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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군사 쿠데타의 혼란스런 와중에 부모님은 서울에서 사업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남의집살이를 하며 어렵게 땅도 장만하고 마을에 가게도 차렸다. 농사도 지으면서 장사를 하였다. 그리고 두부도 만들어서 팔았다. 지역의 두부 공장에서 무허가로 두부를 만든다고 민원을 자주 내서 보건소 직원과 아버지는 자주 싸웠다. 내 편한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첨가물이라고는 간수 밖에 넣지 않고 기계가 아닌 맷돌로 만든 두부가 훨씬 더 건강에 좋은 데 무허가라는 이유로 보건소는 트집을 잡았다.

 

두부를 만드는 일은 새벽부터 시작한다. 전날 저녁에 물에 불려 놓은 콩을 맷돌에 가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그때는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훌륭한 운동이다. 맷돌 손잡이에 T자 모양의 나무 막대기를 이어 풀무질하는 것처럼 맷돌을 돌렸다. 콩을 갈고 걸쭉한 콩죽을 서서히 끓인다.

 

두부를 많이 할 때는 하루 종일 방에 불을 때기 때문에 구들과 장판이 타서 시커멀 정도였다. 그런 후에 삼베 자루에 콩죽을 넣어 비지를 걸러낸다. 그리고 간수를 넣어 콩죽을 응고시키고 조금 더 데운다. 그리고 나무로 짠 판에 응고된 두부 국을 넣어 무거운 돌로 누르면 물은 빠져 나가고 두부가 된다. 명절 때 어머니는 거의 잠을 자지 않고 3~4일 두부를 만들어도 팔기에 모자랐다. 슈퍼우먼이 다른 누구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6남매를 키우고 남들만치 학교도 보냈다.

 

지금도 그 고소한 두부 맛을 잊을 수 없어 시골에 가면 어머니와 함께 두부를 만들어 먹는다. 오늘 한자는 柬(간)에 관한 자들인데 두부를 만들 때 모습과 유사한 점이 많다. 

 

 柬(간) 東(동) 諫(간) 諫(간)
柬(간) 東(동) 諫(간) 諫(간) ⓒ 새사연

 

柬(간)의 소전, 東(동)의 갑골

 

柬(가릴 간)은 자루에 어떤 물건을 넣고 열을 가하거나 해서 精製(정제)하는 모습이다. 마치 걸쭉한 콩죽을 자루에 넣고 비지를 걸러내는 모습과 흡사하다. 지금은 손을 뜻하는 扌(손 수 변)을 붙여 쓴다. 자루만을 의미하는 자는 東(동)이다. 揀擇(간택)

 

諫(간)의 금문1, 諫(간)의 금문2

 

諫(간할 간)의 금문2를 보면 으로 되어 있다. 이는 祠堂(사당)의 문에서 贖物(속물)이 든 자루를 바치며 잘못을 비는 행위라 한다. 나중에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는 말이 되었다. 기억하기 쉽게는 충신이 임금에게 사람을 잘 가려 쓰라고(柬) 이야기한다고 생각해도 좋다. 諫言(간언), 司諫院(사간원)

 

 欄(란) 練(련) 鍊(련) 爛(란) 蘭(란)의 소전
欄(란) 練(련) 鍊(련) 爛(란) 蘭(란)의 소전 ⓒ 새사연

 

欄(란)의 소전

 

欄(난간 란)은 추락 등을 막기 위해(闌) 가장자리에 설치한 나무기둥을 말한다. 무엇을 쓰기 위해 따란 설정한 紙面(지면)도 欄(란)이라 한다. 欄干(난간), 讀者欄(독자란)

 

練(련)의 금문

 

柬(간)에 열로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精製(정제)의 의미가 있다. 잡물을 없애거나 옷감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잿물로 삶는다 하여 '익히다'의 의미이다. 배우고 익힌다고 할 때 익힌다는 의미도 된다. 精練(정련), 練習(연습)

 

鍊(련)의 금문

 

鍊(쇠 불릴 련) 열로서 쇠를 불리는 것을 일컫는다. 煉(불릴 련)과 유사한 자이다. 鍛鍊(단련)

 

爛(란)의 소전

 

爛(무르녹을 란)도 불을 가하여 충분히 익힌다는 뜻이다. '빛나다' 또는 너무 익어 '문드러지다'는 뜻도 된다. 爛商討論(난상토론)은 어지럽게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토의하는 것이다.

 

蘭(란)의 소전

 

난초는 곧게 뻗은 단출하면서 고고한 자태 때문에 지조와 충성의 상징으로 사군자 가운데 하나이다. 闌란)에 불순물을 떨어뜨리고 막는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그처럼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식물로서 蘭(란)을 생각해도 좋겠다. 芝蘭之交(지란지교)

 

한자로 命(명)을 삼지 않았다면 두부를 만들어 파는 일을 했을 것이다. 손수 두부를 만들어 딸랑이를 흔들며 골목길로 '두부 사려'를 외치면서 말이다. 우리 콩으로 만든 두부는 百益無害(백익무해)이니 많이 드시길 바란다. 그런데 수천 년 콩을 재배한 우리 민족의 토종 콩이 거의 사라지고 콩 재배한지 채 100년 밖에 안 된 미국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콩이 싼 맛에 우리 식탁을 점령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렸을 때는 두부를 '뚜부'라 불렀다. 가마솥에 끓인 뚜부국(순두부), 뚜부 깐밥(누룽지), 김치에 참기름을 넣어 비빈 비지, 고소한 뚜부, 뚜부물로 머리 감던 일 모두 그립다.

덧붙이는 글 | 김점식 기자는 새사연 운영위원이자, 현재 白川(시라카와) 한자교육원 대표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자 해석은 일본의 독보적 한자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문자학에 의지한 바 큽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柬(간)#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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