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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기 하루 전날인 28일, 역사의 현장인 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길게 늘어선 행렬에 몸을 싣고, 한 걸음 한 걸음 분향소로 다가갔습니다. 조금씩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어둠이 스미는 부엉이 바위가 문득 눈에 들어왔습니다. 부엉이 바위를 가리키자 함께 간 여 선생님 한 분은 신음 같은 탄식을 뱉었습니다.

 

봉하마을 논엔 하늘만 담고 있는 논물이 가득해도 손길이 없어 쓸쓸하였고, 새들이 하늘을 비껴가는 듯 하였습니다. 분향소 근처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에 전작권 회수를 단행하고 군의 무기력함과 못된 관행을 질타하는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습니다. 카랑카랑한 노 전 대통령의 결기에 찬 목소리는 가슴을 후비며 파고들었습니다.

 

저 목소리다. 저 목소리로 공안 사건을 변론하고, 저 목소리로 노동 현장과 거리를 누볐고, 저 목소리로 이의를 제기하고, 저 목소리로 주류의 기득권과 독선에 도전하였다고 생각하니, 이제 우리는 언제 저런 목소리로 세상을 바꿀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회한이 밀려왔습니다.

 

방명록에 글을 남겼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우리 대통령, 사랑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내 분향소 앞에 섰습니다. 흰 국화 한 송이 영전에 바치고 영면을 빌었습니다. 나오는 길에 조문객들이 남긴 쪽지 글이 무수히 달려있는 작은 분향소에도 들러 조문하고 저도 글귀를 남겼습니다.

 

"노무현의 죽음은 비주류의 처절한 외침입니다. 자존심 상한 주류 기득권 세력들의 반격이 어찌 이토록 집요하고 치졸할 수 있습니까? 우리들 못난 사람들에게 몸을 낮추었던 다정한 대통령이었기에 또한 고난이 깊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안타깝습니다. 노무현 당신은 몸을 던져 더욱 크게 살았습니다. 노무현은 갔지만 노무현 정신은 남았습니다. 그 정신을 이어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편히 쉬십시오.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돌아오는 늦은 밤에도 조문 행렬은 줄어들 줄 몰랐습니다. 누가 저 사람들을 강제로 모이게 했으면 왔겠습니까? 아무도 저 길로 모이라 하지 않았지만 저 바보들은 또 저리 모여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문득 하늘에 초승달이 빛났습니다.

 

깜깜한 그믐에 그는 훌쩍 떠났고, 살아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가 뭉쳐 어두운 하늘을 찢고 초승달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새 빛이었습니다. 봉하마을 초승달은 다시 시작하라는 노무현의 미소 같았습니다. 보름달로 차오르게 하여 사람 사는 세상을 환하게 비추자며 내미는 노무현의 손길 같았습니다. 그 상징으로 저는 읽었습니다.

 

돌아와 추모시를 지었습니다.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가 부활한 심청이 모티프와 강자와 대항하여 자신은 죽지만 세상을 살린 은혜 갚은 두꺼비 모티브가 생각났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를 제 16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전에 바칩니다. 

 

봉하마을 초승달

 

아무도 그 길을 가라 하지 않았고

아무도 이 길로 오라 하지 않았지만

바보들은 다시 그 길을 모여 걷고

바보들은 다시 이 길로 오고 있네.

아, 수만 명이 큰 강물처럼 줄을 이어

한 곳을 향해 묵묵히 흘렀네.

 

부엉이 바위에서 가볍게 흩어졌으나

못난이들의 가슴에서 살아나 뭉쳐진 곳.

슬픔 이상의 슬픔,

분노 이상의 분노,

아픔 이상의 아픔을 안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살아나는 그 곳,

파안대소와 포옹과 겸손한 그늘과

밀짚모자와 논두렁과 자전거 소리와

막걸리 냄새가 스민 그 곳으로

세상의 풀잎들이 몸을 누인다네.

 

봄하늘만 가득 담고서 멈추어버린 논물에

개구리들 먼저 들어와 울고

새떼들도 너울대며 비껴가는 봉하에

만장이 속울음처럼 흩날리고

화포천도 숨죽이고 흘러가네.

 

사람 사는 세상이 잠시 어두웠구나.

그믐이었나,

가고자 하는 길에 달빛 하나 용납하지 않았구나.

그믐달이었나,

가장 깜깜할 때

가장 칠흑 같을 때

저 울퉁불퉁한 사내 하나

시대의 여울목 물소리 깊은 어둠을

훌쩍 건너뛰었구나.

 

건너뛴 그 자리,

깨어지고 무너지고 으스러질 줄만 알았는데

아, 그 자리는 도리어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속이었고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 연꽃들의 체온이었네.

비로소 그 어둠의 끝 그믐의 두터운 밤하늘을 찢고

어느덧 초승달 하나 봉하를 비추네.

고개 숙인 연꽃들의 머리 위로 슬쩍 떠올라

빙그레 웃음 짓고 있네.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되지요.

끝이 아니라 시작인 거지요.

낫날 같은 초승달 작은 빛으로

슬픔의 자락들을 베어버리자고

들썩이는 어깨들을 어루만지고 있네.

 

다시 사람 사는 세상,

그 오래된 생각들,

두꺼비처럼 울퉁불퉁한,

죽어서야 더 크게 살아나는,

낮아져서 가장 높아진,

저 봉하마을 초승달.


#추모시#봉하마을#초승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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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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