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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부터 아이가 부모에게 저항하기 시작

"아이가 캠프 갔다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방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거는 거예요. 캠프기간 동안 보지 못했던 엄마에게는 별 관심도 보이지 않은 채 말이죠."

품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어려서는 그저 부모의 치마폭 안에서 빙빙 돌던 아이가 어느새 자라서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더 이상 부모가 없어도 불안해하지 않으며, 부모에게 매달리기보다는 부모와 떨어지기를 더 선호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한편으로 육아의 부담을 덜게 되었다는 안도감에 즐겁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의 행동이 서운하기도 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아이가 부모에게 저항하기 시작한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던 애가 부모의 지시를 거부하고 때로는 거짓말도 슬슬 한다. 부모의 지시를 벗어나 제 뜻대로 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법이다. 그리고 집이나 가족 행사(휴가, 외식 등)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더 중시하고 급기야는 부모와 얼굴 마주대하기를 회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말 아이는 이제 독립적인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가기 시작하는 것일까?

또래하고만 지내는 것, 겉과 달리 부작용 많아

우리는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자기 또래와 사귐으로써, 사회성을 기르고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래서 아이가 자기 또래들과 잘 사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한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의 생각과 정반대이다. 오히려 아이들이 자기 또래들하고만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아이의 사회성은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어른이 없이 또래들끼리만 함께 지내는 아이들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포함되어 있는 기성 사회(가정이나 학교 등)에도 잘 적응하지 못한다. 패거리를 지어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의 사회적 적응 행태를 보면, 또래만의 관계가 건전한 사회성을 유도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아이들은 아직 미성숙한 인격체이다. 자기들끼리 모였을 때,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성숙한 방식보다는, 자기중심적이고 충동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물론 겉보기에는 자기들끼리는 잘 어울리고 똘똘 뭉쳐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결속 이면에는 학대와 강압과 폭력과 왕따 시키기 등 부정적인 행동 방식들이 숨어있다.

또래 집단에 대한 애착은 아이들로 하여금 부모를 멀리하게끔 만든다. 어떤 때는 미친 아이처럼 또래와의 만남에 집착한다. 자기를 십수 년 길러준 부모보다도 또래 집단에 더 강한 애착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는 서운하고 원망스럽기조차 하다. 이러한 아이들의 경향을 또래 지향성이라 한다. 현대 사회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아이들의 속성이다.

더 심한 경우는 부모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부모가 보기 싫다고 악을 쓰고, 부모의 말끝마다 토를 달며 대들고, 부모의 지시에 무조건 불응한다. 툭하면 집을 몰래 빠져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밤늦게 집밖을 배회한다. 외출을 금지 시키면 자기 방에 틀어박혀 시위를 한다. 부모로서는 열불 터질 노릇이다.

부모와 함께 밥을 먹는 것조차 못 견뎌 할 정도로 부모를 외면하는 아이 앞에서 부모는 더 이상 따뜻하고 평온한 감정을 갖기가 힘들다. 그저 '웬수덩어리'라는 증오의 딱지와 한숨만이 나올 뿐이다. 그렇게 사랑스럽고 부모를 잘 따르던 아이가 어느덧 괴물로 변해버린 것이다.

아이가 자기 또래와 어울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현상이어야 한다. 즉 음식으로 치자면 주식이 아닌 부식이라는 얘기다. 아이의 궁극적 애착은 또래집단이 아니라 부모와 가족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또래 집단에 집착하는 이유

하지만 이 시대는 부모와 자식, 어른과 아이 사이의 애착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식사를 하고,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잔치를 벌이고, 집안일을 어울려 같이 하고, 한가할 때면 냇가에서 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으면서 인생살이에 대한 교훈을 듣는 것과 같은 일들을 경험하기 힘든 시대다. 부모는 그저 열심히 돈을 벌어 아이의 학교 점수 올리는 데만 전력 질주해야 하는 그런 시대다.

성적표는 엄마의 아이에 대한 태도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아니 이게 뭐야. 어떻게 이런 점수를 받을 수 있지.' 아이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도 커서 엄마는 아이를 무시(혹은 멸시)하게 된다. 아이는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엄마의 표정과 마음이 아이에게 접수되는 것이다. 부모는 자신을 한심하고 나쁜 아이로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을 미워한다고 믿기 시작한다.

아이의 가장 큰 목표는 부모의 관심과 지지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존중하고 지지해주기를 원한다. 그러한 지지와 관심을 얻기 위해 어려서는 부모의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이 부모로부터 관심과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믿게 되면, 아이는 애착의 결핍을 해결해 줄 다른 대상을 찾게 된다. 가장 손쉽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또래 집단이다.

부모의 관심과 지지가 자기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조건(학교 성적, 부모의 화풀이 대상, 변덕스런 부모의 대응 등)이라는 점을 숙지하면서부터 아이는 부모로부터 벗어나 또래집단으로 향한다. 거기서는 손쉽게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그 아이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 아이들이 원래 그렇듯이 충동대로 함께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아이가 부모로부터 또래 집단으로 이동하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다. 아이의 성적에 대한 부모의 극단적 실망, 부부 사이의 원활하지 못한 관계로 인한 부모의 갈등과 이혼, 경제적 어려움이나 질병으로 인한 아이에 대한 무관심과 방치 등, 아이의 애착 욕구를 좌절시키는 상황들이다. 일단 부모에 대한 의존과 신뢰가 무너지고, 아이의 애착이 또래 집단으로 이동하고 나면, 아이는 부모에 대한 극단적인 분노와 반항을 보이며 공격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일종의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자기를 버린(애착관계를 끊어버린) 부모에 대한 복수 말이다.

또래집단, 인정받을 수 있는 행동 요구... 부모는 대가없는 사랑 줄 수 있어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회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에게 부모가 원하고 사랑하는 바로 그런 존재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잘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아이는 때때로 부모에게 싫어할 만한 성격과 행동을 내보일 수도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모의 사랑과 지지는 안정적이고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아이가 확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러한 무조건적 사랑은 또래들에게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또래집단은 끊임없이 아이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래에 집착하고 있는 아이를 부모에게로 이끌어 오기 위해서는 일단 또래집단과의 단절(이사 혹은 부모와 여행 등의 환경 조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목표는 아니다. 진짜 목표는 부모와의 애착 관계의 회복이다. 또래집단과의 애착관계가 끊어지면 아이는 다시 애착 결핍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아이는 절망적인 분노와 공격성으로 부모를 대할 것이다.

이때 부모의 대응 자세가 중요하다. 절대로 아이에게 분노를 보여서는 안 된다. 아이를 제압하려 해서도 안 된다. 아이의 절망에 동참(감정적 동의)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의 좌절된 욕구에 대한 이해와 동의, 아이를 향한 정서적 지지와 존중심의 유지가 필요하다. 부모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에 대한 감정적 단정 - 너 같은 애는 정말 처음 봤다, 인간이 왜 그 모양이니 등 -을 마음에 품지 말아야 한다. 부모는 변함없이 아이의 (감정적)지지자로서 남아 있어야 한다. 아이가 절실히 요구하는 것은 지적인(혹은 도덕적인) 동의가 아니라 심정적 동조와 이해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자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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