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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젊은 세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대통령의 이해찬 교육부 장관 임명 탓에 교육 정책은 오락가락, 거기에 공부 안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 대학을 갈 수 있다라는 식의 사고관을 심어준 나쁜 대통령으로 기억할지 모른다(지금까지도 시시비비가 많은 부분이다. 교육으로 인해 또다른 계급이 생기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정책을 펼친거라 생각하지만, 너무 준비가 없었고 그에 비해 너무 급진적이었다고 그 당시 학교를 다닌 학생으로서 평가하고 싶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지금의 젊은 세대는 'IMF 금융위기'를 맞았다.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잔주름이 하나씩 늘어나고, 용돈이 없어지고, 연일 사람들이 자살을 반복하기에 그들은 '경기'라는 것을 체감했다. 그 때 그들은 어머니가 고이 간직하던 그들의 돌반지를 학교에 가져다 냈다. 지금의 그들은 다리를 저는 대통령은 절름발이 한국 경제의 탈출구를 여러 활로로 모색하고 있었음을 이제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6․25 전쟁은 커녕 이산가족상봉의 역사적 순간에도 그저 엄마만 바라보는 아기 혹은 아이였던 그들은 대통령의 통일에 대한 의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햇볕'의 교훈에 대해선 어렸을 적부터 들어서 알지만,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서 통일을 해야하는지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세대가 지금의 젊은 세대다. 그저 이남의 대통령과 이북의 지도자가 만나 손을 잡고 북으로의 여행길이 뚫리고 교류가 느는 것을 바라보며 '통일이 필요하구나'라는 정도의 생각을 했던게 지금의 젊은 세대다.

역사 책은 인간 '김대중'에 대해 그리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다. 실존하는 인물이었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너무 많이 얽혀있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젊은 세대는 그에 대해 더 몰랐을 수도 있고, 선거 때마다 호남지역에서 나오는 몰표를 보고 그 역시 구 시대의 전유물 중 하나라고 평가했을 수도 있다.

오죽하면 자칭타칭 학생권이라 불리는 이들도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은 '남북화해' 정도가 다라고 말할 정도 였다. 경제는 회복되면서 지니계수가 커지고, 외국계에 진입을 자유롭게 했으며 대기업 의존도를 더 높였다 말하면서 일반 국민의 삶은 더 힘들어졌다고 외쳤다. 일견 타당한 말이지만 흑과 백을 무조건 가르는 젊은 세대의 이분법에 그가 당한 측면은 없을까?

그렇다. 젊은 세대는 정확히 그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큰 인물이었다는 것을 추상적으로 느낄 뿐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자"

6․15 남북 공동선언 아홉 돌을 기리는 자리에서 그는 현 정부를 가리키며 이런 말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때 오열하던 왜소하고 지친 그의 몸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독기품은 문장이 튀어나왔을 때 많은 이들은 놀랐다. 특히, 그대가 젊은 세대라면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마음 한 켠에서 약간의 아드레날린이 분비됐을 것이다. 적어도 그대가 젊은 세대라면.

그런 젊은 세대가 지금의 정부를 만들었다.

대학을 간다고 해서 내게 성공길이 보장되지 않는다. 죽도록 공부해도 취직은 되지 않으며, 하루하루 나를 조여오는 경제적 압박은 이제 그들을 '신용불량자'라 부르고 있다. 젊은 세대가 정치권이나 영향력 있는 어떤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극히 드문일이다. 어찌보면 사회에서 자리잡을 곳이 어디있나 싶은게 지금의 젊은 세대다.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매일 술도 마시고, 그리 어렵지 않게 해외여행의 문을 두드릴 수 있으며, 대다수의 젊은이는 가족부양의 책임까지는 지지 않는다. 개개인의 사정을 봐야겠지만 대다수 자유롭다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세대다.

그런 세대가 지금의 정부를 선택할 때는 많은 부분이 나와 연결되 있었다. 경제분야의 성장으로 돌아오는 반사이익, 그리고 일자리 창출 등 보수세력이 해줄 것만 같은 그런 분야에 대한 장미빛 이익들이 현 정부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민주주의'라던가 '사회통합'라던가 '우리가 살아가는 체제 내에선 필연적으로 약자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라던가 이런 기본적인 생각조차도 희미할 때로 희미해져 있었다.

모두들 과정이 아닌 결과, 과거의 교훈이 아닌 장밋빛 미래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당신이 지금 왜 김대중의 죽음에 슬퍼하나?

아마 부끄러울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지치고, 아무리 더딘 삶이 젊은 세대의 것일지라도 조금은 부끄러울 것이다. 김대중이 살아온 삶을 조금씩 알아가고, 그의 발언과 행적을 보면서 비추어 봤을 때 어느 새 훌쩍 커버린 내가 아주 조금은 부끄러울 것이다.

조금이라도 부끄러우니 추도할 것이고, 그들을 나는 지금의 슬픈 젊은 세대라 부르고 싶다.

짧은 기간,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두 인물이 우리 곁을 떠났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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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대중, #김대중 서거, #민주주의,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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