군" 도 이번 추석을 마지막으로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매번 저희 집에서만 지내는 차례를 저희 집에서만 지내지 않고, 4명의 작은 아버지들이 돌아가면서 지내기로 합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결정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친지들이 각각 다른 지역에 떨어져 지내다 보니 명절 때의 살인적인 귀성 귀경 전쟁을 피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연휴가 길다면 오고가는 차량이 분산되어 길이 덜 막히지만, 이번과 같이 짧은 연휴에 길이 막힐 때면 장거리 운전에 지친 친지들이 피로를 느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잠에 빠져드는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명절에 번갈아 차례를 지낸다면 그동안 쉽게 가볼 수 없었던 다른 친지들의 집도 자연스럽게 방문할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동안 가끔 전화로만 안부 인사를 하던 것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였지요.

물론 쉽게 결정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아무 문제없이 해오던 일을 왜 갑자기 바꾸느냐" 는 말도 있었고, " 아무리 그래도 명절은 큰집에서 지내야 한다" 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비록 몇 년에 한번이라고 해도, 명절을 준비하는 집에서는 경제적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결혼 후 지금까지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묵묵히 명절 때마다 온갖 준비를 했던 어머니에게 이제는 "쉼" 을 드려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명절에는 돌아가면서 차례를 지내고,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제사는 기존 대로 저희 집에서 지내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 회의 덕에 저희 집에서만큼은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이 사라질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제사 다음날 힘들다며 아무 일도 못하시는 어머니의 약을 사러 갈 필요가 없겠지요. 벌써부터 12월에 있을 할머니 제사가 궁금해 집니다. 추석 때의 회의가 거짓말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해 봅니다. " 이제 명절 전날에 좀 쉬어도 되겠다" 는 어머니의 말씀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던 추석 명절이었습니다.


#.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