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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강의를 하고 나오니 나이지긋한 주부가 살며시 복도에 따라 나왔다.

 

"선생님! 저는 일찍 나와 3시간을 다 채우고 연습도 많이 했는데 지도체본을 몇 자만 써주시고, 맨 마지막에 온 저 분은 왜 작품체본을 많이 해주시는 건지 좀 서운해요!"

"저는 사람을 보고 지도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해온 숙제에 따라 진도를 나가는 건데요.'

"그래도 순서를 지키고 부지런한사람에게 관심을 많이 주시면 좋잖아요"
"가르치는데 특정순서가 어디있나요? 오케스트라를 합주할 때 이 사람의 음정이 모가 나면 지적하고, 무난하면 그대로 연습시키는 것처럼, 지도가 많다는 것은 그 사람이 고쳐야할 부분이 많다는 것일 수도 있어요.'

"아! 네.. 그러면 저는 별로 고칠 부분이 없어서 그런가요?"

" 그럴 수도 있지만... 지도하는데는 꼭 순서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 주부는 별로 표정이 화안해지지 않았다.  순서대로 또는 연습을 많이 한 대로 내가 가르치고 잘해주지 않아 조금은 서운했던 것일까? 언뜻 어떤 말이 생각이 난다. 자기자신에 집중하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남과 비교하는 순간 불행한 느낌이 든다고.

 

한국사람들은 유난히 남의 떡을 크게 보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콩깍지가 자주 눈에 끼이는  것일까? 아이는 자기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극을 받는다. 왠지 자신이 약간은 뒤떨어진 느낌을 가지고 새롭게 뭔가 지식의 충전을 하려고 갑자기 애를 쓰다 제풀에 지쳐 다시 본래의 생활로 돌아간다.

 

문화센터에 가면 강의시간이 10시지만 항상 9시도 안되어 미리 나와 공부하시는 분들이 있다. 아무도 없는 빈교실에서 혼자 먹을 갈면서 창문 밖의 푸른 아침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아줌마이든, 아저씨이든 어르신이든 마음이 뭉게구름을 보는 듯하다.

 

그렇게 일찍 나와서 준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1시가 지나서 헐레벌떡 숨차 하며 황급히 지필묵 가방을 푸는 사람도 있다. 30여 명의 사람들을 처음에는 연습한 작품들을 일찍 온 순서대로 앞에 갖다놓게 해서 순서대로 가르쳤지만 오래되다보니 중간에 급하다고 끼워넣는 사람이 생기거나, 사람은 오지 않았는데 서로 서로 부탁해서 작품만 앞에 놓는 경우가 생겼다.

 

그래서 이러한 소소한 일들을 가지고 설왕설래 하는 모습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아 보여서 한번은 좌측에서 차례대로 지도하고, 한번은 우측부터 차례대로 지도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도착한 순서대로 가능한 앞에 앉게 하였더니 별 잡음없이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순서대로 한다고 해도, 그냥 연습이 더 필요한 사람은 몇 몇 간단한 수정지침만 내려주고 더 쓰라고 하고, 감을 잡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은 시범을 보여주며 다시 하나 하나 따라하게 한다. 그리고 더러 대회에 나가는 사람들도 특별 레슨을 받는다.

 

다른 사람이 어떤 글씨체를 써서 대상을 타거나 언론에 나가면 은근히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다. 진도가 안 나가는 자기의 글씨를 은근히 저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의 글씨체를 배우고 싶다고 하며 과정을 변경하려고 부탁을 한다.

 

어떤 글씨체 때문에 공식대회에서 인정하는 열매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의 노력과 개성이 한 글씨에 꾸준히 정성을 쏟아 열매가 생기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러  어떤 고비에서 조금만 더하면 열매가 맺을 단계에서 포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기도 하다. 근사하고 멋있게 보이는 그 어떤 것이라도 최소한 몇 년을 투자해야 열매를 맺는다.

 

붓을 잡고 묵향의 길을 가는 것은 과일나무 키우기와 다름없다. 품종마다 재배방법의 차이가 있고 각기 다른 열매를 맺지만 공통적인 것은 모두가 묘목에서 열매를 맺기까지 세월과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꾸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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