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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어떻게 이어갈까 고민하던 중에 오연호 기자가 쓴 최근(6월 8일자) 기사를 읽었다. 노무현과의 인터뷰 내용인데, 이 글의 주제와 연관된 내용을 담고 있다. 원래의 계획에 맞춰 글을 이어가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시의성 있는 주제를 먼저 다루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이 부분을 먼저 짚어 보기로 하자. 순조롭게 이어가는데 도움이 될 듯도 하다.

 

노무현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노무현이 오 기자에게 물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요?'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왜 지지자들이 등을 돌려버렸는지, 원망하는 투로.

 

듣자니 정말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다. 지지자들이 떠난 이유도 자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지자들이 조급증에 걸려서이거나 자신을 잘못 이해한 탓이라고 보는 모양이다. 기사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아마 '조중동에 세뇌된' 탓이라고도 생각했음직도 하다.

 

하기야 이전부터 꾸준히 그의 언행을 관찰해 온 나로서는 별로 놀랄게 없는 반응이기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정치적 파산의 원인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대통령. 반성을 하지 못하는 대통령. 외부에서만 원인을 찾으려 하는 대통령.

 

오 기자를 대신하여 답을 제시하겠다. 지금부터 노무현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주로 시간 순으로 짚어 보면서 왜 그렇게 망할 수밖에 없었는지 원인을 분석해 보기로 하자.

 

영남서자의식이 낳은 참극

 

노무현은 삼당합당을 반대하고 김영삼의 품을 뛰쳐나온 이후 그의 정치 생활 전 생애에 걸쳐서 영남의 품으로 돌아가서 인정받기를 간절히 원했다. 호부호형을 허락받기를 원한 홍길동의 간절함도 여기에 비하면 빛이 바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오매불망이었다.

 

떨어지고 또 떨어져도 고집스럽게 부산에 출마한 심리적 배경에는 바로 이 '버림받은 자식'의 인정투쟁 심리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나중에 그에게 대통령 자리라는 어마어마한 보상으로 돌아간 이 '작은 희생'이 꼭 '지역의 벽에 도전하는 의지의 발로'라고만 보기에 무리가 있어 보인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김영삼을 찾아가 그에게 받은 시계를 내보이며 애정을 구걸하는 일이었으면 따로 말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이 사건은 그러나 그의 의도의 순수성 여부와 무관하게 지지율 급락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훗날 후보 단일화 사태를 맞게 한 단초가 되는 사건이다. 그렇게 비극이 싹트고 있었다.

 

그의 왜곡된 영남사랑은 이처럼 그의 집권과정을 혼란에 빠뜨렸고, 또한 집권 이후의 파국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치와 정책의 촛점을 잘못 맞추고 헤매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평생 한나라당을 찍어온 사람들을 위한 정치

 

노무현이 집권한 이후 한창 민주당의 내분이 지속되고 있던 시기에 뉴스를 통해 그 추이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나는 내 뒤통수를 내리치는 한마디를 들어야 했다. 유시민이 했던 말로 기억하는데, '평생 한나라당을 찍어온 사람들은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라고 했다. 그 전에 들었던 '선혈이 낭자한 싸움' 운운 등의 수많은 험한 발언들은 모두 이 한마디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는다.

 

통합신당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던 민주당의 대체적 합의 수준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폭언이자, 망언이었다. 민주당을 반드시 깨서 남은 민주당에게 모욕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가 숨어있는 말이자, 한국의 지역문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일천한 인식을 드러내는 천박한 막말이었다.('호남자민련'론의 시발이기도 하다.)

 

비극은 바로 이 천박함에서 시작된다. 인식의 천박함과 동시에 그 표현의 천박함. 이는 이들의 본질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한두차례의 실언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집권기 내내 일관된 흐름을 보이고 있기에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다.

 

천박한 인식이 부른 참극의 시작

 

모든 비극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노무현의 죽음도 그렇게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안타깝게도 노무현은 끝까지 무엇이 진짜 문제였는지를 모른채 떠났다. 유시민을 비롯하여 노무현과 함께 이 파국을 유발한 주요 책임자들 역시 아직까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고체계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왜 민주당 정권이 '평생 한나라를 찍어온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정치를 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왜곡되고 전도된 시각은 여러가지 본질적인 문제를 품고 있다. 민주주의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자인하고 있는 동시에 투표의 의미, 정당정치와 대의정치의 의의를 완벽하게 훼손하는 주장이다. 평생 민주주의를 지켜왔다는 자부심 하나로 벼텨오던 호남 유권자들에게는 핵폭탄과 같은 충격을 던져주는 말의 폭행이기도 하다.

 

이렇게 처음부터 그들은 기준을 잘못 잡았고, 방향을 잃어버렸다. 이들이 경상도의 눈높이에 맞춘 정치에 열을 올리는 바람에 결국 한국 정치의 수준은 경상도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게 향 평준화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망각하게 만든 영남서자의식

 

정상적인 사고의 소산이라고 보기 어렵다. 의식이 마비되지 않고는 이런 망언을 늘어 놓을 수 없는 까닭이다.

 

첫째, 호남유권자에 대한 더할 수 없는 모욕이다.

 

평생 민주당을 찍음으로써 이나라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을 유일한 심리적 위안으로 알고 살아온 사람들의 자존심을 뭉개버린 폭력이었다. 또한 한표 말고는 별달리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길이 없는 유권자들에게서 실질적으로 참정권을 박탈하는 만행이기도 하다.

 

'너희들은 우리 관심 밖이야. 찍어줬으면 입 다물고 물러나 있어.'

 

이보다 심한 모독이 있을까?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정신적으로 강간당한 듯한 치욕을 느꼈다. 분노에 몸서리쳐야 했다. 호남의 정치적 열기와 관심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더이상 민주화세력의 동력이 되어줄 이유를 상실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호남 모독 시리즈는 멈추지 않았다.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죄의식도 없이. '영남의 한석이 호남의 열석보다 중요하다.', '(남겨진) 민주당을 호남 자민련으로 만들어야 한다.', '선혈이 낭자하게 싸우는 모습을 (영남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등등. 겨우 잊을만 하면 또다시 망언을 꺼내들고 자극을 계속했다. 물론 아주 작정을 하고서.

 

둘째, 민주주의의 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사고방식이다

 

민주주의는 표를 많이 얻은 쪽이 주도적으로 정치와 정책을 이끌어가기로 하는 약속체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표를 많이 얻기 위해 경쟁하는 이유는 경쟁에서 이김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사회에 구현시키기 위해서다. 그런 정치적 의사의 가장 큰 결집 단위로 정당을 만들어 공유한다.

 

헌데, 이 이상한 세력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표와 범민주화세력을 호응하는 표를 모아 집권에 성공하고 나서, 뜬금없이, 아주 기습적으로 '평생 한나라당을 찍어온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선언해 버렸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의미를 부정하였고, 투표의 필요성을 부인하였다. 그럴거면 선거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범민주화세력이 뿔뿔이 흩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런 모욕을 당하고도 계속 모여 있다면 그게 더 비정상이다. 메저키즘 환자들이 아니고서야 견딜 재간이 없다.

 

그러나 자신들의 왜곡된 현실인식을 교정하기는커녕 이들은 일시적으로 모욕을 주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한나라를 평생 찍어온 사람들', 즉 '경상도 유권자'의 눈높이에 철저히 맞추는 정치로 일관했다. 정치와 사회의 퇴행은 필연이었다. 범민주화세력의 지지자들은 손사래를 치며 이탈해 가는 길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셋째, 잘못된 보상체계는 정치혼란을 유발하고, 사회의식의 하향평준화를 이끌었다.

 

경상도는 투표를 잘못해도 보상받는다는 사고방식을 심어 주었다. 경상도 사람들이 자신들의 후진적 정치사회 의식을 되돌아보며 반성할 필요를 제거해 버렸다. 전라도는 잘 선택하고도 매도당하고 격하당한데 반해, 경상도는 늘 잘못 선택하고도 칭찬받고 보상받는 체계는 거의 '인종차별적'이다. 무시무시한 발상이다.

 

경상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경상도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정치의식, 사회의식이 낮다. 아마 경상도 사람들 자신들조차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영남패권체제가 가져다 주는 작은 이익에 취해 끊임없이 독재체제와 폭압체제를 지지해 왔다.

 

바로 이런 후진적인 의식을 기준으로 삼은 정권에게 '퇴행'은 노무현의 말마따나 '운명'이라고 봐야 한다. 경상도의 후진적 의식을 깨우고 변화시켜 한국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꿔가기를 원했던 지지세력에 대한 배신이자, 자멸을 향한 지름길 뚫기였다.

 

고민할 필요 없는 경상도. 경쟁에서 지고도 보상받는 경상도. 그들의 의식은 고양될 이유가 없다. 안그래도 편한데 사서 고생할 바보는 없을테니까. 나라도 안한다.

 

네번째, 이건 어쩌면 역설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그들은 '평생 한나라를 찍어온 유권자'들을 모독하는 죄를 저질렀다.

 

구미에 맞춰주지 않으면 표를 주지 않는 꽉막힌 욕심쟁이들이라는 이미지를 최종적으로 인정하였다. 이 지점에서 김대중의 대 경상도 인식하고 갈라진다.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 보겠지만, 김대중은 경상도의 긍정적 변화 가능성을 믿었다. 이성의 회복에 희망을 걸었다.

 

반면 노무현, 유시민등은 '도저히 변화할 수 없는 벽'으로 보고, 변화시키기 보다는 현재의 입맛에 맞추는 정치를 끈질기게 추구했다. 한국정치가 형편없이 망가져 가는 줄도 모르고.

 

(이후 이어짐)


태그:#공존읠더십, #김대중, #노무현, #유시민,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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