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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란한 유산>, 4명의 주인공. 왼쪽부터 배수빈, 문채원, 한효주, 이승기.
<찬란한 유산>, 4명의 주인공. 왼쪽부터 배수빈, 문채원, 한효주, 이승기. ⓒ SBS

 

SBS 주말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시청률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6월 28일 방영된 20회의 시청률은 39.9%(TNS미디어코리아)로 전날 방영된 19회의 33.5%(이하 동일기준)보다 무려 6.4%나 상승했다. 꿈의 시청률인 40%를 목전에 둔 이 대기록은 올해의 화제작 KBS <꽃보다 남자>나 MBC <내조의 여왕>도 달성하지 못 했던 것으로, 안방극장에 불어 닥친 <찬란한 유산>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게 한다.

 

사실 <찬란한 유산>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반복되어 온 전형적인 캔디형 이야기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어느 날 한순간 길거리에 나앉게 된 고은성(한효주 분)이 잃어버린 동생을 찾기 위해, 못된 새어머니를 응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찬란한 유산>은 과정도, 결말도 모두 예상 가능하다. 종국에 가서는 나쁜 새어머니는 벌을 받고 착한 은성은 성공하는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될 게 훤히 보인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이 빤한 이야기에 열광한다. 연일 상승하는 시청률은 40%를 눈앞에 두고 있고, 이승기·한효주·배수빈·문채원 등 주연배우들은 물론 조연배우들의 인기까지 상종가를 치고 있다. 언론의 반응도 호평일색이다. 올 상반기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여느 드라마와는 달리 그 흔한 '막장' 논란 한 번 없다. 오히려 언론에서는 막장 없는 '무공해' 드라마라며 앞 다퉈 칭찬하고 있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의외의 '대박' <찬란한 유산>에 숨은 흥행 1인치

 

 <찬란한 유산>에서 장숙자 사장 역을 맡은 반효정.
<찬란한 유산>에서 장숙자 사장 역을 맡은 반효정. ⓒ SBS

<찬란한 유산>의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상투적인 이야기 속에는 시청자들이 예상치 못한 의외성이 한 가지 숨어 있다. 바로 극의 핵심 소재인 유산 상속에 관한 부분이다. 진성식품의 창립자이자 사장인 장숙자(반효정 분)는 우연한 기회에 은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며칠을 같이 지낸다. 초라한 행색에 머리를 다쳐서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자신을, 넉넉하지 못한 형편 임에도 성심껏 모시는 은성을 보며 그녀는 크게 감동한다.

 

반면 언젠가 회사를 물려주려 하는 손자 선우환(이승기 분)은 오냐오냐하며 키운 탓에 회사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제멋대로 돈 쓰기에만 바쁘다. 오히려 회사를 물려받으면 팔아치우고 다른 일을 할 거라는 손자의 말에 그녀는 충격을 받게 되고, 손녀와 며느리 모녀까지 자립할 생각은 없고 자신에게 기대어 그저 쇼핑하고 명품 사들이기에 급급한 모습을 본 그녀는 가족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그리고 회사를 은성에게 물려줄 결심을 한다.

 

현실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재벌 그룹 총수들이 자기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 온갖 불법 및 편법을 동원하여 재산과 소유 지분을 증여하고, 그런 것들이 사회적인 파장과 물의를 일으켜 언론에 보도되고 법정으로까지 가는 모습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여러 차례 목격해 왔다. 설사 전문경영인을 따로 둬 경영권을 승계하진 않더라도 재산과 지분이 대를 잇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찬란한 유산>은 이 당연한 일을 감자칩 으깨듯이 와자작 으깨어버린다. 회사는 물론이고 그 밖의 모든 재산 일체를 은성에게 물려준다고 선포한 장숙자 사장의 모습에 놀라는 건 극중 그녀의 가족뿐만이 아니다. 이는 시청자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혈연중심의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절대불변의 룰이었고, 이는 드라마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진성식품의 창업자 장숙자는 그 룰을 깨버렸다.

 

장숙자 사장의 '인간중심' 경영 마인드도 시청자를 감동시켰다. '남을 밟고 일어서는 것보다 남과 함께,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더 소중한 가치'라는 그녀의 경영 마인드는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슴 속을 따뜻하게 채워줬다.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원들이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복리후생에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현실적이어서 소름이 끼치는 김미숙의 악역 연기

 

출연배우들의 호연도 시청률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극중 철부지 선우환 역을 맡은 이승기는 가수로서, 예능인으로서 이미 많은 사랑을 받는 뛰어난 연예인이다. 그렇지만 예능에서 쌓아온 이미지가 '허당'이다 보니 소위 '나쁜 남자'를 연기하는 게 어울리겠는가 하는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가 방송된 뒤 이승기는 미스캐스팅 논란이 쏙 들어갔을 정도로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고은성을 고은성답게, 고은성처럼 보이게 하는 한효주의 완벽한 연기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2005년 시트콤 <논스톱5>를 통해 데뷔한 그녀는 이듬해 KBS <봄의 왈츠>와 <투사부일체>에서 주연을 꿰차면서 주목 받았으나 존재감을 크게 어필하진 못했다. 2007년 KBS 일일 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을 통해 부쩍 성장한 그녀는 2009년 드디어 청순가련형의 연기에서 탈피하여 <찬란한 유산>을 통해 그야말로 '찬란한' 전성시대를 열었다.

 

 <찬란한 유산>에서 악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는 김미숙.
<찬란한 유산>에서 악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는 김미숙. ⓒ SBS

SBS <바람의 화원>에서 기생 정향을 연기했던 문채원의 악역 변신과, 같은 드라마에서 정조를 연기했던 배수빈의 연기 변신도 눈여겨볼만 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악역이 되어만 가는 문채원은 극 초반 부정확한 발음 탓에 논란이 있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안정되어 간다는 평이며, 오랜 연기 경력에도 무명에 가까웠던 배수빈은 매력적인 키다리 아저씨를 연기하면서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 <찬란한 유산>의 백미는 지독한 악역 백성희를 열연하고 있는 김미숙이다. 김미숙의 악역 연기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더 소름 끼친다'는 평을 들을 정도. 그녀의 집요한 악행의 사실적인 묘사는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회를 거듭하면서 그 악행이 도를 넘어설수록 시청률은 올라갔다. 19회에서 장숙자의 집을 찾아가 거짓말로 은성을 궁지에 몰아넣은 이후, 20회 시청률은 39.9%로 껑충 뛰어올랐다.

 

<찬란한 유산>은 높은 인기에 힘입어 2회 연장 방송을 선택했다. 기존의 26부작에서 28부작으로 늘어난 셈. 그러나 이 정도의 시청률에도 고작 2회 밖에 연장 방송하지 않겠다는 것은 쓸데없이 알맹이 없는 이야기만 늘려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춰진다. 떠날 때를 아는 드라마야 말로 작품의 완성도를 훼손시키지 않으며, 시청자에게 박수 받는 유종의 미를 거두는 법. 현명한 제작사의 선택이 <찬란한 유산>을 더욱 빛나게 했다.

 

앞으로 8회 분량을 남겨둔 <찬란한 유산>은 더욱 흥미진진해질 것으로 보인다. 계모 성희의 계략으로 숙자의 집에서 도망치듯 나온 은성은 궁지에 몰리는 듯했으나, 어쩐 일인지 숙자는 은성에게 회사에서 계속 일할 것을 주문했다. 환은 은성에게 점점 마음을 열어가고, 무엇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의 생존 사실과 모든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동생 은우를 찾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빤한 이야기의 빤한 엔딩을 기다려 본다.


#찬란한 유산#이승기#한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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