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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날 밤에 맹신으로 인해 붕괴하는 사람들을 그린 영화 <불신지옥>을 봤다. 물론 공포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건 역시 내겐 너무 큰 도전인지라 옷 뒤집어쓰고 이 악물고 영화의 3분의 1은 눈 가린 채로 넘겨버렸지만, 그 무섭고 음산하고 찜찜한 기운은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는다.

교회에 미쳐있는 엄마, 전능한 부적을 만들어주겠다는 무당에 미쳐있는 이웃들. 귀신보다도 무섭다. 역시 사람보다 무서운 건 없나보다.

 영화 <불신지옥>의 엄마
영화 <불신지옥>의 엄마 ⓒ 윤고운

그 중에서도 제일 무서웠던 건 역시 교회에 미쳐있는 엄마였다. 사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며 사탕을 들고 쫓아오던 아줌마들, "전 성당 다녀요"라고 거절해도 정말 끈질기게 찾아왔다. 하지만 그 정도뿐이라면 양호한 편.

시내에서 확성기를 들고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 봉고차를 타고 십자가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 지하철에서는 자는 사람을 깨워가며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주는 사람들까지······. 그런 사람들이 난 정말 싫고 무서웠는데, 영화에 또 그런 사람이 나오니 안 무서울리가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런 특이한 신자들이 유독 우리나라에는 많다. 아니, 그렇게까지 특이해야 할 필요도 없다. 밤만 되면 빨간 십자가들 때문에 도시는 공동묘지가 되어버리고, 무슨 공장마냥 큰 교회에 신도가 몇 만이 되었다 기념하고, 명절만 되면 차례 지내는 것도 성묘하는 것도 다 이교도라며 못하게 하고, 이런 모습들은 우리 주위에서 사실 평범한 모습들 아닌가?  무조건 "믿습니까?", 그리고 또 무조건 "믿습니다!". 이런 맹신은 언젠가 정말 <불신지옥>보다도 무서운 일을 몰고 올지도 모르겠다.

교회는 좋다. 믿음도 좋다. 사람에게 신앙이 있다는 건 정신적으로 무척 고차원적인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교회밖에 없는 교회는 나쁘다. 지나친 맹신도 나쁘다. 이는 분명 화를 불러온다. 맹신은 사람을 이기적인 바보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관용도 깊어져야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한국의 종교에서는 그런 성숙한 모습이 드물다는 것이다. 물론 교리를 실천하며 사랑과 평화를 위해 봉사하는 종교단체들도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단체들도 많다는 것이 문제다. 관용과 함께 깊어지는 믿음, 이제 우리도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불신이 곧 지옥이면 안 된다. 예수가 언제 그렇게 폭력적인 존재로 변신했는가? 신을 불신하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한다. 불신이 곧 지옥인 세상은, 끔찍한 세상이다. 각자 믿고픈 것을 믿을 수 있게 해달라.


#불신지옥#교회#기독교#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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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인 거북목 때문에 힘들지만 재밌는 일들이 많아 참는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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