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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만에 정권교체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일본 총선은 크게는 종전 이후 일본을 지배해 온 기득권 정치집단 자민당에 대한 민의의 심판이며, 작게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집권 이후 지속된 양극화 심화와 서민경제 침체 같은 집권 여당의 무능에 대한 심판이라고 볼 수 있다.

 

작은정부추구, 공기업의 과감한 민간이양, 공공 분야에 시장경제논리 도입,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 경기 부양을 위한 토목사업 집중투자 등 얼핏 보면 마치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들을 그대로 열거한 것 같은 목록들이 사실은 2000년 이후 고이즈미 전 총리가 추구했던 정책들이다.

 

따라서 오늘날 일본 사회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보는 것은 고이즈미 정권개혁 정책을 거의 그대로 벤치마킹한 듯한 MB식 개혁 정책의 종착점 즉 한국 사회의 5~10년 후의 모습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의미를 가진다고 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안온했던 일본 대중의 삶

 

아소 다로 총리를 비롯하여 전후 55년간 일본을 지배해온 자민당의 주요 인사들이 2차 세계대전 전범 세력의 후예들이라는 것은 그다지 새삼스런 주장이 아니다. 물론 전후 일본의 전범 세력이 건재하고 60여 년간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후에 미국의 패권주의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임은 물론이다.

 

핵심 전범인 국왕 히로히토(迪官裕仁), 반인륜적 생체실험을 자행한 731부대장인 이시이 시로(迪官裕仁) 중장 같은 자들을 기소조차 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반세기 이상을 그들의 후예들이 총리나 장관 등 요직을 움켜쥐고 사회를 좌지우지하도록 묵인해온 대중 정서가 형성된 일등 공신을 꼽으라면, 패전 후 빠르게 회복된 경제와 안정된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종전 후 일본 사회에서 한번 취업은 즉 평생직장의 보장과 같은 말로 인식되어 왔으며 비록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할지라도 한 가지 직업에 오래 종사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흥청망청하진 못할지라도 안정된 삶을 유지하여 일본의 일터 문화가 우리 사회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니, 전후 일본 대중들이 굳이 과거사청산이니 민주화니 정권교체 같은 예민하고 격한 구호들을 내세워 투쟁할 만큼의 절박함이나 동기부여를 가지지 못했던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따라서 55년간 장기 집권해왔던 자민당이 전체 의석의 4분의 1에도 미치는 참패로 야당에 권력을 넘겨준 총선 결과는 근본적으로 전 후 일본인들에게 역사상 가장 안온한 삶을 제공했었던 일본의 보수적인 사회 체계가 한계에 달했음을 의미하며, 짧게는 고이즈미 전 총리로부터 아소 다로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자민당 내각이 소위 개혁(改革)이란 이름을 걸고 추진했던 일련의 정책들이 오히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반개혁(反改革)적 효과를 내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며 심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구호만 요란했던 고이즈미식 개혁

 

소위 '우정개혁'으로 대표되는 공직사회의 개혁은 고이즈미가 집중한 핵심 정책이었다. 정책의 핵심은 작은 정부실현, 공공 산업의 대폭적인 민간 이양과 공공 분야에 시장경제논리를 대폭 도입하여 공직 사회의 효율성을 증가시킨다는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실질적으로 고이즈미가 추구하는 개혁의 요지는 다른 데 있었다.

 

고이즈미 정책은 정보통신, IT, 에너지, 의료기기 및 제약, 금융서비스, 경쟁정책, 투명성, 법제개혁, 상법 개정 및 분배 등 각 분야에 망라되어 있었는데, 그가 추진하는 개혁은 말이 개혁이지 거의 모든 일본의 산업 체계를 미국식 표준에 맞추겠다는 소위 '아메리칸 스텐다드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러한 정책들을 추구함으로서 대중의 지지를 확고히 하는 한편 미국과의 유대 및 신뢰 강화를 통하여 자위대 해외파병 UN안보리상임이사국진출 등을 노리며 궁극적으로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을 대리한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는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고이즈미는 이러한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 정책 반대론자들을 '썩어빠진 이익단체들을 두둔하는 반동적 정치인'이라고 몰아세우거나 정부에 비판적인 노조 등 시민사회의 활동을 무력화키며 강력하게 추진했지만  정책의 추진 과정은 취지에 부합되지 못했고 결과는 더욱 나빴다.

 

고이즈미는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작은 정부를 얘기하고, 공공부문의 과업을 민간부문으로 옮기며, 규제완화를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민간금융부문을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 공적 자금을 쏟아 부었으며, 경기 부양을 핑계로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고속철도, 댐, 공항,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대규모 토목사업에 수십조 엔의 거액을 투자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일본의 안정된 제조업 일자리 400만 개 이상이 사라졌고, 1천만 명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가 양산되었으며, 많은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수백만 가구가 소득 없이 연금에만 의존해 생활하는 최악의 극빈층으로 전락한 한편 경제 규모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국가 부채는 오히려 증가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아소 다로 현 총리에 이르기까지 그와 후임자들은 일본 국민들의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를 지속하였으니 아무리 정권 교체에 무감각한 일본인들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자민당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보다 심각한 MB 정책의 헛삽질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의 개혁 정책은 여러모로 고이즈미 정책과 흡사하다. 아니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근로자의 폭발적인 증가와 중산층의 빈곤층 몰락 등의 속도는 경제 규모로 미루어 일본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어서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반면 예산 대비 복지비 지출은 OECD 국가 중 한국을 제외하고는 일본이 가장 낮고 우리는 일본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정권은 당장 급하지도 않은 4대강 유역 개발에 사활을 걸고 예산을 집중배치하고 있는가하면 수도권 지하대로 건설 같은 황당한 토목 계획만 연일 발표되고 있으니 민심이 폭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아니, 어쩌면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거의 도달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지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총선#일본정권교체#고이즈미#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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