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리읽기 - 글쓴이가 드리는 말
[우리 말에 마음쓰기] ['-의' 없애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적' 없애야 말 된다], 이 세 흐름에 따라서 쓰는 '우리 말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있는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우리 생각을 열'고 '우리 마음을 쏟'아, 우리 삶과 생각과 말을 한 동아리로 가다듬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자라서 나쁘다'거나 '영어는 몰아내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 삶과 생각과 말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걸림돌이나 가시울타리 가운데에는 '얄궂은 한자'와 '군더더기 영어'가 꽤나 넓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쓸 만한 말이라면 한자이든 영어이든 가릴 까닭이 없고, '우리 말'이란 토박이말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쓸 만한지 쓸 만하지 않은지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한자와 영어를 아무렇게나 쓰고 있습니다. 제대로 우리 말마디에 마음을 쓰면서 우리 말과 생각과 삶을 가꾸지 않습니다. [우리 말에 마음쓰기]라는 꼭지이름처럼, 아무쪼록 '우리 말에 마음을 쓰면'서 우리 생각과 삶에 마음을 쓰는 이야기로 이 연재기사를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ㄱ. 똑같은 텍스트

.. 왜냐하면 그 둘은 똑같은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  《이지누 엮음-잃어버린 풍경 (1)》(호미,2005) 8쪽

하루가 다르게 '텍스트'라는 영어 낱말을 자주 듣습니다. 글쟁이한테서도 듣고, 책쟁이한테서도 듣습니다. 신문쟁이나 지식쟁이한테서는 벌써 예전부터 이런 낱말을 들었습니다.

 ┌ 텍스트(text)
 │  (1) 주석, 번역, 서문 및 부록 따위에 대한 본문이나 원문.
 │      '원전(原典)'으로 순화
 │   - 책은 그날의 우리가 배웠어야 할 텍스트의 하나요
 │  (2) 문장보다 더 큰 문법 단위. 문장이 모여서 이루어진 한 덩어리의 글을 이른다
 │
 ├ 그 둘은 똑같은 텍스트이기 때문
 │→ 그 둘은 똑같은 글과 사진이기 때문
 │→ 그 둘은 똑같은 이야기이기 때문
 │→ 그 둘은 똑같기 때문
 └ …

이 자리에서는 '글과 사진'을 아울러 가리키면서 '텍스트'라는 영어 낱말을 넣습니다. 말 그대로 '글과 사진'을 가리키려 했다면, "그 둘은 똑같은 글과 사진이기 때문이다"라고 적으면 그만인데, 굳이 '텍스트'라고 적어 버립니다.

우리 국어사전에는 영어 '텍스트'를 싣습니다. 영어 '텍스트'가 우리들이 쓰기에 알맞기 때문에 실었는지, 아니면 국어학자 된 분들께서 익히 쓰기 때문에 실었는지, 아니면 이 영어 낱말을 쓰는 사람이 제법 많다고 여겨서 실었는지는 모를 노릇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제아무리 많이 쓰고 자주 쓴다 하여도, 우리가 받아들일 만한 낱말이 아니라면 국어사전에 안 싣습니다. 못 싣지요. 그러면, 영어 낱말 '텍스트'는 우리한테 얼마나 걸맞거나 쓰임새 있거나 쓸모 많거나 할는지요. 우리는 바로 이 낱말이 아니고서는 우리들 생각과 마음과 뜻을 담아낼 수 없을는지요.

 ┌ 책은 그날의 우리가 배웠어야 할 텍스트의 하나요
 │
 │→ 책은 그날 우리가 배웠어야 할 읽을거리 가운데 하나요
 │→ 책은 그날 우리가 배웠어야 할 읽을거리 하나요
 │→ 책은 그날 우리가 배웠어야 할 한 가지요
 │→ 책은 그날 우리가 배웠어야 할 한 가지 읽을거리요
 └ …

가만히 살피면, 글을 글이라 않고 '텍스트'라 하면서, 그림을 그림이라 않고 '일러스트'라 합니다. 사진을 사진이라 않고 '포토'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영어로 말을 하고 글을 쓰지는 않으나, 우리 생각줄기나 마음밭을 나타내는 숱한 낱말은 '일본 한자말'이었다가 어느새 '미국 영어(영국 영어가 아닌 미국 영어)'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지난날 지식인은 한자를 대놓고 쓰면서 멋을 부리고 자랑을 했는데, 오늘날 지식인은 알파벳을 대놓고 끄적이면서 멋을 내고 어깨를 우쭐거립니다.

ㄴ. 가장 좋은 텍스트

.. 천재들의 인생은 가장 좋은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 그 활용하는 방식만 체득할 수 있다면, 천재들의 인생은 가장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  《사이토 다카시/이규원 옮김-도약의 순간》(가문비,2006) 4∼5쪽

"활용(活用)하는 방식(方式)만 체득(體得)할 수 있다면"은 "살려서 쓰는 길만 몸에 익힐 수 있다면"이나 "쓰는 길만 잘 받아들일 수 있다면"이나 "살려쓰는 길만 잘 헤아릴 수 있다면"쯤으로 다듬어 줍니다. '인생(人生)'은 '삶'으로 손질하면 되는데, "천재들의 인생"은 "천재들이 꾸려온 삶"이나 "천재들 삶"으로 손질해 봅니다. "될 것이다"는 "된다"나 "되리라 본다"로 손봅니다.

 ┌ 가장 좋은 텍스트이기 때문
 │
 │→ 가장 좋은 이야기이기 때문
 │→ 가장 좋은 길잡이이기 때문
 │→ 가장 좋은 가르침이기 때문
 │→ 가장 좋은 글이기 때문
 └ …

보기글에서는 '텍스트'가 두 번 나옵니다. 둘 모두 같은 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군데 모두 똑같이 가다듬어도 되고, 앞과 뒤를 사뭇 다르게 풀어내어도 됩니다. 저는 앞과 뒤를 조금은 다르게 풀어내고자 합니다.

 ┌ 가장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
 │→ 가장 좋은 도움말이 되리라
 │→ 가장 좋은 스승이 되리라
 │→ 가장 좋은 책이 되리라 본다
 │→ 가장 도움이 되리라 본다
 └ …

우리가 우리 말이 어떠한가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곰곰이 짚고 살피고 헤아린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싱그럽고 아름답고 넉넉하고 사랑스럽게 나눌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알맞게 쓸 말을 느끼지 못하고 찾지 못하며 알지 못합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일에 바치는 품과 눈길과 마음을 헤아려 보면 됩니다. 저마다 품을 얼마나 바치고 눈길을 얼마나 두며 마음을 얼마나 기울이느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집니다. 제대로 품을 바치며 어느 일이든 제대로 됩니다. 제대로 눈길을 두면 어느 일이나 제대로 봅니다. 제대로 마을을 기울이면 어느 일이나 반갑고 즐겁습니다.

옳게 쓰는 글에 마음을 기울여야 옳게 쓰는 글로 마무리짓습니다. 바르게 나누는 말에 눈길을 두어야 바르게 나누는 말을 알아보고 알아채고 알아듣습니다. 알차게 주고받는 이야기에 품을 바쳐야 나 스스로 내 이야기를 알차게 가꾸고, 내 맞은편 또한 당신들 이야기를 한결 알차게 가꾸려고 애씁니다.

ㄷ. 텍스트 발간

.. 비록 늦어졌지만, 이제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한흑구의 문학과 삶은 《한흑구문학선집》이라는 새로운 텍스트 발간을 계기로 마침내 합당하고도 정중한 문학적 조명을 받아야 한다 ..  《민충환 엮음-한흑구 문학선집》(아시아,2009) 14쪽

"탄생(誕生) 100주년(周年)을 맞은"은 "100돌을 맞은"으로 손보고, "한흑구의 문학과 삶"은 "한흑구 문학과 삶"으로 손봅니다. "발간(發刊)을 계기(契機)로"는 "내는 가운데"나 "내면서"로 손질하고, '합당(合當)하고도'는 '알맞고도'나 '마땅하고도'로 손질합니다. "정중(鄭重)한 문학적(-的) 조명(照明)을 받아야"는 "올바로 문학으로 다루어야"나 "올바르고 깊이 문학으로 다루어야"쯤으로 다듬으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 새로운 텍스트 발간을 계기로
 │
 │→ 새로운 책을 펴내는 가운데
 │→ 새로운 글모음을 묶으면서
 └ …

책은 책입니다. 책이니 책이라 하지, 달리 다른 말로 이야기할 까닭은 없다고 느낍니다. 책은 책이지 '서적(書籍)'이 아니요, '冊'도 아니며, 'book' 또한 아닙니다. 그예 '책'입니다. 그리고, 책은 책이지, '텍스트'가 아닙니다.

책을 모아 놓고 벌이는 잔치판일 때에는 '책잔치'입니다. '도서전'이나 '도서축제'나 '북쇼'나 '북페스티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나라 파주에 마련된 곳을 두고 '책마을'이나 '책도시'라 하지 않고 '북시티'라고 하듯, 이 나라에서는 책이 책으로 모시어지거나 섬기어지지 못합니다. 책을 책으로 받들지 못하며, 책을 책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기는, 사람을 사람으로 받들지 않는 삶터이니까요. 말을 말 그대로 모시지 않는 삶터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영어#외국어#우리말#한글#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