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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신화화하다

 

.. 그를 지나치게 신화화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또 그를 지나치게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  《이현식-곤혹한 비평》(작가들,2007) 11쪽

 

 앞에서는 '신화화하는'처럼 적지만, 뒤에서는 '깎아내리는'으로 적습니다. 앞에서 쓴 한자말을 생각한다면, 뒤에서도 '평가절하(平價切下)'나 '무시(無視)' 같은 말을 썼음직하지만, 뒤에서만큼은 잘 적었습니다.

 

 ┌ 신화화 : x

 ├ 신화(神話)

 │  (1)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

 │   - 그것은 신화 속에서 방금 뛰쳐나온 모습으로

 │  (2) 신비스러운 이야기

 │   - 기상천외한 그들의 행적은 하나의 신화로 남았다

 │  (3) 절대적이고 획기적인 업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고도성장의 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아시아의 국가들

 │

 ├ 그를 지나치게 신화화하는 사람들

 │→ 그를 지나치게 신화로 만드는 사람들

 │→ 그를 지나치게 하느님처럼 섬기는 사람들

 │→ 그를 지나치게 떠받드는 사람들

 │→ 그를 지나치게 추켜세우는 사람들

 └ …

 

 신화로 삼는 일이란, 신화에 나오는 사람, 곧 '하늘나라 사람이나 하느님'처럼 삼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처럼 삼는다는 이야기라면, 아주 대단하거나 훌륭하다고 여기며 '떠받든다'는 소리이며, '올려세운다'는 소리이고, '추켜세운다'는 소리일 테지요. 이런 느낌을 담아내어 이 자리에서는, "지나치게 대단한 듯이 모시는 사람들"쯤으로 다듬으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지나치게 추켜세우는 사람들"이라든지 "지나치게 모시는 사람들"이라든지 "지나치게 우러르는 사람들"처럼 적어도 잘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신화'라는 한자말을 남겨 놓고 "신화로 만드는"이나 "신화로 모시는"이나 "신화로 떠받드는"이나 "신화처럼 생각하는"이나 "신화처럼 그리는"처럼 적어도 됩니다. 또한, '신화'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도 되고요.

 

 우리 스스로 가장 알맞춤하다고 느끼는 말투를 찾아 주면 넉넉합니다. 우리 스스로 가장 올바르다고 여길 말결을 헤아려 주면 너끈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알맞춤을 모르거나 올바름을 잊고 있다면 갈팡질팡이 될 테지요. 어수선하거나 어지럽게 될 테지요. 뒤죽박죽이 되거나 엉망진창이 되겠지요.

 

 곰곰이 돌아보면, 우리들은 우리가 늘 쓰는 말이지만 어떻게 해야 바르고 알맞게 말하는 셈인지를 살피지 않습니다. 그냥저냥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나, 한 마디 두 마디 차근차근 곱씹지 않습니다. 낱말 하나를 깊이 생각하며 말하지 않습니다. 말 한 마디에 깊은 생각이나 느낌을 담지 못합니다. 이러면서 숱한 한자말과 영어를 내 말마디 곳곳에 집어넣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로는 내 느낌을 나타내지 못할 뿐더러 나타낼 매무새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를 느끼려는 매무새가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를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ㄴ. 기독교화

 

.. "100만 명 심령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한국을 기독교화하기 위해 전도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였다 ..  《한국기독교 백주년기념사업회 여성분과위원회 엮음-여성! 깰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노래할지어다 : 한국기독교여성백년사》(대한기독교출판사,1985) 31쪽

 

 '슬로건(slogan)'은 '이름'으로 손보고, "-하기 위(爲)해"는 "-하려는"으로 손봅니다. '전도운동(傳道運動)'은 '기독교 알리기'로 다듬고, "전국적(全國的)으로 전개(展開)하였다"는 "온 나라로 펼쳐 나갔다"로 다듬어 줍니다.

 

 ┌ 기독교화 : x

 │

 ├ 한국을 기독교화하기 위해

 │→ 한국을 기독교 나라로 만들려는

 │→ 한국을 기독교 나라로 바꾸려는

 │→ 한국을 기독교로 가득 채우려는

 └ …

 

 1909년에도 이 나라 기독교 사람들은 온 나라 백만 사람한테 기독교를 퍼뜨리겠다는 이야기를 꺼냈군요. 그무렵 한국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 그때 백만 사람은 한겨레 모두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기독교가 훌륭하다고 느꼈으니 이런 움직임이 있지 않았으랴 싶은데,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마찬가지이지만, 훌륭하다 하여 모든 사람이 다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삶을 꾸리는 만큼, 가장 훌륭하거나 아름답거나 거룩하다고 하는 대목은 어느 고리에선가 만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꼭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천주교에서 빛을 볼 수 있고, 천주교가 아니어도 불교에서 빛을 만날 수 있으며, 불교가 아닌 아무 믿음이 아닌 자리에서도 빛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 기독교 나누기

 ├ 기독교 알기

 ├ 기독교 믿기

 ├ 기독교로 아름다와지기

 ├ 기독교로 새로와지기

 ├ 기독교로 거듭나기

 └ …

 

 저는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 말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운동'을 한다기보다 '삶'을 꾸릴 뿐입니다. 제가 만나고 보고 듣고 부대끼고 치러내는 삶을 '우리 말'로 곰삭이면서 펼쳐낼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 못 느끼거나 못 알아채면서 얄궂게 쓰는 말과 글을 좀더 손쉽게 다루면서 낮은자리에서도 넉넉하게 함께할 수 있게끔 매만지고 있을 뿐이고요.

 

 그래서 우리 말'화'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따로 더 '토박이말로만 쓰기'를 하지 않습니다. 말다운 말을 찾고 글다운 글을 헤아리면서, 말과 글이라는 지식을 넘어 우리 삶으로 껴안을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짚어 봅니다. 우리 삶으로 껴안을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짚었다면, 저 스스로 그렇게 '살아갑'니다.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말을 하고, 좋다고 받아들이는 생각을 품으며, 좋다고 마음먹은 삶을 꾸립니다. 좋다고 여기는 사람을 만나, 좋다고 느낀 일감을 찾고, 좋다고 껴안는 삶을 나날이 즐깁니다.

 

 ┌ 우리 말화 / 토박이말화 (x)

 └ 우리 말 찾기 / 우리 말 생각하기 (o)

 

 우리 말도 그렇고 믿음도 그러한데, 우리 삶터 어느 대목에서나 '-화'하는 일이란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누가 누구를 어느 한쪽으로 몰아세우거나 밀어붙이거나 끌어당기는 일은 마땅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저 이야기를 건네거나 나눌 뿐입니다. 어깨동무를 하자고 손을 내밀거나 따뜻한 손길을 넌지시 건넬 뿐입니다.

 

 저는 이렇게 느낍니다. 저절로 무엇이 '될' 수 있겠지만, 억지로 무엇이 되도록 밀어붙이고 싶지 않습니다. 저절로 흘러가는 길이라 하여도 어디가지가 저절로이고 어디에서 억지스러움이 끼어들지는 않나 하고 돌아보고 싶습니다. 나누고 알고 믿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아름다와지고 새로와지고 거듭나기를 꿈꾸면서 함께 살고 있을 뿐입니다. 누구이든 삶다운 삶을 꾸리지 못한다면 생각다운 생각을 펼치지 못하고, 생각다운 생각을 펼치지 못하는 가운데 말다운 말을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화#한자#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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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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