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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노조원들이 공장 점거농성중인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 법원 강제집행이 시작된 20일 오후 농성중인 노조 간부 부인이 자택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노조원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노조원들이 공장 점거농성중인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 법원 강제집행이 시작된 20일 오후 농성중인 노조 간부 부인이 자택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노조원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구조조정에 반발, 쌍용차 공장 점거농성 중인 노조 간부의 아내가 20일 오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쌍용차 회사측이 비해고자의 출근을 개시하며 노노갈등을 조장하고, 법원이 노조에 대해 강제집행을 시도한 직후였다. 파국으로 치닫는 쌍용차 사태를 외면한 채 '불개입' 방침으로 일관한 정부의 '무책임'이 낳은 비극이라는 지적이다.

 

이아무개 쌍용차노조 정책부장은 아내의 죽음 앞에서 "집으로 경찰 소환장이 계속 날아오고 회사의 손배소 제기 얘기가 나오자, 아내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다"며 오열했다.

 

▲ 아내 잃은 쌍용차 노조간부의 통곡 아내의 자살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쌍용차노조 정책부장 이아무개씨가 지인에게 소식을 알리다가 통곡하고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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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 전화 받고 달려갔지만... "○○아!" 오열

 

조건준 금속노조 정책국장이 이아무개 부장과 주변 인물 등의 진술을 종합해서 전해준 고 박아무개(29)씨의 사망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다.

 

이아무개 부장이 아내 박씨의 자살 소식을 들은 것은 이날 낮 12시경이었다. 당시 이 부장은 경찰의 공권력 투입에 대비해 동료들과 함께 쌍용차 도장공장을 지키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이 부장의 장모 조아무개(53)씨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아내가 목을 맸다는 것이다.  

 

조씨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경 건강이 좋지 않은 박아무개씨를 집에서 쉬게 하고, 본인도 감기몸살로 몸이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조씨는 집에 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초코파이를 샀다. 지난해 12월부터 사위가 임금을 받지 못해 딸이 먹을 것도 제대로 사 먹지 못할 정도로 경제 사정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조씨는 이날따라 딸이 평소 초코파이를 좋아했던 게 생각났다고 한다.  

 

초코파이를 사들고 집에 왔지만 박씨가 보이지 않았다. 집안 곳곳을 찾아 헤매던 조씨는 안방 화장실 앞에서 넥타이로 목을 맨 박씨를 발견했다. 놀란 조씨는 곧바로 사위 이아무개 부장에게 전화를 했고, 이 부장이 시키는 대로 119에도 신고를 했다.

 

조씨로부터 전화를 받은 이 부장은 충격에 휩싸인 채 부인의 이름을 외치며 정신없이 공장을 뛰쳐나왔다. 그러나 노조 간부인 이 부장은 공장을 둘러싸고 있던 경찰에 곧바로 연행됐다. 이 부장 동료들이 "사형수도 마지막 가는 길에는 가족을 만나게 해 주지 않느냐"며 항의했고, 이 부장은 경찰들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이 부장이 도착했을 당시만 해도 병원에서는 박씨에 대한 심폐소생술을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이 부장은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30여 분 뒤 병원측은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며 박씨의 사망을 최종 통보했다. 이 부장은 "○○아, ○○아, 우리 ○○이 불쌍해서 어떡해"라며 오열했다. 이 부장과 박씨 사이에는 각각 4살, 8개월 된 아들이 있고, 박씨의 사망 당시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있었다고 한다.

 

해고자 아니지만 점거농성 합류... 장인·부친 이어 아내까지 가슴에 묻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노조원들이 공장 점거농성중인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 법원 강제집행이 시작된 20일 오후 농성중인 노조 간부 부인이 자택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노조원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노조원들이 공장 점거농성중인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 법원 강제집행이 시작된 20일 오후 농성중인 노조 간부 부인이 자택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노조원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이아무개 부장은 아내를 포함해 올해 들어서만 세 명의 가족을 잃었다. 지난 2월 이 부장의 장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두 달 뒤인 4월에는 이 부장의 아버지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부장도 이 부장이지만, 두 달 사이에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의 죽음을 잇달아 감당해야 했던 박씨는 산후 우울증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박씨는 지난 6월까지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최근 들어 많이 호전되는 듯 했다.

 

하지만 쌍용차 사태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박씨는 다시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됐다. 박씨의 집은 이미 회사측으로부터 가압류가 됐고, 경찰은 벌써 3차례나 이 부장에 대한 소환장을 발부한 상황이었다. 박씨가 심적으로 힘들어 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 부장은 지난 11일 어렵게 공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박씨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부장은 집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시 공장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실 이 부장은 정리해고 대상자가 아니다. 하지만 이 부장은 "어떻게 동료들이 해고되는 모습을 지켜만 볼 수 있느냐"며 굳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현재 쌍용차 공장 안에는 이 부장을 비롯해 해고 대상이 아닌 조합원 상당수가 해고된 조합원들과 생사를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 것은 지난 16일경이었다. 박씨가 이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왜 나한테 자세한 말을 안 해주느냐. 위험하지 않느냐"며 걱정을 하더라는 것이다. 해고자 명단에 오르지 않은 회사 동료들이 박씨에게 "산 자(비해고자)는 다 나왔는데, 당신 남편만 안 나왔다. 그렇게 계속 있으면 재산도 다 잃고 감옥에 간다"고 회유한 게 화근이 됐다.

 

박씨는 "더 이상 회사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회사 상황이 원망스럽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부장은 박씨에게 "걱정하지 마라,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다"면서 안심을 시켰고, 박씨는 "다치지 말고 돌아오라"며 전화를 끊었다.

 

박씨는 그 얘기를 들은 뒤부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평소 하루에 3~4차례씩 하던 박씨의 전화가 뜸해진 것도 그 때부터였다고 이 부장은 회상했다. 이 부장은 박씨가 걱정이 돼 전날(19일) 저녁 다시 통화를 했다. 그러나 그 통화가 박씨와의 마지막이 될 줄, 이 부장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배성태 민주노총 경기본부장은 "고인의 건강이 많이 호전된 상황이었지만, 쌍용차 문제가 터지자, 심적 고통을 가중시킨 것 같다"며 "오늘 오전에 집달관들이 공권력과 함께 쌍용차 공장에 진입했고, 그런 상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돌아가신 분이 심적 고통을 더 받은 것 같다"고 전했다.

 

현재 고 박아무개씨의 시신은 평택시에 소재한 굿모닝병원 영안실에 안치돼 있다.

 

사측 "식량 제공? 범법자에게 인도주의는 없다"

 

한편 쌍용자동차 사측은 이날 노조에 대한 '불관용' 원칙을 거듭 피력하며 식품, 의약품 반입 중단은 물론 단수와 가스 공급 중단까지 천명했다.

 

최상진 쌍용자동차 기획재무본부 본부장(상무)은 "일부에서는 공장을 불법 점거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식량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는데, 범법자들에게 인도주의를 이야기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며 "회사는 이제 조업 재개를 위한 준비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최 본부장은 "오늘부터 전기를 제외하고 수도와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며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노동자들은 법에 따라 점거를 풀고 공장에서 퇴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쌍용차 점거농성#쌍용차 노조 #노조간부 아내 자살#공권력 투입#강제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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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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