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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있을 만큼의 지식

 

.. 곤충과 마주쳤울 때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을 만큼의 지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잠자리의 긴 배가 독침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만큼의 지식과 자신의 두려움을 남에게 전염시키지 않을 만큼의 감수성이 있어야 하겠다 ..  《조안 엘리자베스 록/조응주 옮김-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민들레,2004) 50쪽

 

  "적절(適切)하게 반응(反應)할"은 "알맞게 마주할"로 다듬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 앞말과 이어서 "벌레와 마주쳤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은가"쯤으로 다시 쓰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구성(構成)되어야'는 '이루어져야'로 다듬고, "자신의 두려움"은 "두려워하는 내 마음"으로 풀어 줍니다. '전염(傳染)시키지'는 '옮기지'로 손봅니다. '감수성(感受性)'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마음'이라는 낱말로 풀어내면 한결 낫습니다.

 

 ┌ 있을 만큼의 지식이

 │→ 있을 만한 지식이

 │→ 있을 만큼 지식이

 │→ 있을 지식이

 │

 ├ 알 수 있을 만큼의 지식과

 │→ 알 수 있을 만한 지식과

 │→ 알 수 있을 지식과

 │

 ├ 전염시키지 않을 만큼의 감수성이

 │→ 퍼뜨리지 않을 만한 마음이

 │→ 옮기지 않을 만큼 마음이

 └ …

 

  보기글을 통째로 다시 써 봅니다. 저라면, "벌레와 마주쳤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아야 한다. 잠자리 긴 배가 독침이 아님을 알 수 있어야 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내 마음을 남한테 옮기지 않을 만한 마음도 있어야 하겠다"쯤으로 다시 쓰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다른 분들 나름대로 이렇게도 손보고 저렇게도 손보면서, 좀더 알맞고 살가이 쓸 글투를 찾으면 됩니다.

 

 그러나 토씨 '-의'를 붙이는 말씨가 좋다고 생각한다면 어찌할 길이 없습니다. 토씨 '-의'뿐 아니라 다른 낱말을 하나하나 살피며 다스리려는 마음이 없을 때에도 어찌할 노릇이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 어머니한테서 들은 말과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 들은 말이 얼마나 알맞고 올발랐던가를 돌아볼 넋이 없으면 어찌할 수 없어요. 제아무리 높은학교를 나오고 수많은 책을 읽었다 하여도, 내가 읽고 듣고 찾아본 말이 얼마나 슬기롭고 아름답고 싱그러운가를 느낄 가슴이 없다면 어찌어찌 손쓸 틈이란 없습니다.

 

 낱말 하나 가다듬는 말다듬기가 아니라, 말마디에 깃들어 놓는 내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말다듬기입니다. 말투 하나 고쳐쓰는 글다듬기가 아니라, 글줄에 배어들게 하는 내 마음밭을 추스르는 글다듬기입니다. 내 삶을 가꾸는 말이요, 내 삶을 돌보는 글입니다.

 

 

ㄴ. 손톱만큼의 피해라도

 

.. 만약에 내 아이가 그런 소홀한 수업으로 손톱만큼의 피해라도 받는다는 것을 안다면 가장 먼저 분개하며 달려들 사람은 누구일까 ..  《김미순-여교사 일기》(주간시민 출판국,1978) 27쪽

 

 '만약(萬若)에'는 '어쩌다가'나 '모르는 노릇이지만'으로 다듬고, "받는다는 것을"은 "받는 줄을"이나 "받고 있음을"로 다듬습니다. '분개(憤慨)'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길길이 날뛰며"나 "버럭 소리를 지르며"로 손질해 주어도 됩니다.

 

 ┌ 손톱만큼의 피해라도 받는다는

 │

 │→ 손톱만한 피해라도 받는다는

 │→ 손톱만큼이라도 피해 받는다는

 └ …

 

 내 아이와 남 아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내 아이가 받는 사랑은 남 아이도 받게 되고, 내 아이가 받는 아픔은 남 아이도 받기 마련입니다. 내가 살기 좋은 삶터라면 남도 살기 좋은 삶터가 되고, 내가 고단하게 느끼는 일이라면 남도 고단하게 느낄 일입니다.

 

 나 스스로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즐겁게 받아들일 만한 말을 하고 글을 써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이러한 말씀씀이와 글씀씀이는 내 넋과 삶을 북돋우는 한편, 내 둘레 모든 이웃과 벗님한테도 넋과 삶을 북돋우는 씨앗을 퍼뜨릴 테니까요. 내 몸뚱이가 맑은 물과 시원한 바람을 좋아한다면, 남들 또한 맑은 물과 시원한 바람으로 몸과 마음을 맑고 시원하게 가꾸고 싶어할 테지요.

 

 우리는 우리 아이를 생각한다면, 우리 몸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내 살가운 벗님을 좋아한다면, 옳은 일을 붙잡고 옳은 생각을 다스리며 옳은 말을 갈고닦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ㄷ. 참새 눈물만큼의 임금

 

.. 어제도 오늘도 모자라는 빵 / 아침에 세 입 저녁에 한 입 / 참새 눈물만큼의 임금으로는 / 도무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네 ..  (클레티앙 드 트루아-셔츠의 노래) / 《김남주-시와 혁명》(나루,1991) 176쪽

 

 '임금(賃金)'은 '일삯'이나 '품삯'으로 다듬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돈'으로 다듬어도 잘 어울립니다.

 

 ┌ 참새 눈물만큼의 임금으로는

 │

 │→ 참새 눈물만큼 되는 일삯으로는

 │→ 참새 눈물만큼 주는 품삯으로는

 │→ 참새 눈물만큼 버는 돈으로는

 │→ 참새 눈물만큼 받는 돈으로는

 └ …

 

 누구나 일한 만큼 일삯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한 사람은 정규직이고 다른 한 사람은 비정규직이라 하여 더 주고 덜 주고 해서는 안 되는 노릇입니다. 한 사람은 어리고 한 사람은 늙었다 하여 누구는 더 주고 누구는 덜 받고 해서도 안 될 노릇입니다. 가방끈 길이에 따라 일삯을 가를 수 없고, 남녀에 따라서, 또 이주노동자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일삯을 나눌 수 없습니다. 땀방울에 따라 일삯이 붙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터에서는 땀방울에 따라 일삯을 매기지 않습니다. 땀방울을 더 흘렸더라도 적은 일삯에 허덕이도록 짜맞추어진 사회 얼거리입니다. 똑같이 일을 해도 찬밥과 푸대접이 어김없이 있으며, 학력이나 연줄이나 성별이나 여러 가지에 따라 사람을 나누어 놓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나뉘어 있고, 바깥으로는 훤히 드러나지 않은 신분이 갈리어 있습니다.

 

 사회가 사회답지 못하다고 할까요. 삶이 삶다이 뿌리내리지 못한다고 할까요. 이런 우리 터전에서 사람이 사람다운 기쁨을 누리기란 어렵고,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는 가운데 말이 말답기란 꿈꾸기 힘듭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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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의#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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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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