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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겉표지
 <도가니>겉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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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로 지내던 강인호는 아내의 주선으로 무진시에 있는 청각장애학교 '자애학원'에 취직한다. 비록 기간제 교사였지만 그는 이제야말로 월급을 착실히 모아 가장 노릇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딸과 아내에게 당당한 아빠이자 남편이 되겠다는 마음도 먹고 있었다.

무진시는 안개가 자욱한 도시였다. 강인호가 도착한 날도 그랬다. 강인호는 안개 건너편에 뭔가 불온한 것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예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것은 실제로 존재했다. 자애학원에서, 교장선생과 선생들이 아이들을 성폭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알았을 때, 강인호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다른 선생들은 알면서도 눈을 감았다. 권력자들에게 맞서는 것보다 월급을 꼬박꼬박 타는 것이 급했기 때문이다. 강인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그는 폭행당한 아이의 어머니에게 연락한다. 아이에게 안정을 취하게 해주려는 의도였다. 그것을 계기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머니가 인권센터에 연락하고 인권센터가 자애학원의 권력자들, 실상 무진시의 지배자와 같다고 할 수 있는 이들과 싸움을 시작하면서 그 거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연재될 때부터 화제를 모았던 공지영의 <도가니>는 직설적인 소설이다. 우회해서 말하지 않는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 그러나 정의를 믿는 사람들이 성폭행당한 아이들을 위해 싸움을 건다. 싸움터는 법정이었다. 그 순간 소설은 묻는다. 정의는 승리할 것인가?, 진실은 빛을 볼 것인가, 라고. 그 직설적인 질문에 세상은 긍정적으로 대답할 것처럼 보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무진시와 세상은 감동의 도가니에 빠진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자애학원의 설립자와 아들들은 무진시의 권력자들과 관련이 있었다. 판사는 물론이거니와 변호사도 그렇고 검사도 그랬다. 증인으로 나오는 사람들도 그랬다. 진실이라는 것은 그 순간 무진시의 안개 뒤로 사라져버린 듯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거짓말뿐이다.

거짓말은 무엇을 만드는가. 정의 하나 믿고 싸움을 건 사람들을 재구성하고 왜곡해서 그들을 불온한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성폭행당한 아이들이 알고 보니 어른들을 유혹했더라, 하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누구도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권력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것을 사실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아이들을 성폭행한 짐승 같은 교사들을 처벌해달라고 했을 뿐인데, 가해자들은 석방되고 피해자들이 상처받는 그런 일이 생긴다. 광란의 도가니가 만들어진 것이다.

공지영의 <도가니>는 가슴을 파고드는 비극성이 있다. 그것은 가슴을 쓰리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드는데, 그것이 이상할 정도로 오랫동안 지속된다. 소설의 여운이 짙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소설이 현실과 너무 닮았기에 그런 것일 게다. 살펴보면 <도가니>의 장면들이 놀라울 정도로 현실과 꼭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실이 사라지고 권력자들의 거짓말이 사실이 되어 정의를 희롱하고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그런 현실이 소설 속에서 보이는 것이다.

<도가니>를 읽다 보면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몸서리처질 만큼, 이 세상의 비극적인 생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도가니>에서 진실을 믿고 정의를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가 여러 번에 걸쳐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소설이, 문자 그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기에 그런 것일 게다.

공지영은 그동안 소설을 통해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끄집어냈고 공론화시켰다. 이것은 공지영 소설의 또 다른 힘이다. <도가니>는 어떨까? 이 소설 또한 그녀 소설의 하나로 기억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도가니>가 말하는 바를 보건데, 다시 시끄러워질 것 같다. 좀 더 '정의'로워지기 위한 소란이 벌어질 것만 같다. 공지영의 소설이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도가니 (100쇄 기념 특별개정판)

공지영 지음, 창비(2017)


태그:#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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