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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무대 위의 상황에 맞추어

 

.. 배우들은 대본대로 연기하는 것이 아니고 무대 위의 상황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대사를 만들고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는 연기를 펼칩니다 ..  《안치운-추송웅, 배우의 말과 몸짓》(나무숲,2004) 28쪽

 

 "연기(演技)하는 것이 아니고"는 "연기하지 않고"나 "움직이지 않고"로 다듬습니다. '즉흥적(卽興的)으로'는 덜어내도 되고, '그때그때'나 '그 자리에서'로 손보아도 됩니다. "관객(觀客)의 웃음을 유발(誘發)하는 연기"는 "관객을 웃기는 연기"나 "사람들과 함께 웃는 연기"나 "사람들한테 웃음을 터뜨리는 몸짓"으로 손질해 줍니다.

 

 ┌ 무대 위의 상황

 │

 │→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

 │→ 무대에서 일어나는 상황

 │→ 무대에서 펼쳐지는 상황

 │→ 무대 상황

 └ …

 

 무대 위가 있고 무대 아래가 있습니다. 배우 된 사람은 무대에 올라 연기를 선보일 테니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따라 연기를 한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농사꾼이 "논 위에서 김을 맨다"고 않고 "논에서 김을 맨다"고 하듯이, 노래꾼이 "공연장 위에서 노래를 한다"고 않으며 "공연장에서 노래를 한다"고 하듯이, "무대에서 연기를 한다"고 적을 때가 가장 알맞다고 느낍니다. 굳이 '위아래'를 가르지 않아도 되면 '위'나 '아래'라는 낱말은 덜어내 줍니다.

 

 보기글에서는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줄줄 늘여서 적어도 괜찮은 한편, "무대 상황"처럼 단출하게 끊어도 괜찮습니다. 또는, "배우들은 대본대로 연기한다기보다, 무대에 맞추어 대사를 만들고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도록 합니다"라고 적어 볼 수 있습니다.

 

 글쓴이로서는 이런저런 꾸밈말을 넣었다고 여길 수 있으나, 읽는이로서는 갖가지 군말이 끼어들었다고 느낄 수 있어요. 알맞게 넣는 꾸밈말이야 글흐름을 살리기도 하고 글느낌을 북돋우기도 하지만, 알맞지 못하게 넣는 꾸밈말은 그야말로 군더더기 노릇만 합니다.

 

 조금 더 살피고 한 번 더 돌아보면서 내 글머리를 가다듬고 내 글월을 추스르면 좋겠습니다.

 

 

ㄴ. 기름때 흐르는 소파 위의 뚱보 하인

 

.. 기름때 흐르는 소파 위의 뚱보 하인처럼 / 물렁한 뇌수에서 몽상을 하는 / 당신네들 생각을 / 내 피투성이 심장에 대고 문질러 / 마음껏 조롱하리라, 뻔뻔하고 신랄한 나는 ..  《마야꼬프스끼/석영중 옮김-광기의 에메랄드》(고려대학교 출판부,2003) 1쪽

 

 "물렁한 뇌수(腦髓)에서 몽상(夢想)을 하는"이라면 "물렁한 머리에서 헛된 꿈을 꾸는"이나 "물렁한 머리로 꿈속이나 헤매는"쯤으로 다듬으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신랄(辛辣)한'은 '날카로운'이나 '따가운'으로 손봅니다.

 

 ┌ 소파 위의 뚱보 하인처럼

 │

 │(1)→ 소파에 앉은 뚱보 하인처럼

 │(2)→ 소파 위에 있는 뚱보 하인처럼

 └ …

 

 보기글처럼 쓰면 (1) 뜻인지 (2) 뜻인지 헷갈립니다. 아마 (1)일 테지요. 사람이 아닌 물건이라면 (2)이 될 테고요.

 

 짤막하게 쓰든 길게 쓰든 헷갈리지 않고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적어야 합니다. 토씨 '-의'를 아무 생각 없이 붙이면 도움되는 일이 드뭅니다. 꼭 붙여야 한다면 붙여야겠으나 앞뒤 흐름을 살피지 않는다면, 또 이 보기글처럼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두루뭉술하게 되고 만다면, 번역을 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이 보기글처럼 나라밖 시를 우리 말로 옮긴다고 할 때에는 훨씬 더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시 흐름을 거스르지 않도록 애쓰고, 시맛과 시말이 알뜰히 어우러지게끔 힘써야 합니다. 어설피 하는 번역은, 나라밖 말을 몰라 번역책으로 나라밖 문학을 만나야 하는 사람 모두한테 잘못을 저지르는 셈입니다.

 

 

ㄷ. 네 살 위의 여학생

 

.. 점자 동아리에서 만난 네 살 위의 여학생이었다 ..  《고바야시 데루유키/여영학 옮김-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강,2008) 52쪽

 

 사람들은 으레 "연상(年上)의 여학생"이나 "연하(年下)의 여학생"처럼 쓰고 있는데, 이 자리에서는 "네 살 위"라고 적어 줍니다. 토씨 '-의'를 붙인 대목은 아쉽지만, 이만큼 기울인 마음씀씀이를 앞으로는 조금씩 넓혀 주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 네 살 위의 여학생

 │

 │→ 네 살 위 여학생

 │→ 네 살 위인 여학생

 │→ 네 살 많은 여학생

 └ …

 

 생각해 보면, '연상-연하' 같은 한자말을 쓰는 일은 그리 큰 잘못이나 아쉬움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한자말에 달라붙게 되는 토씨 '-의'야말로 큰 잘못이요 아쉬움입니다. 왜냐하면, 한자말 '연상-연하'를 안 쓰고 토박이말 '위-아래'를 쓰더라도 "네 살 위의 여학생"이나 "네 살 아래의 여학생"처럼 적을 테니까요. 마땅히 붙여야 하는 줄 생각하고, 으레 붙여야 되는 줄 여깁니다.

 

 보기글에서는 토씨 '-의'만 덜어 "네 살 위 여학생"으로 적거나 씨끝 '-인' 을 붙여 "네 살 위인 여학생"으로 적어 봅니다. 나이가 적을 때에는 "네 살 아래 여학생"이나 "네 살 아래인 여학생"으로 적습니다. 또는 "네 살 많은 여학생"이나 "네 살 적은 여학생"으로 적어 줍니다. 이렇게 '많은-적은'을 넣으면 토씨 '-의'를 아예 떨구게 되어 한결 손쉽게 말투를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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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의#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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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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