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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일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와 충남최저임금연대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최저임금 인상하라!'고 쓴 손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6월 2일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와 충남최저임금연대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최저임금 인상하라!'고 쓴 손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 윤평호

하루에 8시간씩 일해서 월급 83만6000원 받는 아파트 경비아저씨에게 경제가 어려우니 고통분담 차원에서 월급을 5만 원쯤 깎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것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 등에 계신 기업체 사장님들께서 말이다.

최저임금 월 108만 원 주자는 게 무리한 요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던 지난달 29일 재계는 최저임금 삭감을 요구했다.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이후 최초의 삭감 요구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4000원, 주 40시간 근무 기준 월급 83만6000원이다. 그런데 재계는 여기서 현재에서 230원 삭감한 시급 3770원, 주 40시간 근무 기준 월급 78만7930원을 내년 최저임금으로 제시했다.

이유는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현재의 경제 상황은 IMF 외환위기에 버금갈 정도의 위기상황으로 상당수의 우리 기업이 생존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노동계가 진정한 의미의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을 바란다면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요구를 즉각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계가 제시한 최저임금은 시급 5150원, 주 40시간 근무 기준 월급 107만6350원이다. 2008년 기준 5인 이상 사업체의 상용직 노동자 평균 임금이 215만3914원이다. 노동계가 주장한 최저임금은 평균 임금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액수이다. 과연 한 달에 최소한의 월급으로 약 108만 원을 주자는 것이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요구'일까?

10대그룹 임원 평균 연봉 9억 원, 전체 잉여금 233조 원

있는 놈들이 더하다 싶지만,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모두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인건비도 제대로 못 줘서 벼룩의 간과 같은 최저임금을 빼먹을 정도로 기업들이 어렵구나' 하고 생각하며 사장님들의 심정을 이해해 보고자 했다. 아니 그런데 이게 뭐야? 정작 줄여야 할 인건비는 따로 있었다.

재계 전문사이트 재벌닷컴이 조사한 2008년 12월 말 기준 금융회사를 제외한 10대그룹 상장사 사내임원 261명의 평균 연봉을 살펴보자. 삼성 임원의 연봉은 17억 3700만 원, 현대차 10억 4400만 원, 두산 10억 3600만 원이며 10대그룹 평균은 9억 100만 원에 이른다. 연봉 9억 원 받으시는 분들이 최저임금 230원 삭감해서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니 기가 찬다.

또한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 상장사협의회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자산총액 기준 10대그룹 상장 계열사 65곳의 3월 말 기준 유보율은 945.5퍼센트에 이른다. 유보율이란 기업이 영업활동과 자본거래를 통해 얻은 잉여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비율이다. 유보율이 높으면 재무구조가 탄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돈을 끌어안고 풀지 않는다는 뜻으로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들 기업의 자본금은 24조 6494억 원, 잉여금은 233조 698억 원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유보율은 1540퍼센트로 증가했다고 한다. 200조 원이 넘는 돈을 끌어안고 계신 분들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투자할 생각은 안 하시고, 최저임금 230원 삭감해서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니 역시 기가 찬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기업은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을 빼들었다. 다른 고정자본에 비해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인건비이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으며, 가정을 잃었으며, 목숨을 잃었는가? 최근에는 대졸 초임 삭감과 최저임금 삭감 등 계속해서 노동자들의 임금에 손을 대고 있다. 반면 기업의 경영진들은 어떤 책임 있는 행동을 취했는가? 이는 분명 고통분담이 아니라 고통전가이다.

임금 삭감은 기업 판매 부진으로 이어져 공멸

물론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 사정이 다를 수 있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인건비 절감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위기가 과연 높은 인건비로 인한 이윤 하락 때문인가? 인건비만 줄이면 위기가 회복될 수 있는가? 아니다. 지금 기업들의 위기는 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자금순환이 심각하게 경색되고 수출과 내수가 모두 얼어붙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특히 기업 처지에서는 상품이 팔려야 돈이 돌 수 있는데, 판로인 수출과 내수가 꽉 막혔다. 수출로 먹고 살아온 우리이지만 전 세계적 위기 속에서 수출은 더 이상 활로가 될 수 없는 상황이다. 뉴욕대학의 루비니 교수도 5월 28일 서울디지털포럼 기조연설에서 "아시아의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은 산산조각 났다", "이 지역 국가들은 국내 수요를 부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무역수지 흑자 행진 역시 수출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수입이 감소하여 발생한 '불황형 흑자'일 뿐이다.

내수 역시 잔뜩 위축되어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의하면 올해 1분기 가계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2.2퍼센트 감소했다. 이 가운데 내수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소비지출은 전체 가계지출보다 더 큰 비율인 3.5퍼센트 줄었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물가는 오르니 가계는 당연히 허리띠를 졸라 맬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가계소득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임금까지 삭감해대니 내수가 살아날 리가 없다. 기업의 판매 부진도 회복될 리 없다.

정확히 말해 지금은 경제위기 때문에 임금을 삭감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임금을 삭감해서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자와 국민들로 하여금 고용과 미래의 안정적 소득에 대한 신뢰를 주고, 이를 기반으로 정상적인 소비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기업도 살고 국민경제도 사는 길이다. 국내 기업들이 공멸이 아닌 공생의 길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수연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최저임금#임금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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