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종로 탑골공원 동편 골목. 싸구려 식당과 노점상이 있는 이 곳에는 커피 한 잔에 50~200원인 자판기가 있다.
종로 탑골공원 동편 골목. 싸구려 식당과 노점상이 있는 이 곳에는 커피 한 잔에 50~200원인 자판기가 있다. ⓒ 조응구

                                          

종로 탑골공원 주변은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알고 있다. 그분들을 상대로 상가가 형성되어 물가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싸다고 했다. 같은 노인 입장에서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어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탔다. 종로삼가역에서 내리니, 정오가 한참이나 남았다. 그래서 종묘를 들렸다가 탑골공원에 들어서니 소문대로 노인들이 많았다.

노인들은 행색이 각양각색이었다. 어느 노인은 교육자처럼 정장에 빨간 넥타이를 곱게 매고 위엄있어 보였으나 초라한 행색의 노인들도 많았다. 둥근 예술가 모자를 기우뚱하게 쓴 예술가 타입의 노인들도 가끔 보였다.

소일하는 모습들도 여러 가지다. 바둑 두는 사람, 장기 두는 사람, 옹기종기 모여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정치인들 비판하는 사람 등 다양했다. 비록 인생의 끝자락에서 핏기 없이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한때는 세상을 호령하며 사회를 운영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면서 비록 늙었지만 남은 삶이라도 쉼 없이 자기개발 하며 삶을 좀 보람있게 마감했으면 싶었다. 아직은 노동력이 남아있는 사람도 많았다. 사회가 이 노동력을 좀 슬기롭게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 볼 문제다. 나도  같은 노인 입장이라 이생각 저생각에 잠겨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배가 출출했다. 시간을 보니 정오가 조금 넘었다.

노인들을 상대로 한다는 음식점이 많은 공원 동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종로우체국을 막 지나니 전쟁통에나 볼법한 구호품같이 허름한 옷가지와 사탕, 과자, 신발, 미제인 듯 보이는 스킨 로션, 골동품 등을 파는 노점상이 많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60년대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주위 간판을 둘러보니 요즈음 고물가 시대에 좀처럼 볼 수 없는 싼 가격표들이 여기저기에 보여 어리둥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판기 커피 한 잔이 50원부터 최고 200원짜리까지 싸구려 음식들이 즐비했다.

이곳에서 하루를 체험해보고 싶었다. 우선 자판기가 너절하게 설치된 식당엘 들어갔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크고 작은 식탁들이 있어 이십여 명이 앉을 정도였다. 남자 주인이 혼자 왔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니 구석지고 외진 작은 탁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해장국이 천오백 원, 장터국수 천 원이라고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옆 손님이 먹고 있는 해장국을 보니 신 듯 보이는 김치 한 가지와 해장국이다. 썰렁한 밥상을 보니 푸대접받는 기분이라 얼른 주문을 못 했다. 한참을 있는데 손님들이 밀어닥쳐 그냥 나올 수 없어 내가 좋아하는 장터국수를 시켰다. 국수가 나왔는데 달랑 신 김치 한 가지만 나왔다. 국수를 한 젓가락 입에 넣으니 조미로 국물에 면발이 불러서 싼 것이 비지떡이란 말이 실감났다. 주문한 음식이라 그냥 나올 수가 없어 별로 내키지 않은 것을 겨우 먹어 끼니를 때웠다.

그리고 국수 값 천원을 주고 나오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수를 먹고 나니 속이 개운치 않았다. 장터국수 맛에 기분이 잡쳐서 체험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여졌다. 고민을 하다가 어차피 시작한 일이니 계속하기로 마음을 다잡아먹고 커피 맛을 보기로 했다.

오십 원짜리를 먹을까, 백 원짜리를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점심 장터국수에 실망해서 좀 비싼 백 원짜리 커피를 먹어보기로 했다. 백 원짜리 동전을 투입구에 넣고 밀크커피를 눌렀다. 자판기에서 컵을 꺼내 입을 대고 한 모금 마시니 혀끝에 닿는 느낌이 좋아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기대했던 것보다 맛이 훨씬 좋았다.

아까 장터국수 맛에 기분이 잡쳤던 것이 조금은 풀어졌다. 내킨 김에 이발도 해보고 싶었다. 평상시 집 옆 이발소에서 구천 원씩을 주고 했는데 이곳은 이발이 삼천오백 원, 염색까지해도 오천 원이다. 다른 곳에 비하면 엄청 싼 것이다.

허름하고 오래되어 보이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이발소 안을 살펴보니 의자가 여섯 개나 되고 기다리는 손님이 나 말고 다섯 명이나 있다. 손님이 많아 오래 기다릴 것 같았다. 그래서 막 뒤돌아서려니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얼굴이 계란형으로 곱상하게 생긴 여자 종업원이 다가와서 친절하게 바로 되니 조금만 기다리고 했다. 나는 그 여자의 친절한 서비스에 솔깃해서 기다리기로 하고 앉았다. 머리를 깎는 이발사가 여섯이라 바로바로 깎았다.

십여 분을 기다리며 손님들을 지켜보니 여러 지역 사람들이였다. 바로 앞에 이발을 한 사람들은 고희를 넘긴 듯 보이는 친구끼리 싼 이발도하고 소일도 할 겸 해서 경기 북부지역에서 공짜전철로 왔다고 했다. 나나 그들이나 고희 넘긴 남은 삶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니 참 서글펐다. 이곳에 온 대다수의 노인들은 자손들에게 폐나 끼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사는 이들일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니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이발사가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이발하는 수준을 보았기에 마음 놓고 맡기고 눈을 감고 있었다. 이십여 분 동안 이발을 간단하게 마치고 이발사가 머리를 감을 거냐고 물어서 감는다고 했다. 가끔은 머리를 감지 않는 분들도 있어 물어본다고 했다. 가격이 싼 대신 앞면도는 안 해준다고 설명했다.

이발료를 지불하려고 돈을 꺼내니 남자 종업원이 "사장님 돈 받아요" 했다. 아까 그 여자가 사장인 듯 쫓아와서 돈을 받았다. 이발이 구천 원짜리보다 더 잘한 것 같아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벌이도 없이 소비만 하는 입장이니 싼 이발료가 마음의 부담을 덜었다.

종묘나 탑골공원에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이유가 분명이 있었다. 벌이도 없으며 소비를 하는 입장이라 물가가 싼 곳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철이 닿는 곳이면 어느 지역사람이던 이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많을 때는 하루에 2~3천 명씩 모인다고 주변사람들이 말했다. 60~70대면 우리나라 근대화 발전의 초석이 되었던 사람들이다.

주변 상인들이 이윤을 목적으로는 하지만 노인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싸게 받고 있다. 정부는 이곳에 노인 복지회관 하나를 건립하고 노인 노동력 활용 방법을 깊이 있게 연구해 이들이 이곳에서 점심 한 끼라도 마음 놓고 먹고 남은 여생을 행복을 느끼며 사는 환경을 마련해주었으면 좋을 것 같다.


#노인의 복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