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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 우리 문단은 '63세대'라는 별난 이름의 문학 집단을 만났다. 이들은 1963년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에 반대했던 '63항쟁'의 주역이 아니라 바로 그해 세상을 본 이들이다. 바로 1963년 생 작가군을 말한다. 공지영, 공선옥, 신경숙, 김인숙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남자중에서도 주인석이나 고인이 된 김소진이 있었지만 여성작가들이 우리 문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남달랐다.

공선옥만 큰 상을 못탔지 다른 작가들은 우리나라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학적 토양은 태어날 때 시끄러움도 있었지만 80년 광주 항쟁의 시간에 가장 감수성 예민한 나이였고, 입학 이후부터 졸업까지의 시간이 우리 민주화 운동의 태동기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90년을 전후로 문단에 데뷔하기 시작했고, 단숨에 문단의 주류로 성장했다.

그로부터 20여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들은 각기 다르지만 흥미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찾아오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로 다시 한번 주가를 인정받은 신경숙,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복귀한 공선옥, 중국 생활을 바탕으로 여행문화서 '제국의 뒷길을 걷다'을 펴낸 김인숙도 다시 문학작품을 출산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간의 여정에서 가장 부각한 작가는 누가 뭐래도 공지영이다. 사실 공지영은 대중적인 인기는 있었지만 문학적인 성취도에서 그다지 부각되지 않은 작가였다. 기자 역시 그런 측면에서 그녀의 작품을 봤다. 그리고 십수년만에 그녀의 소설을 읽었을 때,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있었다. 바로 삶에 가장 가까운 작가가 됐다는 것이다.

장애인 시설의 문제를 고발한 르뽀식 소설
▲ 공지영 신작 도가니 장애인 시설의 문제를 고발한 르뽀식 소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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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최근에 출간된 '도가니'(창비 간)를 읽었다. 지하철에서 내릴 역을 지나쳐 버릴 수 있다는 조바심이 들 만큼 몰두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교사생활을 하다가 사업을 시작해 실패한 강인호에게 어느날 아내가 무진(霧津)시에 있는 장애인 학교인 자애학교 교사 자리를 말한다. 가족과 떨어진다는 염려 속에서 무진에 내려온다. 학교에 간 인호는 이 학교가 이사장과 아들인 교장, 행정실장 등의 왕국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의 자살과 알 수 없는 폭력이 꼬리를 문다.

그러던 중 장애는 있지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연두를 통해 교장의 성폭력이 알려지고, 자애학교의 추악한 실체를 인지하기 시작한다. 이 실체에 가장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이는 인호의 대학 선배이며 한때 자신과 감정이 있었던 서유진이다. 유진은 정치가인 남편과 이혼하고 장애아인 아이를 키우면서 무진시에서 시민인권센터를 이끄는 실천가다. 언론의 도움으로 이 사건은 세상에 폭로되지만 안개처럼 짙게 쌓인 무진시와 권력의 커넥션으로 한계에 부딪혀가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더욱이 자신의 개인사까지 드러나 가족들에게까지 오해를 산다.

소설은 어떻든 상식적인 결론이 나온다. 사실 이 나라에서 지역권력과 검찰, 경찰, 지자체, 교육청, 교회 등의 썩은 커넥션에 도전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것은 아직까지 불문가지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후 그녀가 천착한 르포식 소설의 전형을 이룬 작품이다. 책 후반 '작가의 말'에서 썼듯 이 소설은 신문기사에서 본 작은 장면을 통해 시작된다. 범죄자들이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순간 법정에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는 기사다. 장애인들에게 비명을 불러일으키는 그 절망이 무엇인지에서 작가의 상상은 시작된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번거롭게 그런 일에 내가 뛰어들 가치가 있을까를 생각한다면 쉽사리 시작할 수도 끝맺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소설속 강인호처럼 공지영은 이 사건을 취재했고, 구성해서 소설로 상자했다.

소설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액자로 껴 넣어 이미지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 강인호와 서유진의 감정 흐름도 넣어서 극의 긴장감을 이끌어낸다. 또 소설 안에 등장하는 장경사를 비롯한 인물들은 '무진기행'에서 만나는 인간군상처럼 뭔가 감춰져 있고, 은폐하려는 본성들을 갖고 있다.

이때문에 지명 뿐만 아니라 소설 전반에서 김승옥 소설에 빚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무진기행 표절 등으로 말하는 것은 당연히 넌센스다. 후배 작가가 노 선배에 바치는 오마주 정도로 이해되면 충분한 수준이다.

이번 소설에도 그녀는 문단의 평가쯤은 무시한 건지 문학적 완성도에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그녀 특유의 문체나 스타일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소설의 문학적 성취라는 것이 어떤 특정한 문체나 고고한 스타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이 실천을 동반해야한다는 의미는 어느 소설보다 잘 지킨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도가니 (100쇄 기념 특별개정판)

공지영 지음, 창비(2017)


태그:#공지영,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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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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