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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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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은선(37)씨. 요즘 들어 마음이 괜시리 심난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처음에는 장마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 며칠 전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아이의 알림장을 보고 그 원인을 알았다. 이름하여 '여름방학 울렁증'이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넉달째. 이제야 좀 이 생활에 적응되나 싶었는데 어느새 여름방학이 코앞에 다가왔다. 또 다른 고민이 몰려든다. 다시 새 판을 짜야 하는 것이다.

워킹맘의 가장 큰 고민은 뭐니 뭐니 해도 이 방학동안 '아이를 어디에 맡기느냐'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그럭저럭 방법을 강구해볼 수 있다. 그러나 저학년 특히 1학년의 경우에는 그것도 여의치않다. 봐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 주위의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가 된 워킹맘들은 어떻게 해결할까? 

학원 > 방과후수업 > 친척 > 각자 알아서?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계획하고 있는 것은 여름방학내 학교에서 실시하는 '방과후수업'이다. 평소 예체능이나 특기과목에 대한 보충을 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관리해준다는 이점 때문에 많은 학부모들이 방과후를 선택한다. 그러나 방과후 수업이 일주일 중 이틀이나 삼일 정도만 진행되기 때문에 방과후수업이 없는 날은 다른 방법을 또 찾아야한다.

방과후수업이 끝난 뒤에는 주로 학원을 간다. 이른바 '학원뺑뺑이'다. 엄마들 스스로도 '뺑뺑이'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아이를 봐줄 사람은 없고, 집에 혼자 둘 수도 없는 처지에서 엄마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학원보내기가 가장 '최선'이다. 엄마아빠가 퇴근해서 집에 오기까지,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등원과 하원을 반복해야 한다. 그 사이 중간중간 엄마와 휴대폰으로 끊임없이 '이상무' 신호를 주고받아야 한다.

평소 친분이 있는 엄마들이나 친구들에게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평소 엄마들끼리의 모임에 나갈 기회가 비교적 적은 워킹맘으로서는 그러한 인맥을 쌓아두기가 쉽지 않다. 설사 가까운 사이가 있다 하더라도 하루이틀 이야기다.

그 다음 워킹맘이 선택하는 방법은 할아버지나 외갓집, 혹은 가까운 친척에게 부탁하는 경우다. 실제로 워킹맘 중에는 여름방학 기간동안 친척들에게 부탁하거나 친정엄마에게 부탁할 거라고 대답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함께 살지 않는 이상, 서로의 스케줄이나 계획을 맞추기도 어렵거니와 누군가 데려다주지 않으면 초등학교 1학년이 혼자서 그 집을 왕래한다는 것은 벅찬 일이다. 아울러 학원에 공부, 운동 등 할 일이 많은 초등학생의 스케줄을 조부모가 관리하고 챙겨주는 일 또한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다. 

아이 때문에 직장 그만두고 공부방 운영하는 엄마

맞벌이를 하고 있는 양숙희(40)씨도 초등학교 1학년 아들 종혁이를 방학동안 시골의 외갓집에 맡길까 생각중이었다. 친정부모님도 승낙하던 차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났다. 종혁이는 컴퓨터도 없고 친구도 없는 심심한 시골 외갓집에 가기 싫다는 것이다. 차라리 문 잠가놓고 혼자 집에 있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어떻게할까 고민중이라고 했다. 

위에 언니나 누나, 형 오빠가 있는 경우는 그래도 조금 낫다. 점심식사를 미리 준비해두고 가면 언니나 오빠가 동생들 점심도 차려 먹이고 학원도 데려다줄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의지는 된다. 그러나 언니오빠들도 바쁘고 제각각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맡겨둘 수만은 없는 일이라고 한다.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신지윤(38)씨는 이번에 전주시에서 실행하고 있는 아이돌보미 이용을 신청했다. 검증을 받은 아이돌보미가 집으로 파견되어 하루 세시간씩 아이를 돌봐준다. 공부도 봐주고 함께 책도 읽어준다. 그러나 아이돌보미에게 가사일은 제외되어있기 때문에 마음놓고 온전히 맡기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점심이나 저녁, 간식은 미리 준비해놓고 가야 한다. 무엇보다 아직 어린 딸아이와 하루 세시간씩 만나는 낯선 아이돌보미의 유대관계가 잘 이루어질까 내심 고민된다. 그러나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게 신씨의 설명이다. 경쟁이 치열한 아이돌보미 이용자에 뽑힌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미경(41)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재작년부터 공부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일도 할 수 있고, 아이들도 돌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건 최씨의 착각이었다. 방학 때면 오히려 더 증가하는 학생들 때문에 정작 자신의 아이에게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상황이 안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아예 없는것보다는 낫겠지라는 마음으로 하고 있지만 어느 때는 두 가지 중 한가지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전업주부에게도 '방학 울렁증'은 있다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방과후 학생들과 함께 학교생활 및 방과후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방과후 학생들과 함께 학교생활 및 방과후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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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여름방학 울렁증을 겪는 사람은 워킹맘뿐만이 아니다. 전업주부 역시 여름방학이면 몸살을 앓는다. 하루종일 아이와 옥신각신, 신경전을 벌여야 한다. 비유를 하자면 워킹맘의 울렁증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발등에 떨어진 불'같은 존재라면 전업주부의 울렁증은 정체도 보이지 않고 속시원한 해결책도 없는 '스멀스멀 다가오는 안개'같은 존재다.

긴장이 풀리고 생활리듬이 느슨해진 아이들은 엄마 말을 잘 안듣고,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의 생활습관을 바로잡아주어야 겠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김숙자(43)씨는 중학교 1학년 딸과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두고 있다. 김씨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 때문에 또다시 우울증이 도질 지경이라고 말했다.

"전업주부라고 해서 하루종일 집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친구들 모임도 있고, 봉사활동도 하고 저같은 경우는 파티플래너를 목표로 열심히 수강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방학 때가 되면 다시 아이의 스케줄 때문에 일정을 다시 짜야 해요. 엄마가 멀쩡히(?) 집에 있는데 누구에게 맡기는 것도 눈치보이고 해서 그냥 포기하고 집에 눌러앉는 경우가 많죠. 그러다보니 저도 스트레스가 쌓이니까 아이하고 더 마찰을 일으키게 되고요."

방학동안 아이와 가장 큰 마찰을 일으키는 부분은 단연 컴퓨터와 관련된 것이다. 방학 때가 되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 컴퓨터 하는 시간이 더 늘게 된다. 이 때문에 전업주부들이라 하더라도 아이들을 학원이나 방과후활동, 캠프 등에 보내게 된다고 한다. 꼭 제3의 보육자가 필요해서만은 아니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방학숙제도 여름방학을 심난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애들 숙제가 아니라 엄마숙제'라는 말이 있듯 엄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숙제들이 많다. 워킹맘은 그렇다치더라도 '집에 있으면서 애들 숙제도 안봐주고 뭐하냐'는 시선 때문에 김씨는 방학숙제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

방학이야 어찌어찌 지나간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름방학을 없앨 수도 없는 일.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다. 학교측에서도 맞벌이 부부들의 처지는 이해하지만 달리 딱히 어떻게 해 줄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 다만, 각자의 재량에 맡길 뿐이다.

어찌어찌하다보면 방학은 지나갈 것이다. 이 학원에 갔다가 저 학원에 갔다가, 이 집에 맡겼다가 조부모댁에도 맡겼다가…. 이러다보면 40여 일의 여름방학도 지나가고 다시 2학기를 맞이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또 워킹맘들은 다시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다시 새로운 보육자를 찾아야하고 다른 스케줄을 짜야 한다. 어제의 보육자가 내일의 보육자가 되어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허들경기를 하듯, 한 고비 넘으면 또 한 고비를 준비해야하는 게 워킹맘들을 더욱 지치게 만든다.

[취재후기] 옛날에도 방학울렁증 있었을까?
내가 결혼하기 전, 그러니까 한 10년전쯤이다.

직장에 다니던 한 여자선배가 여름방학을 맞이해 자신의 딸을 캠프에 보내고 무척이나 홀가분하고 즐거워하는 걸 보고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비록 2박3일의 일정이었지만 '날아갈 것 같다'고 좋아했다. '딸이 안 보고싶을까? 어쩜 저렇게 좋아할 수 있지?' 싶었다. 그때는 결혼도 하기 전이었고 조카도 없었을 때라 엄마들이 받는 방학 스트레스에 대해 전혀 무지한 상태였던 것이다.

예전의 엄마들은 어땠을까? '여름방학 울렁증'이라고 하면 일각에서는 '옛날에는 더 좁은 집에서, 더 많은 식구들하고 북적북적 잘도 지냈는데 참 요즘 젊은 여자들은 유별나'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때라고 해서 엄마들에게 방학 울렁증이 없었을까.

분명 있었을 것이다. 다만, 표면화, 여론화되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엄마들이 예전에 비해 사회에 진출을 많이 한 데다, 방학기간에 뭔가 특별한 경험이나 학습을 해야만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알파맘'에 대한 부담감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가정 내에서 남녀평등이 많이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아이의 양육문제를 1차적으로 부담하게 되는 쪽은 대개 엄마다. 엄마들의 여름방학 울렁증을 단지 '해프닝'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이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름방학 울렁증#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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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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