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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임(frame)

.. 이번에도 양우는 열 쪽이나 되는 자료를 직접 타이핑하고 대강의 강의 프레임까지 짜 와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  《조원진,김양우-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삼인,2009) 105쪽

'직접(直接)'은 '손수'로 다듬습니다. '타이핑(typing)하고'는 '타자로 옮기고'나 '치고'로 손보고, '대강(大綱)의'는 '얼추'나 '웬만한'이나 '웬만큼'으로 손봅니다. '강의(講義)'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이야기'로 손질해 주어도 어울립니다.

 ┌ 프레임(frame)
 │  (1) 자동차, 자전거 따위의 뼈대. '틀'로 순화
 │  (2) [운동] 볼링에서, 한 경기를 열로 나누었을 때의 하나를 세는 단위
 │
 ├ 강의 프레임까지
 │→ 강의할 줄거리까지
 │→ 강의할 얼거리까지
 │→ 강의할 틀거리까지
 │→ 강의할 틀까지
 │→ 강의할 뼈대까지
 └ …

자동차 뼈대를 가리켜 '프레임'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자전거 뼈대를 놓고도 '프레임'이라고들 말합니다. '자동차 뼈대'나 '자전거 뼈대'라 말하는 사람은 거의 못 보았습니다. '자동차 몸통'이나 '자전거 몸통'이라 말하는 사람은 드물게 있으나, 아주 드물 뿐입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틀'로 고쳐쓰라고 나옵니다. 말풀이를 살피면 '뼈대'를 가리킬 뿐인 '프레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우리 나름대로 쓰면 넉넉할 '틀'이요 '뼈대'임에도, 우리들은 '틀'이라 하지 않고 '뼈대'라 하지 않습니다. 그예 영어로 말합니다. 아주 자연스레 영어로 이야기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지난날에는 '차체(車體)'라고들 했습니다. 지난날에도 '뼈대' 같은 토박이말을 사랑하지 않았고, '틀'이나 '얼거리'나 '얼개'같은 다른 토박이말 또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한자말을 높이 샀습니다. 아니, 우리들 여느 사람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쓴 말이 한자말, 곧 한문이었습니다. 이러다가 오늘날 우리들을 다스린다는 사람들은 영어를 즐겨씁니다. 우리 모두한테 영어를 가르치려고 달려듭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영어 아니면 죽은 목숨인 듯 생각하도록 길들입니다. 관공서이건 학교이건 언론사이건 한결같습니다. 모두들 영어바람에 휩쓸릴 뿐, 우리 넋과 얼을 돌아보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디딘 땅을 살피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이웃을 헤아리려 하지 않습니다.

 ┌ 이야기할 틀까지 얼추 짜 와서
 ├ 이야기 나눌 얼거리까지 어느 만큼 짜 와서
 ├ 이야기 틀거리까지 웬만큼 짜 와서
 └ …

한자말을 즐겨쓰던 지난날 권력자와 기득권과 지식인한테는 한자말이 가장 쉬웠습니다. 한자말로 당신들 뜻과 마음과 생각과 넋을 나타내기에 좋았습니다. 배꽃이 피고 하얀 달이 밝은 밤을 노래할 때에도 "이화에 월백하고"라 했지, "배꽃에 달 밝고"라 하지 않았습니다.

한자로 여느 사람들을 내리누르던 이들이 우스갯소리처럼, "'이화여대'를 '배꽃계집큰배움터'로 이름을 고칠 수 있느냐?"고 따지곤 합니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런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합니다. 우리 말 운동을 하는 어느 누구도 이런 생각을 꺼내지 않았고 밝히지 않았는데, 권력자 스스로 이런 말을 우스갯소리처럼 꺼냈습니다. 우리 말로 생각을 가다듬는 일을 사람들이 너무 지나치거나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도록 꺼낸 말이라고 느낍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뜻밖에 얻는 좋은 생각이라고도 느낍니다. '대학교'를 굳이 '큰배움터'로 고쳐쓰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지만, '이화(梨花)'라는 이름은 '배꽃'으로 고쳐쓰면 한결 어여쁘고 아름답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자만 다녀서 여대라 할 수 있으나, 따로 '여-'를 붙이지 말고, '배꽃대학교'처럼 적으면 꽤 괜찮겠구나 싶어요.

이렇게 되면 이 학교 앞 밥집은 '배꽃식당'일 수 있고, 문방구는 '배꽃문방구'일 수 있습니다. 구멍가게는 '배꽃수퍼'일 수 있으며, 책방은 '배꽃책방'일 수 있습니다. 술집은 '배꽃술집'이나 '배꽃호프'가 될 수 있는 가운데, '배꽃찻집'이나 '배꽃커피숍'도 나올 수 있을 테지요.

갇히는 생각이면 언제나 갇힐 뿐이지만, 열리는 생각이면 언제나 열립니다. 지식자랑이나 한자자랑이나 영어자랑이고프다면 앞으로도 지식자랑이나 한자자랑이나 영어자랑으로 치달을 텐데, 말글사랑이나 이웃사랑이고프다면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말글사랑과 이웃사랑으로 거듭납니다.

 ┌ 무엇을 이야기하면 좋을지까지 짜 와서
 ├ 무엇을 이야기 나누면 좋을지까지 짜 와서
 ├ 우리가 나눌 이야기틀까지 짜 와서
 ├ 우리가 나누면 좋을 이야기틀까지 짜 와서
 └ …

그러고 보니, 대학교 같은 데에서 사람들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내놓는 생각틀은 '강의 계획'입니다. '강의 프레임'까지는 아닌 줄 압니다. 그렇지만 또 모르는 노릇이지요. 2000년대 대학교 같은 데에서는 '강의 프레임'이라 할는지 모릅니다. 2010년대부터는 이와 같이 말할는지 모릅니다. 학원에서도 이렇게 말할는지 모릅니다. 중고등학교 입시교육 또한 이처럼 말할는지 모르고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영어#외국어#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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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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