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권 따라 달라지는 언론의 공직후보자 검증기준

지금 여의도에선 국무총리를 비롯한 6개 부처 장관과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한창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번 인사청문회에서도 공직후보자의 불법과 도덕성에 관한 문제가 드러났다. 특히 위장전입이  문제가 되고 있다.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와 임태희 노동부장관 후보자, 이귀남 법무장관 후보자가 위장전입 즉, 주민등록법 위반 사실을 시인했다. 거기다가 정운찬 총리후보자 부인도 두 달 동안 경기도 포천으로 위장전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 37조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는 중범죄에 속한다. 그런데 이들 공직후보자를 국민 앞에 선보인 청와대는 이제 위장전입 정도는 사과 한마디 하는 수준에서 그냥 넘어가려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국가 주요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 또한 엄연한 실정법 위반을 하고도 그 엄중한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한다. 아마도 그들이 떳떳하게 고위 공직을 수행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들을 공직후보자로 내정한 이명박 대통령도 위장전입을 시인한 범법자라는 사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대로 임명이 강행될 경우, 대통령을 시작으로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이 모두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로 채워지는 셈이다. 그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부끄러운 일이다.

조선일보 2006년 2월 9일자 사설
 조선일보 2006년 2월 9일자 사설
ⓒ 캡처

관련사진보기


조선일보 9월 15일자 사설
 조선일보 9월 15일자 사설
ⓒ 캡처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서 사회의 공기(公器)가 되어야 할 일부 언론의 태도이다. 조선일보는 5명의 장관과 경찰청장 인사청문회가 있었던 지난 2006년 2월 9일자 사설에서 "200년의 인사청문회 전통을 갖고 있는 미국에선 내정자들이 사소한 불법이나 도덕성에 상처받는 사안이 불거지면 자진해서 사퇴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공직을 맡겠다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인격 수양은 돼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설대로라면 2009년 9월 공직후보자로 나선 대다수의 후보자들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9월 15일 조선일보의 사설은 "공직 후보자 검증에서 도덕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후보자의 업무 능력과 각종 현안에 대한 견해이며 미국 인사청문회에선 후보자가 과거에 재직했던 자리에서 어떤 성과나 오점을 남겼느냐가 그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로 다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신문은 정운찬 총리후보자가 병역을 면제받은 이유나 아들 국적 문제를 규명하는 일보다는 서울대 교수시절의 업무능력이 중시되어야 한다고 했고, 임태희 노동부장관 후보자의 위장전입보다는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시절의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면서 공직후보자의 위법 사실과 도덕적 흠결에 대해 크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논조를 보였다.

조선일보가 2006년 그리고 2009년에 인용한 미국의 인사청문회 전통은 같은 것이다. 또한 현재 공직후보자로 나선 분들의 범법행위나 부도덕했던 행적은 3년 전 공직후보자들과 비슷하다. 다만 3년 전과 다른 것은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치권력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언론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3부에 이어 권력의 제4부라고 부를 만큼 그 영향력이 크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사는 국민들은 유력 언론이 전하는 정보와 주장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가치관에 옮긴다. 다시 말해 언론은 국민들의 생활 방식을 변화시키고, 정치적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은 확고한 기준과 편향되지 않은 시각, 공명정대한 가치관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국회에서는 인사청문회가 한창이다. 일부 언론이 아무리 교묘한 방법으로 정치권력과 유착한다고 해도 모든 국민을 다 속일 수는 없다. 우리 국민은 그만큼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호웅 : (사)지속가능발전진흥원 이사장, 제17대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위원장



태그:#정운찬, #인사청문회, #조선일보, #위장전입, #미국 인사청문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