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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이런 이별은 끝내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뜻밖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처음 접할 때만 하더라도 며칠 가료하시면 쾌차하시리라 믿었습니다.

 

민주주의의 후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여당의 미디어 악법 날치기 강행 등,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혼탁함 속에서 아직은 당신께서 좀 더 우리 곁을 지켜주십사는 염치없는 바람이 담겨있었지요. 저의 기대와 달리 병세가 위중한 것이 알려지면서 아쉽고 서럽지만 이제는 당신을 보내드려야만 한다고 애써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 넘나들며 핍박과 고초와 싸워 끝내 이겨 민주주의의 희열을 만끽하게 해 주셨던 당신을 이제 이 땅에 서럽게 남겨진 사람들은 인동초, 행동하는 양심, 통일대통령, 한국 민주주의의 산 증인 같은 수식으로 오래 동안 기억하게 되겠지만, 이것들로 당신을 모두 기념했다하기에는 어딘지 허전하다 여겨져, 비록 남들이 저의 만용이라고 손가락질 할지라도 저의 기억 속에 남겨진 님의 자취를 이끌어 당신에 대한 존경과 애도를 표하고자 합니다.

 

막상 글을 시작하고 나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어린아이처럼 통곡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다시금 눈시울이 적셔집니다. 어쩌면 그 때 이미 당신께선 이렇게 떠나셔야 한다는 것을 예감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노구에도 불구하고 불의한 권력에 맞서 "불의에 침묵하면 불의에 동조하는 것이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며 시류에 영합하여 침묵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두 눈 부릅뜨고 불의와 맞서 싸우라.'고 대성일갈하셨나 봅니다.  이제 이 말씀은 우리에게 남겨진 당신의 유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생전의 당신께선 진정 '행동하는 양심'이셨습니다.

불의 앞에서 대충 싸우는 척 시늉만하는 거짓 투사가 아니라, 마치 여벌의 목숨을 몇 개씩 가지기라도 한 사람처럼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와 맞서 싸우셨습니다.

 

혼신의 힘으로 불의에 항거한 당신이셨기에 역대 독재자들은 모두 당신을 두려워했습니다. 오죽하면 해외 망명중인 당신을 납치 살해하려 했겠습니까? 수많은 주변 인사들을 고문 협박하여 당신을 내란음모의 수괴로 몰아 처형하려 시도 했겠습니까? 포악한 독재자가 당신의 존재를 얼마나 두려했으면 동교동 자택 주변에 높은 펜스를 세워 사람들이 당신의 거처를 바라보는 것조차도 막았겠습니까?

 

그들은 55차례의 가택연금, 5년 반의 투옥, 두 차례의 해외 추방, 해외납치 살해기도, 내란사건 조작에 의한 사형선고 등으로 당신을 시험했지만,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이겨내 끝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끌어 민주화를 이룬 당신에게 시련은 곧 신이 내려주신 훈장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핍박과 고초를 겪으며 어찌 원한에 사무치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당신은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않고 '화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당신을 끝내 처형시키려던 수괴와 주구들의 목에서 밧줄을 걷어내고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 수 있게 하였고, 당신을 납치 살해하려던 독재자의 딸과 손을 맞잡기도 했습니다.

 

이런 용서와 관용과 화해의 정신은 동서 화해뿐 아니라 비극적인 분단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화해와 포용정책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세찬 바람으론 사람의 외투를 벗길 수 없다. 따뜻한 햇볕은 스스로 외투를 벗게 할 수 있다."던 당신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당신은 이 신념에 확신을 가졌고 끈질기고 일관성 있게 이를 실천했습니다.

집권 1년도 안돼 남북 관계를 파탄 낸 이명박 정권의 만행과 무책임을 목도하면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원수까지 용서하고 포용하는 관용을 지녔던 당신이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던 일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되니,  당신과의 이별이 더 서럽기만 합니다.

 

이 암울한 세태에 당신마저 떠나보낸 우리는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만 합니까?

온 몸을 불살라 투쟁해 온 당신 말고 누가 있어 수구세력의 폭주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당신은 떠나셨다하지만 연약하고 미련한 우리는 아직 당신을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땅의 양심들은 아직도 의지가 굳지 못하고 힘이 약하며 지혜롭지도 못합니다.

 

염치없지만 감히 원하노니 천상에서 명복을 누리시고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하늘나라에서도 이 땅을 이 땅의 서러운 사람들을 외면하지 마시고 우리를 굽어 살피고 행동하지 못하는 양심들의 어리석음을 늘 꾸짖어 깨우치게 하소서 !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대중전대통령, #행동하는 양심, #인동초,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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