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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철학과 학생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원래 '대학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또 요즘 이른바 일류대라 일컬어지는 서울소재 몇몇 대학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대학들 처지가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대학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했고요. 각 지역의 대표대학이라 할 수 있는 지역거점대학들은 어떻게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지 알고 싶어 자전거 여행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지난달 21일부터 지난 12일까지. 총 3주간 정희현씨는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누볐다. 자전거 여행 테마는 <대학과 사람>이었다. 전남대를 시작으로 경상대, 부산대, 경북대, 강원대, 서울대, 충북대, 충남대를 거쳐 자신이 다니고 있는 전북대에 이르렀다.

각 광역권의 대표대학이라 할 수 있는 지역거점대학을 탐방한 그는 학교 관계자와 학생들을 만나며 자신이 고민했던 지역거점대학 역할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난 3주는 그에게 있어 어느 때보다 대학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4일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그를 만나 그 고민의 흔적을 되짚어봤다.

"다른 대학 현실을 알고 싶었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 동안 비가 많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힘들었겠다.
"한마디로 '개고생'했다. 그래도 처음 계획했던 것처럼 대학을 돌아다니며 학교 관계자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만족했다."

-처음 계획은 뭐였나? 탐방한 학교를 지역거점대로 한정시킨 이유가 있나?
"알다시피 요즘 대학들 처지가 말이 아니다. 일류대가 아니면 인정을 못 받는다. 내가 다니는 전북대처럼 지역거점이라 할 수 있는 다른 학교 학생들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학교 측은 어떻게 대응해 나가는지 알고 싶었다."

-'처지'라는 말은 부정적 어감이 강하다. 대학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거 같다.
"한마디로 요즘 대학은 대학답지 않다. 대학이라는 개념을 잘못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문을 탐구하는 곳이 아닌 취업양성소로 전락한 느낌이다. 그 대학에 어떤 교수가 있고 어떤 학문적 성과가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취업이 잘되느냐가 중요하게 평가받는다. 그래서 궁금했다. 다른 대학에서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

-그래서 9개 대학을 탐방한 소회는?
"여지없다. 모든 대학이 똑같다.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좋다. 이야깃거리가 많을 거 같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한번 나눠보자. 괜찮겠나?
"상관없다. 질문해라."

"지역경제 규모 따라서 거점대학 간에도 차이 커"

-앞서 서울 소재 대학을 제외한 지역거점대학들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점대학 간에도 차이가 많이 나지 않나?
"맞는 말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부산대가 그렇다. 부산은 제2의 도시다. 경제규모나 인구 등에서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을 월등하게 앞선다. 그래서 부산대는 다른 거점대학과도 차이가 많이 난다. 내가 받은 느낌이 뭐냐면, 서울대학이 100km로 달리고 있다면, 부산대는 50km로 나가고 있고, 그 나머지 대학들은 이제 막 출발하려고 무리하게 '엑셀'을 밟는 경우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인가.
"그러니까 부산의 경우 산업기반 시설도 꽤 갖춰져 있고, 학생들이 졸업해서 취업할 수 있는 여건도 나머지 지역보다 훨씬 낫다. 그러다보니 부산대 출신 학생들이 갈 곳이 많다. 구미공단이 들어서 있는 경북대도 비슷하다. 상대적으로 처진다는 느낌을 받은 대학이 강원대, 충북대, 전북대인데, 광역도시가 아닌 소도시 국립대이기 때문에 학교 발전이나 어떤 대학 역할에 있어 상대적으로 한계가 있는 거 같다."

-요즘 대학이 많이 내세우는 게 특성화다. 지역거점대학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차이가 없다."

-무슨 말인가.
"정말이다. 차이가 없다. 학교 관계자들도 서로 웃더라. 대학 특성화 방법으로 IT(정보기술), BT(생명기술), BIT(생명정보융합기술)등을 내세우는데, 모두 똑같다는 것이다. 모두 똑같은 방식이 어떻게 특성화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어려운 문제다. 대학의 경우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각광받는 산업분야나 프로젝트 위주로 투자를 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래서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거다. 특히 사립대가 아닌 국립대(지역거점대)는 다른 대학이 안하는 분야에 투자를 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왜 인문학 분야는 특성화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 '아, 이 대학은 이 분야 만큼은 최고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특성화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결국은 마인드의 문제란 말인가?
"그렇다. 특히 내가 다니고 있는 전북대의 경우 산업 논리로는 아무리 대학을 특성화시켜도 경쟁이 안된다. 남들 하는거 똑같이 따라하면서 무슨 '경쟁'이라는 말을 붙이나. 남들 안하는걸 해야 그게 진짜 '경쟁'이다. 전북대가 과감해 졌으면 좋겠다. 과감하게 인문학 분야를 특성화시킨다면 전북대가 진짜 학문을 탐구하는 대학다운 대학으로 이름을 높일 수도 있다."

"지역민, 지역과의 밀착 통해 정체성 찾아야"

-알았다. 이는 결국 종합대학에 대한 문제인 거 같다. 몸집만 불릴게 아니라 특성화된 소규모 단과대로 대학이 편성돼야 할 문제인데…. 일단,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말자. 화제를 잠깐 돌리겠다. 지역거점대학이면, 그 지역에서는 대표대학이다. 그만큼 책임감이 뒤따를 텐데, 지역과 가장 밀착하게 지내는 학교가 있다면.
"딱 떠오르는 대학이 하나 있다. 바로 강원대다. 여기는 학생회가 아주 특이하다. 총학생회에서 다른 지역으로 캠프를 떠나거나 하는 비용을 아껴 강원도 산골을 찾아가 음식을 만들고 도서를 기증하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또 학교 축제 수익금을 수해복구 재난에 기부하는 등 강원도라는 지역적 특색을 아주 잘 살리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곳 학생회의 가장 큰 관심은 바로 지역이다. 지역문제를 넘어선 거대담론 운동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학생회의 운동 방식은 다 다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지역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게 인상 깊었다. 왜냐면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정작 지역에 살고 있어도 지역문제 잘 모르는 학생들이 많은데, 학생회가 나서서 소통의 중심이 되고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걸 보니 뭔가 느끼는 게 많았다."

-학생회에 관심이 많은 거 같다. 혹시 학생회에서 일할 생각이 있나?
"비밀이다."

-이왕 강원대 학생회 얘기가 나왔으니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지역거점대학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지역인재문제다. 서울로 빠져 나가는 경우를 빼면 대부분 그 지역에서 우수한 인재가 지역 거점대로 많이 몰린다. 국립대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어쨌든 지역 내 다른 대학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우수인재를 많이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물론 입학성적만 가지고 우수인재라고 표현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문제는 지역거점대학에서 이 인재활용을 잘 못하는 거 같다. 직접 느낀 게 있나?
"음..사실, 비슷한 고민이 있다. 지역거점대학의 경우 조금 안일했던 측면이 있다. 이들은 어쨌든 정원은 채운다. 국립대라는 이유, 또 그 지역 내에서는 나름대로 이름 있는 대학이다 보니까 지역 내에서 많은 학생이 오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지역 내 학생들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큰형 뻘 되는 서울대만을 바라보고 있다. 지역인재를 길러내서 지역의 발전을 도모할 생각이 이들에겐 부족한 거 같다."

"지역거점대, 서울대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지역거점대학이 지역을 외면하고 서울대만을 바라본다면, 이야기는 다시 서울대 책임론, 서울대 역할론으로 이어진다. 오늘 얘기가 너무 중구난방(衆口難防)이다.
"조금 그런 거 같다. 그런대 대학이나 교육 문제가 원래 다 얽혀서 꼬집어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맞는 말이다. 다시 논의를 진행하면, 지역거점대학들이 서울대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각 학교 홍보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이들이 하나같이 하는 소리가 이들은 어떤 교육정책이나 대학관련 정책에 있어 교육부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대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 지에 더 이목을 기울이는 게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서 서울대에서 느낀 점은?
"서울대는 왜 자신들이 지역거점대학을 신경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다른 대학 관계자들과 분위기부터 달랐다. 이들에겐 홍보해야 할 필요성이 없다. 서울대는 이미 그 이름 자체가 브랜드기 때문이다."

-서울대 내부에서도 서울대 문제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 서울대로 인한 대학 구조의 문제점이 분명 있다고. 하지만 서울대 내에서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든 그들은 이미 서울대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생에서 훨씬 더 좋은 위치 점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접한다고. 서울대가 스스로 변하기는 어렵다."

-결국,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문제인거 같다.
"하지만 한다는 게 결국 '법인화'다. 자체 경쟁력을 기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의 경쟁력은 이미 그 대학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나뉘어진다. 지역에서 아무리 경쟁력 키워도 서울에 있는 대학 못 따라간다. '서울=경쟁력'임을 인정했으면 좋겠다. 대학의 경쟁력은 법인화나 특성화 이런 걸로 되는 게 아니다."

-그럼 대학의 경쟁력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 여기다. 앞서 얘기했지만, 인문학이면 인문학, 뭐 이런 걸로 어느 대학은 어느 분야, 이렇게 정부가 지정해 줬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니까 다들 똑같이 IT, BT만 외쳐대는 거 아닌가. 다 똑같이 하는 특성화가 어디 있나, 도대체."

-대학들도 특성화를 외치지만, 결국 다른 대학에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자기들도 말하면서 웃더라. '어쩔 수 없다'라고 얘기하는데, 어쩔 수 없다는 말로만 모든 걸 설명하려고 하니까 문제다. 지역 거점대학이 서로 뭉쳐서 해볼 수 있는 게 있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는 거 같고…."

-사실 어려운 문제다. 대학이 많은 것도 문제고, 지역간 편차도 문제고, 서울대도 문제고…. 꼬여 있는 실타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역거점대학의 경우 지역을 떼어 놓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뭐냐면, 지역 거점대학의 경우 서울대만을 바라볼 게 아니라 지역에 맞는 방식으로 특성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종합대학이 모든 걸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라북도의 경우 경제가 낙후됐다는 것은 누구나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럼 경제 말고 전라북도가 앞서는 건 무엇인지, 그걸 지역과 대학이 함께 고민하고, 그 부분에 맞춰 대학의 특성화도 이뤄졌으면 좋겠다."

-결국은 본인이 다니고 있는 전북대와 전라북도에 바라는 점인가?
"그렇다. 지역과 대학이 조금 더 과감해졌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맞춰 갈 것인가. 처음 시도하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 전북대가 과감해지고 전라북도가 과감해졌으면 좋겠다."

-잘 들었다. 3주 동안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 피곤 할 텐데 푹 쉬길 바란다.
"정리 잘 해주길 바란다. 고맙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역거점대#지방대#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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