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글 전용은 성공하지 못 했다

9월 7일 성균관대의 발표에 의하면 18대 국회의원 299명 중 설문에 응답한 161명 중 145명(90.1%)이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답을 했다고 밝혔다. 다른 조사의 결과도 그렇지만, 입법부의 의원들이 이럴진대 이 기회에 학교 한자 교육의 본격적 실시를 공론화해야 한다.

한글은 우리 고유의 글이며 이 민족의 자랑거리이다. 세계에서 자기 고유의 문자를 가진 나라는 얼마 되지 않으며, 문자는 곧 고유한 문화 자체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글을 즐겨 사용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한글의 전용 문제는, 1907년 한글학자인 주시경이 주장한 때로부터 1945년 12월 미 군정청 학무국 조선교육심의회의 '한글전용에 관한 공식결의'와 1949년 10월 9일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 제6호 공포, 1970년 3월의 교과서 한글 전용 조치, 다시 1971년 12월의 한문 교육 실시에 이르기까지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였으며 끝내 한글 전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상적으로는 한 자라도 순수한 우리 고유의 말을 되찾아 일상생활이나 공문서에도 사용을 확대해 나가고 끝내는 순 우리말로만 글 쓰고 대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글 전용은 불가능하며 학교에서 선택 과목으로라도 몇 백 자를 배울 수밖에 없는가?

우리말은 본래 한자어를 떠날 수 없었다

우리의 현실은 고유한 한글을 발전시키기에 거의 절망적 한계에 도달해 있다. 해방 후 본격적으로 한글 전용을 시도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학술서적과 신문, 법률 용어 등 도처에 한자는 사용되고 있다. 반면에 그동안 순수한 우리말은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학교에서의 한자 교육을 중단하고 한글 전용을 하더라도 사회에서는 한자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문화적 현상, 즉 현실적인 수요 때문이었다. 북한 같은 전체주의 체제에서도, 영어 단어는 거의 우리말로 바꾸더라도 한자어만은 그대로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어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말은 참 아름답고 맛깔 넘치는 언어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글자를 가지지 못 해 수천 년 전부터 한자를 빌어서 우리말을 표기하였다. 또 너무 오랫동안 중국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옛 선조들은 거의 한자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렇게 빌려 쓴 한자들이 지금의 우리말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 어원도 모른 채,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가 많은데도 한글만으로 우리말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였다.

한자를 알아야 하는 까닭

지금부터 그리 멀지도 않은 과거인 3.1 운동 시 독립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만일 이 선언문을 지금 작성한다면,  '오등', '자', '아' 등은 '우리', '이' 등의 한글로 표기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한자에서 온 말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 이런 단어가 우리말의 70%나 된다.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춘향전> 등의 고전이나 판소리는 관심 있는 국민이면 제대로 감상하고 이해해야 할 주옥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그 작품들 중에는 수도 없이 아름답고 재미있는 표현이 한자 숙어나 고사성어로 표현되어 있다. 한자 어원을 모르고 한글만 배워서는,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일반 국민들은 이 명작들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옛 흔적은 그렇다 치고, 그러면 현대어를 보자. '광주'라고만 표기하여서는 경기도 광주인지 호남의 광주인지를 모른다. 광주(廣州), 광주(光州)라고 한자를 같이 사용할 때 명확해진다. 그 이외에도 정부 기관 명칭, 도로명, 지명, 공문서 용어, 인명 등등 한글만으로는 정확히 뜻을 알 수 없는 말이 너무 많다.

요즘의 현실을 보더라도 한자를 모르면 교양인이 될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둔 2008년 초에 "시화연풍(時和年豊)"이라고 한 해의 희망을 말했다. 과연 그때 이 말을 알아들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통령조차 영어가 아니라 한자 숙어를 말하는 현실에서 학교 교육은 한자를 소홀히 한다는 게 참으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더 풍부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위하여

물론 이러한 한자에서 온 우리말은 오백 년, 천 년이 흐르면 전혀 어원을 잊은 순수한 우리말로 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른다. 먼 훗날, 우리의 순수한 한글을 되찾아 그 맛깔 넘치는 우리글만 전적으로 사용할 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아마도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문화의 국제화로 인해 그 때 가면 우리말에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을 어원으로 하는 외래어들이 뒤섞여 고유한 우리말은 더욱 눈에 띄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도리어 한자어라도 더욱 정확하고 다양하게 써서 우리말로 발전시키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글 전용으로는 도리어 우리말의 묘미를 다 나타낼 수 없고 장차 우리말이 될 많은 어휘를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한글의 퇴보이며 따라서 한글 전용은 너무 무모한 고집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한자어로 된 말을 순수한 우리말로 바꾸어 쓸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한글 전용론자는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 한자어를 사용하는 바람에 그런 순수한 우리말이 사라진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주장은 아주 일부분만 그럴 듯한 얘기이다. 한자어를 쓰지 않고 순수한 우리말로 쓸 수 있는 경우란 30%밖에 안 된다.

또, 한자어를 쓴다 해도 반드시 우리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교의 국어 교육에서 우리말을 더 비중 있게 가르치고, 문인들이나 신문, 방송에서 꾸준히 사용하면 사라지지 않고 병용이 될 것이다. 오히려 우리말은 한자 어원을 공부할 때만 정확하고 아름다우며 간편하고 더 풍부한 어휘로 발전시킬 수 있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사항은, 우리말 발음을 할 때 한자의 어원을 모르면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사유(思惟)와 사유(事:由)를 제대로 배우면 그 자를 쓰는 한자어는 정확히 발음할 것이다. 대개의 언어는 발음의 장단이 한 단어를 구별하는데 아주 중요하며, 우리말도 예로부터 발음의 장단 때문에 훨씬 더 알아듣기에 분명한 언어였다. 그러나 지금은 방송하는 아나운서조차도 길고 짧은 발음을 엉망으로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족의 독창성을 위해

언어는 민족의 정통성과 독창성을 유지하는 보루이다. 또한 언어는 한 나라의 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또한 문화에 영향을 받는다. 언어가 아름다우면 문학이 발전하고 인간의 심성이 아름다워진다. 그럼에도 한자는 거부하면서 온 나라가 영어에 기를 쓰는 이유를 심각히 생각해 보았는가?

본래 한글 전용을 주장한 것은 일제로부터 민족자존과 독립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지, 언어 문화적 고려가 아니었다. 건국 초부터 이승만 등 해외파에 의한 구시대 청산 시기와 이어진 박정희 정부의 경제발전 시대에 미국식의 문화와 제도, 학설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도입한 적이 있었다. 미국 유학출신의 각계 지도자들이 영어를 세련된 언어로 자랑하며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도리어 많은 우리말을 사라지게 하였다.

물론 국제화 시대에 세계 공용어에 대한 어학 자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는 수긍이 간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지금 우리말 교육은 거의 영혼을 팔아먹을 지경에 이르렀다. 거리의 수많은 간판, 상품명, 일상생활 용어나 심지어 노래 가사에까지 영어는 넘치고 있다. 기술적 상업적 용어로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경우에도 이렇게 영어가 범람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 나라의 미래는 영어에 달려 있지 않다. 끝내는 우리말을 지켜야 한다. 영어를 소홀히 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적어도 한자를 영어만큼은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국제 현실에 비추어서도 타당하다. 앞으로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문화와 경제의 동세서점(東勢西漸) 시대가 올 것에 대비해야 한다. 꼭 영어가 필요한 사람은 별도로 배우면 되는 것이지, 전 학생이 우리말보다도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국민의 정신적 긍지나 국가 윤리에 비추어서도 도대체 말이 안 된다.

인성의 함양을 위해

한글 전용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처럼 한자를 쓰게 되면 문화의 종속이 되느니 암기 위주로 창의력을 저해한다느니 하는 이유는 합리성이 없다. 한자로 된 어휘나 숙어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뜻글자이기 때문에 사고력을 길러준다. 아무 의미도 없는 알파벳을 보고 외는 것과 글자 자체가 의미를 가지고 있어 저절로 생각하게 하는 한자는 이미 "문자 가치"가 다르다. 이는 그것을 배우고 쓰는 사람의 심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 한자를 배우는 과정에서는 그 분위기 자체가 전통과 연결되어 있다. 옛날의 정신과 문화에서 아끼고 보존해야 할 것들을 한자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다. 고사나 숙어를 통해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관계와 예절로부터 모든 인간관계의 도리를 터득할 수 있다.

한자라는 글자는 그 자체가 인간과 우주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 한자를 알면 그 한자에서 온 우리말을 쉽고 빨리, 그리고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학교의 한글 과목 이름조차 "국어"라고 부르는 체제 아래서 한글 전용을 부르짖는 것이 얼마나 모순이며 낯부끄러운 일인가?

학교 교육에서 필수적으로 가르쳐야

아무리 한글 전용을 해도 우리 문화가 돌변하지 않는 한 한자어는 줄어들지 않으며 우리말이 퇴보하는 것은 한자 때문이 아니라 한글 교육이 제대로 안 된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한글도 제대로 모르면서 영어에 너무 많은 세월과 돈을 쏟은 때문이다.

따라서 한자를 초등학교부터 적어도 영어만큼의 비중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의 부담도 더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국어를 위해 한자를 배척하는 사람들이 영어에는 온 나라가 몸살을 앓을 정도로 치중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수능을 치고 나면, 혹은 취업해서 사회로 진출한 학생들이 거의 영어와는 무관하게살아간다는 현실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언어 교육도, 최종의 목표는 인간다운 인물로 키워내는 것이다. 정신이 살아 있고 질서가 잡힌, 더 좋은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한자 교육은 그런 바람직한 정신과 질서, 문화에 대한 의식을 배양할 수가 있다.

학교 교과에서 한자 수업의 필수화, 한자 수업시간의 확대는 절실한 과제이다. 대학을 졸업하여 부모 이름이나 심지어 자기 이름조차 한자로 못 쓴다니, 이런 현실을 두고도 영어 교육만 강조할 것인가? 30%인 순수한 우리말도 제대로 못 쓰고, 70%인 한자 어원의 우리말도 정확히 쓰지 못 하고 점점 잊히게 되는 우민정책(愚民政策)을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가깝게는, KBS에서 매주 실시하는 우리말 겨루기의 문제조차도 순수한 우리말은 얼마 안 되고 거의 한자어이다. 요즘 아이들은 비록 각종 시험에 가점을 받기 위해서라지만 학교나 학원에서 이미 한자를 배우고 있다. 논술이라는 과목도 한자어를 안다면 훨씬 더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한자 교육#한글 전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