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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얼굴>(송기원 지음) 겉그림. 문이당 펴냄. 2006년
▲ <아름다운 얼굴>(송기원 지음) 겉그림. 문이당 펴냄. 2006년
ⓒ 문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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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손으로 매만지는 얼굴이 아름다운 얼굴일 거라고 믿기엔 거친 손이 주는 느낌이 말 그대로 거칠다. 부드럽게 다독이는 게 아니라 무식하다 할 만큼 박박 긁어대기만 할 것 같은 거친 손에서 아름다운 얼굴이 나올 수 있을까. 어렵기만 한 질문에 허덕이기 전 서둘러 한 사람과 그이 손에서 흘러나온 책 한 권을 본다.

2009년도 반이 지난 지금 지천명을 훌쩍 넘어 이제는 환갑도 넘어섰을 글쓴이는, 몇 해 전 자기 경험을 사실상 그대로 빼닮은 글 네 개에 한 가지 글을 더하여 책을 내놓았다. 거친 손은 '아름다운 얼굴'을 만든다고 말하고픈 마음을 담아서.

다른 이를 돌아볼 나이는 분명 아니고 자기 자신조차 요모조모 새롭게 꾸며가는 시기를 사는 십대 아이들에게, 글쓴이는 생생한 증언처럼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했다. 송기원은 다섯 가지 글을 엮어 내놓은 <아름다운 얼굴>(문이당 펴냄, 2006)에서 그런 뜻을 비쳤다.

"문학이란 바로 자신을 위시하여 세상 사람들의 못난 점 투성이 속에서 참으로 아름답고 눈부신 보석을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글쓴이 송기원은 누구나 좌충우돌하며 자기 모습을 발견해가는 십대 아이들을 향한 깊은 애정을 책에 담았다.

"거듭 말하거니와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는 자신의 출신 성분이나 어머니를 위시한 장돌뱅이들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거나 무슨 치부로 여긴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오히려 밑바닥 사람들만이 지닌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낙천적인 분위기만이 먼저 떠오를 뿐이다. 모름지기 그들과 나는 알몸이었으며, 그들이 즐거울 때면 나도 즐거웠고, 그들이 슬플 때면 나도 슬펐다."(<아름다운 얼굴>, 167)

출생 비밀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드라마 주인공이 될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사람들 이목을 끄는 드라마들 상당수는 적잖이 혼란스런 가정사를 드라마 주요 배경으로 삼곤 한다. 꼭 그 때문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네 부모님들이 대개 6·25전쟁을 비롯한 고단한 20세기 현대사 한 장면쯤은 제대로 겪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웬만한 출생 비밀은 '드라마'급 대우(?)를 받기 힘들 것만 같다.

물론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 웬만한 출생 비밀에 무작정 하품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경험이란 어쨌든 무시하기 힘든 사실과 진실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그게 바로 내 얘기 같을 수도 있고, 바로 내 부모와 친척 얘기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첫 번째 글 '양순이 누님'에 등장하는 누님은 그냥 누님이 아니다. 지난 이야기를 굳이 끌어내자면 꼭 한 번쯤은 남동생 아버지와 자기 아버지를 구분해야 하는, 암으로 죽음을 앞둔 누님이다. 두 번째 글 '사촌 아부지'에 등장하는 아버지 역시 못내 특별하다 해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번 싸웠다 하면 어머니와 피를 보는 정도가 되어서야 싸움을 접곤 했던 의붓 아버지를 누나는 어머니보다 더 싫어했고, 누나의 엄한 경고 때문에라도 주의를 기울여 찾아낸 절충안 같은 호칭이 바로 '사촌 아부지'였다. 본처를 두고도 어머니와 살림을 차린 사정까지 다 알 필요는 없다 해도 여러모로 아버지라 부르기는 어려운 이가 바로 그 '사촌 아부지'였다.

"'이건 바로 내 이야기 아닌가!' 어떤 소설은 나보다도 형편없는 개차반 인생이 바로 그 개차반 인생을 그것도 무슨 자랑이라고 중언부언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바로 그 개차반 인생이 그런 이야기로 작가가 되고, 그리하여 당당하게 세상에 끼어들었다는 점이었다. 문학이 그런 식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자신이 있었다. 당시 내가 이해한 문학은 내가 세상에 끼어들 수 있는 일종의 문학같은 것이었다."(같은 책, 171-172)

길바닥 장사로 삶을 엮어가는 어머니와 함께 길바닥을 쓸고 다닌 '장돌뱅이'가 어느 날 친척 집에서 발견한 문학을 보며 토해낸 것은 바로 '이건 바로 내 이야기가 아닌가!'였다. 그저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그래서 아무렇게나 입에 오르다 사라지고 말았을 삶을 책에서 발견한 '장돌뱅이'는 문득 새로운 삶의 길을 보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새롭게 보고 세상과 소통할 길을 발견하고 심지어는 누구에겐가 자기 삶을 빗대어 조언도 해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그야말로 삶이 백팔십도에 삼백육십도로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름다운 얼굴>은 그런 책이다. 불안하면서도 꿈 많은 시기를 사는 청소년들에게 언제든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글이 모여 이룬 책이 바로 <아름다운 얼굴>이다. 송기원 그이도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청소년들에게 내놓는다 했다. 개인사를 소재로 했다고 말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나라하다 할 만큼 자세한 개인사를 풀어놓아서인지 이 책이 정말 개인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인지 '진짜' 이야기인지, 혹은 진짜 그이 개인사를 소재로 한 게 맞는지 여러 번 되묻고 싶을 정도였다. 깔끔한 삶이든 아니든, 자서전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여하튼 책은 그렇게 글쓴이를 닮았다.

아무것도 온전히 이루어진 게 없는, 여전히 준비해가는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쉽사리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심지어 절망하기 쉬운 청소년들. 그들에게 <아름다운 얼굴>은 분명 '아름다운 얼굴'에 대해 사뭇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리라. 부끄러움도 짙게 배인 책은 그런 점에서 사실 당당하기도 하다. 책은 그런 대담한 솔직함으로, 경계심도 꿈도 많은 청소년들에게 조심스럽고도 대담한 걸음으로 바짝 다가간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얼굴> 송기원 지음/ 문이당 펴냄/ 2006년

*이 서평은 제 블로그(blog.paran.com/mindlemin)에도 싣습니다.



아름다운 얼굴

송기원 지음, 문이당(2006)


#아름다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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