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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길 올레 피로 달래 줘
 

 서귀포시 시흥리 알오름에서 내려와 농로로 접어드는 올레는 흙길이었다. 올레걷기가 아니었더라면 언제 이런 길을 걸어 볼 수 있었을까. 전봇대와 평행을 이룬 돌담, 그 돌담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을 야생화의 흔들림, 돌담을 칭-칭- 감고 있는 나팔꽃의 정겨움은 길을 걷는 올레꾼들에게 피로를 달래 주었다.

 

 농로 한켠에 자리 잡은 묘지 앞에 올레꾼을 위해 준비해 놓은 빈 의자가 평화롭게 보였다. 묘지와 빈의자, 삶과 죽음의 영혼이 함께 한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샤방-샤방- 자연풍 올레꾼 쉼터

 

 11시 30분, 슬슬 배가 고파 오기 시작했다. 이때 나타난 울산아줌마가 운영하는 노천 쉼터는 많은 올레꾼들에게 인기였다. 특별하게 분위기가 있거나 잘 단장된 쉼터는 아니다. 그저 5평 남짓한 공터에 탁자 서너 개, 그리고 의자는 컨테이너 박스가 전부다. 하지만 이 노천 싐터 매력이라면 고목나무 뒤에 돌담과 어우러진 제주 들녘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곳의 최고의 프리미엄은 사방에서 샤방-샤방- 불어오는 자연풍을 맛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길을 걷는 나그네들에게 노천휴게소는 최고의 휴식처가 될 수밖에.

 이날 동행한 낯선 동무가 준비해 온 주먹밥은 인기였다. 노천 쉼터지기 울산아줌마와 강아지를 데리고 온 아줌마와 아이에게 주먹밥을 나눠주고 나니 내 몫은 서너 개. 낯선 사람들끼리 이뤄지는 물물교환 인심이 넉넉했다.

 

 

 

 종달리 마을 만추... 넉넉함의 여유

 

  12시 10분, 종달리 마을 안길로 접어들었다. 폭이 2m정도 되는 종달리 마을 올레는 아기자기하다 못해 눈물 나도록 소박한 풍경이었다. 돌담너머 익어가는 대추와 단감나무에서 추석이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한 낯선 동무 경상도 아줌마는 돌담너머에 손을 내밀더니 반쯤 익어가는 대추를 뚝 따서 입에 물었다. 아마 대추의 달콤한 맛은 길을 걷는 자에게 에너지를 제공했으리라.

 조롱박과 풋호박이 돌담아래 영그는 계절, 종달리 마을 올레의 가을은 만추 그 자체였다. 집의 평수보다 우영밭의 크기가 커서 호박이며 고추, 들깨를 심어 자급자족 하는 모습이 강남 사는 부자보다도 넉넉하고 풍요로워 보였다.

 

 

 

 낮은 돌담, 대문 없이 소통 이뤄 

 

 더욱 놀라운 것은 종달리 사람들은 대문 없이 산다는 것이었다. 낮은 담은 물론 대문이 없으니 이 마을 사람들이야말로 옆집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충분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높은 담과 철조망, 비밀번호 설치, 보안서비스 장치까지 해놓고 살아가는 도심 사람들의 생활에 비하면 종달리 마을이야말로 파랑새가 사는 나라가 아닐까?

 

 그리 넓은 정원은 아니지만, 미니 정원을 만들어 화초를 가꾸고 마을 자투리땅에도 여지없이 코스모스며 나팔꽃, 꽃무릇, 채송화 꽃씨를 뿌려 올레 길을 단장한 여유는 단아하면서도 풍요로운 미덕의 철학이 숨어 있었다.

 

 느림, 여유, 소박한 3.5km 길...파라다이스 올레

 

 종달리 마을 삼거리에 접어들었다. 고목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이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삼삼오오 모여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 '과연 우리에게 행복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순간이었다.

 

 사실 도심지 놀이터는 아주 값이 나가는 놀이시설을 설치해 놓았지만 정작 놀이를 즐길 아이들은 모여들지 않는다. 태어나면 시작되는 조기교육과 특성화교육으로 놀이터에서 뛰어놀 시간이 없는 도심 아이들에 비하면 자연 속에 묻혀 건전한 몸과 마음을 키워 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던 교육의 파라다이스가 아니었던가?

 느리게, 여유롭게 걸었던 종달리 마을 3.5km 올레걷기, 그 길은 느림과 소통, 여유, 그리고 도심지에서는 느껴보지 못할 소박한 올레길이었다. 그곳이야말로 '파랑새가 사는 나라' 같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주의 소리에도 연재됩니다>


태그:#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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