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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타 기온 야마카사

 

1241년에 조텐지 절의 개종조가 질병을 막기 위해 기원하며 물(감로수)을 뿌린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매년 7월 1일이 되면 10m 이상되는 가자리야마(장식을 한 축제용 거대 수레)가 시내 14곳에서 상설 전시되어 하카타 전체가 야마카사 축제 일색으로 활기가 넘친다. 하이라이트는 15일 오전 4시 59분. 한밤중에 모인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큰북의 신호 소리와 함께 수레를 짊어진 남자들이 하카타의 거리를 전력으로 질주하는 것.(출처 http://yokanavi.com)

 

 

휴대전화에 맞춰 놓은 모닝콜이 울린다. 새벽 2시 45분. 잠시 멍하니 머리가 빈 느낌이다.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닌데… 뭐지? 그러고 보니 내가 늘 일어나는 방이 아니다. 공기도 다르다. 그렇지, 여긴 일본이다. 어제 출장을 왔고, 사람들과 즐겁게 맥주를 마셨고, 제법 많이 마셨지만 호기롭게 내일 있는 지역 축제는 꼭 찍을 거라고 했다. 이제 기억이 난다. 새벽 3시에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금 몇 시? 2시 48분이다. 이런, 좀 늦겠다.

 

부지런히 샤워를 하고 몇 분 늦게 로비로 내려갔다. 아직 깜깜한 밤이다. 눈을 비비며 앉아 있는 일행도 있고 아직 내려오지 않은 일행도 있다. 그다지 기다리지 않아도 될 일행이었지만 15분까지 기다려 본다. 그리고는 길을 나섰다. 새벽이지만 후쿠오카의 공기는 눅눅하다. 어제의 습기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듯하다. 여기에 오늘의 더위가 얹혀질 걸 생각하니 벌써 답답해진다.

 

10분 정도를 걸어 오늘의 목적지인 도초지[東長寺] 앞에 다다른다. 아직 경찰이 도로를 통제하지는 않고 있다. 새벽을 가르며 택시들이 지나고 있고, 택시를 타고 이곳까지 찾아오는 관광객도 많다.

 

아주 번잡한 거리지만 새벽은 역시나 차분하다. 구경꾼들이 모여들고 있기는 하지만 여유롭다. 한쪽에는 엉덩이를 훤히 드러내 놓은 아저씨와 꼬마들이 물통을 두고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일본에 자주 드나들고 있기는 하지만 훈도시는 처음 본다. 눈에 설고, 어설퍼 보이기도 하지만 일본의 여름 날씨를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한증막 같은 여름을 버티기에 최적의 복장이 아닐는지.

 

하늘이 조금씩 밝아 오고, 거리의 사람들도 제법 붐빈다. 멀리 보이는 하카타역의 타워 크레인들이 마치 에반게리온의 사도같다.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우주에서 내려온...

 

새벽 5시가 되어 간다. 주변에서 휴대전화로 보는 DMB 방송의 톤이 높아진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역시 굵직해진다. 급기야 탄성이 터지는 걸 보니 출발한 모양이다.

 

어디선가 북소리가 울리고 거리 앞쪽에서 술렁거림이 전해 온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달려오고 있다. 오늘의 첫 팀이다. 그런데 가마는 없다. 아이들도 많이 섞여 있다. 여자아이들도 보인다. 이건 뭔가? 달려온 무리는 도초지 앞에 멈춰 서고, 도초지에 예를 드리는 듯하다. 축제의 절차인 모양이다. 잠시 모여서 구호를 외치고는 거리를 돌아 사라진다. 이들의 외침은 마치 "으쌰~ 으쌰~"와 흡사하다.

 

 

첫 행렬이 사라진 후 곧이어 가마가 나타난다. 제법 크다. 가마 위에는 지휘자가 앉아 이동을 지휘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물을 뿌려 이들의 땀을 식혀 주고 있다. 출발점에서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데 어떤 이는 벌써 지쳐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가마는 힘차게 달려온다.

 

멀리 동터오는 하늘을 배경으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거리를 달리는 이들의 모습에서 평소 검은 양복에 어깨를 늘어뜨리고 다니는 일본 중년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애써 오버래핑을 시켜 보지만 희끗희끗한 백발만 겹쳐 보일 뿐이다.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관광객만은 아닌 듯하다. 누군가를 가리키며 웃는 모습이나 훈도시를 입은 남자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 가족이거나, 회사 동료이거나, 동네 사람이거나…. 생면 부지의 사람은 아닌 듯하다.

 

가마의 행렬은 있는 힘껏 달려 거리를 지나쳐간다. 가마를 메는 사람도 달리고 주변에서 그냥 달리는 사람도 있다. 어떤 팀은 일사불란하게 가마를 교대해 가며 달리기도 하고, 어떤 팀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가며 달리기도 한다. 모두 열심이다. 달리는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덩달아 사진 찍는 나도 열심.

   

 

시간을 재서 순위를 매기는 경주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이 행사는 후쿠오카의 축제일 뿐이다. 한 달 이상을 모여서 팀을 짜고, 가마를 만들고, 호흡을 맞추고, 힘을 키우고. 아이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바라보며 참여와 전통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되겠지. 아마 후쿠오카에 사는 아이 중에는 꼬마 때 아빠와 함께 훈도시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던 즐거운 기억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제법 있을 듯하다.

 

 

일본의 조직은 딱딱하고 틀에 박혀 있는 문화라고들 이야기한다.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관한 매뉴얼이 반드시 존재하며, 신입사원은 반드시 짙은 색 양복에 단색 넥타이를 해야 하고, 아무리 만취해도 회식자리는 반드시 박수 짝 짜짝 짝 짝으로 끝나야 하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회식자리에서 온갖 아양을 떨어야 하고…. 특히 후쿠오카는 동경보다 보수적인 곳이라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일년에 한 번, 한 달 남짓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서로의 엉덩이를 훤히 들여다보면서 고함 치고, 힘을 모으고, 호흡을 맞추는 그런 조직이라면 처음 생각보다 살 만한 조직일 것 같기도 하다. 더구나 엄하고 신경질적인 상사의 엉덩이를 내 아내도 보고, 우리 아이도 볼 수 있는 축제가 있으니 더더욱 말이다.

 

 

어쩌면 이러한 축제가 일본 사회에서 느껴지는 경건함, 질서, 조직화 등을 받쳐 주는 밑거름이 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산에 올라가 "야호" 한 번 내지르는 것으로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 우리로서는 별로 느껴 본 적이 없는 엄청난 에너지를 텐진 한복판에 쏟아 버리는 이 사람들이 살짝 부러워진다.

 

우리에게도 분명 이러한 축제와 분출의 기회가 있었을 텐데 남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둘로 나뉘어 원수처럼 아웅다웅 하는 통에 모두 잊어버린 것은 아닐는지. 40여 년을 살았지만 탁 트인 거리에서 마음껏 소리를 질러 본 기억이라고는 2002년 월드컵이 고작이다. 아 참, 87년 6월 항쟁도 있기는 했다.

 

알면 알수록 부러운 것이 많아지는 나라, 그리고 우리의 옛 것을 엄청나게 빼앗아 가고, 없애버린 주범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기에 생각할수록 얄미워지는 나라, 일본에 대한 복잡한 감정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만 간다.

덧붙이는 글 | 제 개인 블로그에도 게제합니다.


#후쿠오카#하카타#야마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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