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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제청권' 행사 거부로 돌아가야만 했던 노무현

지난 2004년 5월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안이 기각된 후 대통령직에 복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각 추진 과정에서 아주 난처한 일을 당했었다. 고건 당시 총리가 이미 퇴진 의사를 밝힌 바 있고 복귀한 대통령의 처지에서 분위기 일신을 위한 개각 필요성이 대두된 상태에서, 대통령은 퇴임을 앞둔 고건 총리에게 마지막으로 개각을 위한 후임 장관들의 임명을 제청해 줄 것을 요청했던 것이다.

헌법 제87조
①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②국무위원은 국정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무회의의 구성원으로서 국정을 심의한다.
③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④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수 없다.
하지만 고건 총리는 "퇴임하는 총리가 후임 장관의 임명제청을 하는 것이 헌법에 명시된 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들어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했고, 헌법 제 제87조에 명시된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규정에 막혀 대통령은 개각을 후임 총리 취임 이후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 사회는 대통령의 장관 임명 제청 요청을 거절한 고건 총리의 뜻밖의 행동에 대해 찬반양론으로 달아올랐지만 여론은 고건 총리 편이었다. 아무리 명목상 규정이라고 할지라도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은 엄연히 헌법에 명시된 총리의 고유권한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과거 한나라당과 구 민주당이 '여러 가지 현행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를 들어 탄핵까지 시도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단 이때뿐 아니라 초기 내각 구성 과정에서도 헌법에 명시된 총리의 임명제청권을 존중하려 했었고 개각 과정에서 비록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할지라도 헌법의 입법취지를 최대한 살리려는 입장을 취했다.

작전 펼치듯 단행된 MB개각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이런 절차의 문제를 따지지 않게 되었다.

분위기 일신을 위한 9.3개각에서 대통령은 몇몇 장관을 교체하고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로 기용하는 깜짝 카드를 제시했지만 총리 내정자가 취임 후에도 자기 소신을 지켜 대통령의 독선적 국정 운영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어줄 것이라거나, 새 내각이 지역이나 일부 계층 등에 편중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을 전환시켜 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여러 모로 무리가 따르는 것 같다.

평소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들에 대해서 쓴 소리를 해 오던 총리 내정자도 막상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감투가 눈앞에 보이고나니 마음이 들떠서 미처 느끼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마찰을 일으키기 싫어서인지 '총리의 임명제청권을 무시한 개각' 같은 원칙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굳이 따지려 들지 않는 것 같다.

언론 또한 마찬가지이다.

총리 내정자의 성향이나 신임 각료 내정자들의 지역 안배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질 뿐 헌법에 정해진 절차가 무시된 개각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MB정권 출범 1년 6개월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참여정부 시절에 비해 우리 사회 전반의 준법 의지 자체도 놀라우리만큼 후퇴했구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한편, 아무 구실도 하지 못하는 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 같은 것을 왜 거창하게 헌법 조항으로 정해 놓은 것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9.3개각#정운찬#이명박#노무현#임명제청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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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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