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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증적으로 드러난다

 

.. 극히 소수의 예외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진도일람표를 통해 실증적으로 드러난다 ..  《츠지모토 마사시/이기원 옮김-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知와사랑,2009) 224쪽

 

 "극(極)히 소수(少數)의 예외(例外)도 없다는 것을"은 "몇몇한테도 다르지 않음을"이나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음을"이나 "한두 사람조차 다르지 않음을"로 다듬어 봅니다. '사례(事例)'는 '보기'로 손보고, "진도일람표를 통(通)해"는 "진도일람표로"나 "진도일람표를 보면"으로 손봅니다.

 

 ┌ 실증적(實證的) : [철학] 사고(思考)에 의하여 논증하는 것이 아니고,

 │    경험적 사실의 관찰과 실험에 따라 적극적으로 증명하는

 │   - 실증적 방법 / 실증적 연구 / 실증적인 기풍

 ├ 실증(實證)

 │  (1) 확실한 증거

 │  (2) 실제로 증명함

 │  (3) [철학] = 검증(檢證)

 │

 ├ 실증적으로 드러난다

 │→ 잘 드러난다

 │→ 고스란히 드러난다

 │→ 또렷이 드러난다

 │→ 환하게 드러난다

 │→ 남김없이 드러난다

 └ …

 

 두 눈으로 지켜보거나 몸소 부대끼면서 '증명'하는 일을 가리켜 '실증'이라 합니다. '증명(證明)'이란 '밝히는' 일입니다. 밝히는 일이란 사람들이 알게 하는 일,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거나 나타내는 일입니다. 이리하여, 이 보기글처럼 "실증적으로 드러난다"처럼 적으면 겹말이 되어 버립니다. 이 자리에서는 한자말 '실증'을 살려 "실증한다"라고만 끝맺거나 "잘 보여준다"나 "잘 드러난다"처럼 끝맺어야 올바릅니다.

 

 어찌 보면 꾸밈말 노릇을 하는 '실증적으로'라 할 텐데, 꾸밈말을 넣고 싶었다면, 알맞는 꾸밈말을 올바르게 넣어야 합니다. 알맞지 못한 꾸밈말을 얄궂게 넣으면, 말이며 글이며 생각이며 느낌이며 온통 어수선해지고 맙니다.

 

 ┌ 한두 사람조차 다르지 않음을 진도일람표로 잘 보여준다

 ├ 한두 사람이라도 벗어나지 않음을 진도일람표로 잘 보여준다

 ├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임이 진도일람표를 보면 잘 드러난다

 ├ 어느 누구든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음이 진도일람표에 잘 드러난다

 └ …

 

 꼭 그렇지는 않으며, 꼭 그럴 수도 없는 일인데, 낱말이 짧다고 우리가 널리 쓸 만하지 않습니다. 낱말이 길다고 우리가 꺼려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가장 알맞는 낱말을 골라 가장 알맞는 글월을 엮을 뿐입니다. 글자수가 넉 자나 다섯 자라 하여 꺼릴 까닭이 없습니다. 글자수가 한 자라고 하여 가장 좋은 낱말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잘' 한 글자로 넉넉히 우리 뜻과 느낌을 담아낼 수 있는데, 괜스레 '실증적으로'처럼 다섯 글자를 집어넣어야 하느냐고 따질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글자수가 많아 '실증적으로'가 얄궂지 않습니다. 글자수가 적어 '잘'이 알맞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뜻을 환히 드러내는 낱말은 '실증적으로'가 아닌 '잘'이기 때문입니다. 글월을 깔끔하게 마무리지으면서 느낌을 또렷이 빛내는 낱말은 '실증적으로'가 아닌 '잘'이기 때문입니다. '실증적으로'는 겹말처럼 잘못 쓰이게 되지만, '잘'은 어느 자리에서도 겹말로 잘못 쓰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 실증적 방법 → 실증 방법 / 몸소 보여주기 / 몸소 보이기 / 하나씩 밝히기

 ├ 실증적 연구 → 실증 연구 / 몸소 살피기 / 몸으로 부딪히며 살피기

 └ 실증적인 기풍 → 실증 기풍 / 몸으로 부딪히는 흐름

 

 그런데 우리 스스로 '실증'이니 '실증적'이니 하고 자꾸자꾸 쓰다 보니까, "실증적 방법"을 "실증 방법"으로 다듬는다 하여도 그리 어울려 보이지 않습니다. "실증 연구"라 해야 올바르지만 "실증적 연구"라고 할 때가 어쩐지 좀더 알맞지 않느냐고 생각하게 됩니다.

 

 바른 말이 아닌 바르지 못한 말이라 할지라도 자꾸 쓰는 동안 익숙해져서 그렇습니다. 곧은 말이 아닌 곧지 못한 말이라 하더라도 하루하루 쓰는 사이 길들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실증 + 적'뿐 아니라 '실증'이라는 한자말을 얼마나 쓸 만한가 돌아보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좀더 널리 깊이 두루 차근차근 살려내거나 북돋울 말을 찾았어야 했습니다.

 

 학문을 하건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하건 매한가지입니다. 기계를 다루거나 연장을 다루어도 다르지 않습니다. 책상머리에서 글을 쓰더라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한동아리로 생각하고 살피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씩 밝혀 보이기'를 생각하고 '몸소 밝혀 나누기'를 헤아리며 '스스로 부딪히며 드러내기'를 곱씹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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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的#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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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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