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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에서 시골로 병아리 두 마리 가져온 까닭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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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전날 직장동료가 제게 병아리(병아리치곤 좀 큰 녀석들) 두 마리를 주었습니다. 제 고향이 시골이니까 이번 추석 때 가지고 가라고요. 도시에서는 도저히 키울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한때 그런 적이 있습니다. 병아리 한 마리에 몇 백원씩 주고 사서 아파트 베란다나 육교 등 높은 곳에서 던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지요.

여하튼 직장 동료의 중학생 딸은 그런 재미로 병아리를 사들였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 닭이라고 불릴 만큼 키워놓은 걸 보면 말이지요. 제가 그 병아리 두 마리를 가져가게 된 건 녀석들의 생명이 가여웠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공해와 함께 힘들게 살아가는 것보다 자연 속에서 사는 게 더 좋아 보였습니다. 시골에서는 현재 소와 염소, 개를 키우고 있고 과거에 토끼, 칠면조, 돼지, 닭, 오리 등도 키워봤으니까요.

시속 110km 저항 견디며 시골로 옮겨간 두 마리 닭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1일 '병아리 두 마리 시골 이동 대작전'이 펼쳐졌습니다. 차 안에 실으면 냄새나 삐약거리는 소리와 날갯짓으로 인한 이물질 등이 우려돼 차 지붕 위에 묶었습니다. 서해안 고속도로니 최대 시속 110km의 바람저항을 견디도록 잘 묶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반응이 참 재밌더군요. 차 지붕의 사과상자를 보고는 너나 할 것 없이 쳐다보고는 웃는 것입니다. 사람들 딴에는 아마 차가 작아서, 트렁크가 여유 없어 차 지붕에 사과를 싣고 가는 줄 알았을 겁니다. 사람들 시선이 이럴 줄 미리 알았더라면 굵은 펜으로 '병아리 수송중'이라고 쓸 걸 그랬습니다.

여하튼 시속 110km 속 병아리 수송 대작전은 이렇게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제부터 무럭무럭 자라나는 일만 남았습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식품 먹어가면서 나중에 알이라도 낳으면 좋겠지요.

 이 안에는 병아리 두 마리가 들어 있습니다. 절대 상주사과가 아닙니다.
이 안에는 병아리 두 마리가 들어 있습니다. 절대 상주사과가 아닙니다. ⓒ 윤태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가 아닌 실험실에서 엄마의 마음으로 길러낸 병아리

병아리들을 시골에 그렇게 놓아두고 지난 3일 성남에 올라왔습니다. 그날 직장동료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병아리는 학교 앞에서 몇 백원 주고 구입한 것이 아니라는군요. 직장동료가 여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없었으므로 당연히 학교 앞에서 몇 백원 주고 구입한 것으로 저는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랍니다.

직장동료의 중학교 2학년 딸이 모 영재교육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과학실험 중에 병아리 부화하는 학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학교 교과과정에 다 나오는 것이지만 여건상 학교에서는 부화실험을 하기 힘든 게 지금의 교육 현실입니다.

따라서 이 딸은 계란 두 개에 자신의 이름을 써 놓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며 몇 날 며칠 부화하기만 기다린 것입니다. 비록 딸 자신이 두 계란을 몸으로 품어 병아리가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엄마와 같은 모성 감정으로 이 병아리들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었던 겁니다. 사람으로 치면 입양한 아이들을 키울 때 '가슴(마음)으로 낳았다', '가슴(마음)으로 품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일 겁니다.

하루 이틀은 상자 안에 넣고 집안에서 키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옥상으로 올렸습니다. 그러다가 한때는 이 딸의 외가로 가서 이모가 돌봐준 적도 있습니다. 외가는 아파트이므로 병아리 키우는 여건이 더 좋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시속 110km를 뚫고 강행한 병아리 수송 작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시속 110km를 뚫고 강행한 병아리 수송 작전이었습니다. ⓒ 윤태

중학생 딸 키우다 외가 갔다가... 결국은 시골행

그러다가 다시 이 병아리들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딸 입장에서 병아리는 엄마의 마음이 맞는데 직접 키우려다 보니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엄마 아빠가 맞벌이고 '병아리 엄마'인 딸은 아침 일찍 나가 새벽에 들어오니 마땅히 돌봐줄 상황이 안 됐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비교적 큰 강아지 집을 구해 옥상에 올렸고 물과 모이를 주고 하루 종일 비워 놓고도 녀석들이 스스로 잘 자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되니 병아리라 부르기엔 너무 크고 닭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어정쩡한 크기가 된 것입니다. 먹는 양과 똥이 많아지니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 것이죠. 게다가 직장동료의 다리도 조금 불편하고(통풍) 딸은 학업에 너무 바빠 병아리에 대한 마음은 굴뚝같은데 막상 돌보려고 하면 실천이 잘 안 되는 것입니다. 몇 날 며칠 아빠와 딸이 고민을 하다가 시골 저희 집으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학교 앞에서 몇 백원 주고 산 병아리와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부화 전부터 지켜봤으니 더욱 더 애정이 담겨 있음은 사실입니다. 학교 앞 병아리들은 상당수 온전치 않은 것들이 많아 박스 안에서 하루 이틀 푸덕거리다가 죽거나, 로드킬 당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 학교 앞 몇 백원짜리 병아리 판매는 그동안 달갑지 않았습니다.

상자 안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병아리들, 그것을 어떻게든 팔아보겠다고 나서는 장사, 책임감과 의무감보다는 눈에 보이는 귀여움과 호기심 등으로 선뜻 구입했다가 며칠만에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경우를 수없이 봐왔거든요. 생명을 경시하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지요.

그렇잖아도 어제 기사에서 다 죽어가는 토끼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것을 어떤 시민기자가 사진 찍어 올려 논란이 되고 있는 걸 봤는데,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작고 귀여운데 너무 커버리니 감당할 수 없어 공원이나 산 속 심지어 산 채로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어제 그런 기사를 접하고 나서 이 중학생 딸의 닭 두 마리 '탄생의 비밀 재조명'을 하고 나니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 느껴지더라구요. 동료의 딸이 기특하게까지 느껴지더라구요. 시골에서 낳고 자라, 짐승이든 곤충이든 많은 생명들과 함께 자라온 저로서도 이번 사건이 제 정서에 맞아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구요.

여하튼 실험실에서 탄생한 두 마리 병아리, 엄마의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을 동료의 중학생 딸을 생각해서라도 두 녀석들은 반드시 튼튼하게 길러야겠습니다. 앞으로 몇 개월 후 완전하게 어른 닭이 된 두 녀석들의 활발한 모습을 다시 동영상에 담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마당에 풀어놓은 병아리 두 마리, 자연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것입니다.
앞마당에 풀어놓은 병아리 두 마리, 자연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것입니다. ⓒ 윤태

 시끌벅적한 도시에서 스트레스 받으며 사는 것보다 시골이 더 편할겁니다.
시끌벅적한 도시에서 스트레스 받으며 사는 것보다 시골이 더 편할겁니다. ⓒ 윤태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 함께 올립니다.



#병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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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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