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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Why')와 '어떻게(How')가 살아있는 핀란드 교육

 

지난 6월 1일부터 5일까지 하자 센터가  함께 한 사회적 기업  교육 프로젝트가 열렸다.

 

참가자 중 한 명이  필란드 직업학교 교장 선생님인 유하 페카 사리넨 ( Yuha Pekka Saarinen. 핀란드 옴니아(Omnia)  직업학교 교장) 이다. 일정이 끝난 뒤 그이와 강원도 평창의 감자꽃 스튜디오에 함께 갔다.  세미나에 참석하지 못했던 나는 1박 2일간   그이와 함께 하며 핀란드 교육이 왜 성공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핀란드의 고등학교는 지난 80년대 초부터 학교 서열화를 없애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서열화를 없앴다. 뛰어난 교육 효과 때문에 이민 오거나 유학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지자 외국인들에게는 교육비를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외국인에게도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모든 길은 옴니아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Omnia) "

 

옴니아 직업학교 소개 첫 페이지에 쓰여진 문구라고 한다. 도대체 저런 대단한 자부심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교장 유하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청소년이 지역사회에서 교육을 통해 직업적 능력을 갖게 하는 것,  졸업자가 취업해 노동현장에 투입되었을 때 가장 우수한 능력과 실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을 교육적 가치로 삼는다. 노동현장의 사람들과 학생이 원하는 수요자 맞춤교육을 하는 것이다. 핀란드 직업학교는 인기가 좋아 초등과정을 졸업한 학생들의 50% 이상이 들어오고 있다."

 

여하간 공학을 전공한 교장은 얼마나  관찰력과 호기심이 뛰어나던지   여행 길 내내   통역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예를 들면 "이곳은 여름에 비가 많이 오는 곳이야 "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이는 당장 "몇 밀리미터나 오는데?" 라고 묻는다.  "이곳은 고도가 높다"고 하면 당장 "해발고도로  몇 미터냐?"고 되물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납득할 만한  과학적 근거와 정확한 통계수치였다.

 

심지어 고속도로를 달릴때  차량  번호판을 뚫어지게  관찰하던  그이는  "흰색과 초록색, 노란색과 빨간 색 번호판이 어떻게 다르냐?" 고 물어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우리가단 한 번도 주의 깊이 본적이 없는 것들에조차  그이는 과학적 근거와 정확한 통계수치를 요구 했다.

 

우리는 비로소  끊임없는 호기심과 탐구심인   왜 '(Why)'와 어떻게(How)'가 삶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모습이야말로 그들이 최고의 교육을 통해 최고의 인재를 키워낸 저력이 아닐까 라며 무릎을 쳤다.

 

그렇다면 서열화, 경쟁력에 목숨을 건  사교육 왕국인  대한민국과 해마다 최고의 명문대학에서 학위를 딴 명석한 호모사피엔스들이 쏟아져 나오는 미국의 교육의 현실은 어떠할까?

 

 

현대 교육의 신화적 맹점을 캐다

 

<학교를 잃은 사회 사회를 잊은 교육>의 저자 데이비드 W 오어는 생태학적 문맹을 양산해내는 현대 교육을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을 만들어 내는 곳으로 비유한다.

 

현대 교육이 맹신하는 신화의 허점을 데이비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여섯 가지 신화의 맹점을 함께 생각해 본다.

 

첫째 '무지가 해결 가능한 문제'라는 신화다. 저자는 무지는 해결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의 일부라고 말한다. 인간이 하나의 사실을 알아내는 것은 우주의 수많은 비밀 중 먼지같이 사소한 것 하나를 알아내는 것에 불과하다. 인간의 지식은 늘어나지만 팽창하는 우주처럼 인간의 무지의 영역 또한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둘째 '인간이 충분한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으면 '행성 지구를 관리' 할 수 있다'는 신화다. 고등교육은 인간의 지배력을 최대한 확장하려는데 있다. 그러나 인간의 무한한 욕구에 맞추어 행성을 바꾸려고 하는 것보다 유한한 지구에 맞춰 인간의 삶의 양식을 바꾸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셋째 '지식의 증가에 따라 인간의 미덕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아다시피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일부 지식의 증가로 전체적인 지식을 측정할 수 없고 지식의 양이 인간의 품성과 양식을 키워주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과학의 발달과 지식의 증가는 인간의 개인화, 경쟁화, 권력의 고착을 부추기고 있다. 더구나 세계화는 향토 지식과 정신문화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지역적이든 전국적이든 간에 지리에 대한 무지가 손 공구에 대한 무지만큼 용서가 되고, 고향에 대한 헌신이 일시적인 기분 전환거리에 불과하고 결국에는 고지식한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현대 사회의 섬뜩한 본성이다.

 

지리를 이해하기 보다 경제논리에 맞춰 파괴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사고는 그릇된 신화에서 비롯된다.결국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지속 가능한 평화공존 관계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 현대 교육 신화가 지닌 허상때문인 것이다.

 

넷째 '인간이 해체한 것을 충분히 복원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다. 경제학자는  대부분생태학이나 열역학에 관한 기초지식조차 없는 상태로 사회에 일원이 된다. 그리고 경제논리를 앞세워 개발논리를 편다.  사실  토양침식, 공기와 물의 오염, 자원고갈의 비용을 국민총생산에서 뺀다면 인간은 이전보다 훨씬 빈곤해진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밀 한 가마를 기르기 위해 표토층 세 가마를 잃는다는 사실을 국민이 아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학교 교육 역시  그것을 알지 못하게 하는 불완전한 교육을 하고 있다.

 

다섯째 '교육의 목적이 학생들에게 지위 상승과 성공의 수단을 제공한다'는 신화다. 그러나 교육은 결단코 성공의 수단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지구는 성공한 인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병든 지구가 필요로 하는 인물은 평화중재자, 치료사, 복원가, 이야기꾼 자연에 순응해 자연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를 지닌 사람이다.

 

여섯째 '인간 문화가 인간 성취의 정점을 나타낸다'는 신화다. 저자는 이를 최악의 문화적 오만이자 역사와 인류학을 전적으로 오독한 것이라고 평한다. 공산주의는 너무 많은 비용으로 적게 생산했으며 금욕적 도덕으로서 패했다면, 자본주의는 너무 많은 비용을 들여 넘치게 생산하고 너무 적게 공유하고 도덕을 전면적으로 파괴해서 실패했다고 단언한다.

소수의 사치스런 부를 위해 거리의 비명, 비정한 폭력, 아노미, 가장 절망적인 형태의 가난이 세계에 만연하도록 방치된 붕괴하는  지구위의  위기의 삶이 현대 교육이 빚은 결과다.

 

어떻게 교육을 되살릴 것인가

 

그렇다면 이토록 파괴적이고 제멋대로며  변한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미친 교육을  어떻게 제자리로 되돌릴 것인가.

 

그는 지금부터라도 현대 교육 신화의 허구성을 인식하고 생명이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이해하라고 호소한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인간의 무한 욕망을 부추기는 대신, 생태와 환경, 자연을 이해하는데 바탕을 둔  소박한 교육이다.  인간성을 잃어버린 지식의 주입은 인간 모두를 파괴하는 범죄자를 만들어 낼 뿐이다.

 

독일의 무기 생산량을 계속 늘려 제 2차 세계대잔을 훨씬 더 길게 이끄는 역할을 한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는 이렇게 고백했다.

 

" 내 도덕성의 실패는 이 항목이냐 저 항목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사건들의 진행과정 전체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데 있다. 나는, 권력의 핵심부에 있는 우리로서는 추호도 의심한 적이 없는 세계 지배를 목적으로 한  전쟁에 참가했다. 게다가 내 능력과 활력으로 나는 전쟁을 오랜 기간 연장시켰다...... 기술의 가능성에 현혹된 나머지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전쟁에 봉사하는데 바쳤다. 그러나 결국 전쟁에 대한 내 감정은 대단히 회의적이다. (Speer 1970, pp523~524)

 

이제 지구  생명체의 1/5이 사라질 생물학적 홀로코스트를 생각해 봐야만 한다. 슈페어가 바닥에 흘린 사람의 피를 보고 고개를 돌린 시점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면 레오폴드는  1922년 힐라자연보호구역( Gila Wilderness)에서 다른 종류의 전환점을 보았다. 레오폴드와 동료들은  강둑 옆의 암늑대와 새끼들을 보고 총을 쏘았다.

 

우리가 다가가자 때마침 죽어가는 암늑대의 눈에서 사나운 초록 불길이 보였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그 뒤로 한 번도 잊지 않았다. 암늑대의 눈 속에 내가 모르던 새로운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늑대와 산만이 알고 있는 무언가가. 당시 나는 젊었고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욕망이 넘쳤다. 나는 늑대가 적어지면 사슴이 더 많아진다는 뜻이며, 따라서 늑대를 다 없애면 사냥꾼의 낙원이 된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록 불길이 수그러드는 것을 보고 나서 나는 늑대도 산도 그런 견해에 절대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해했다.( Leopold 1966.pp.137~139)

 

레오폴드의 그 이후의 삶은 그 사나운 초록 불길과 산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두가지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깊이 사색하는 과정이었다. 슈페어가 사람의 피를 보고 자신이 비정치적이라고 생각한 바로 그 지점에, 레오폴드는 "생물교육이 시민을 키울 수단"이라고 자각한 것이다.

 

인간의 지식이 인간을 파괴하는 무기가 되지 않으려면 인간  본성을 넘어선 이성과 의지에 따라 진리와 선, 도덕과 양심을 회복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자연 앞에 겸손해지려는 노력을 해야만 할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왜(Why) 우리는 교육을 받는가?  교육 결과를   어떻게(How) 현실에 바람직하게 적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학교를 잃은 사회 사회를 잊은 교육

데이비드 오어 지음, 이한음 옮김, 현실문화(2009)


태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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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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