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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9일 저는 뜻을 같이 하는 젊은 정치인들과 함께 '걸어서 평화 만들기,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너무 참담했던 서울의 선거 패배를 경험한 지난 4.9총선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뼈를 깎는 자성의 의미와 어떻게 하면 남북관계의 경색을 막아 6.15선언과 10.4 선언의 시대정신을 다시 세워볼 수 있을까 하는, 우리 나름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행진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의 행진 45일째, 5월 23일 오전 9시 20분경, 가랑비 내리는 가운데 송탄에서 오산으로 걸어가는 1번도로상에서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슬픈 서거 소식을 제 귀를 의심하며 전해들었습니다.

 

'6.15 선언과 10.4선언 실천을 위한 행진'이라는 저의 배낭위에 꽂힌 깃발이 점차 거세어지는 비에 젖어 드는 것을 보면서, 2007년 10.4 선언 직전 청와대에서 저에게 10.4선언의 대강을, 특히 해주지역과 주변지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계획에 대해 그림을 그려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제 가슴속 깊은 곳에서 겹겹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일행은 일행중의 한 사람, 대통령의 영혼을 사진에 담아 한장 한장 그의 가슴과 역사에 쌓아두며 아직도 대통령에게 안보여준 사진이 있다고 카메라를 들고 자랑하던 서호영군의 검은 티셔츠를 찢어 검은 천을 만들어 각자의 깃발에 달면서 각자의 가슴 깊은 곳에 고인 눈물이 일시에 터져나오는 것을 모두 알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은 늘 외로웠던 한 마리의 학

 

90년경 노동현장에 있던 저는 당시 노무현 국회의원을 맨처음 보고 들판에 서있는 한 마리의 학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고도 저는 그런 생각을 했고 또 그런 말을 드렸고 그 말을 들은 대통령의 활짝 웃으시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새롭습니다. 원칙없는 타협을 죽도록 싫어하고, 옳고 그름을 명백히 구별하며, 단연 돋보이는 의정활동과 정치 활동을 보여준 당신은 그야말로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지만, 제 눈에는 늘 외로워보였으며 고독해보였던 한 마리의 학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민주 진영 초미의 관심사였던 2002년 대선 후보 단일화 때, 민주당 노무현후보의 비서실장이자 단일화 협상단장으로 일한 저는 원칙있는 양보에는 자신을 완전하게 비우는, 그리고 원칙없는 타협에는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노무현 후보의 일관된 태도를 보며 하루에도 몇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듯 가슴을 태웠습니다. 하지만 그때가 제 정치 생애 가장 보람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선거 바로 하루 전 정몽준 후보의 선거 공조 파기에 접했을 때, 대통령 투표당일 김해에서 선친의 묘소 앞에서, 김해 공항에서 그리고 서울로 올라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러니까 너무 절박했던 긴급했던 상황에서 저와 나눈 이야기는 한 권의 책으로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날 대통령에 취임하시면 하실 일을 다 말씀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 직무 수행중에는 물론 대통령에서 물러나서도 못다한 생각과 구상을 정리하고 싶어하셨던 그 끝없는 탐구와 제약받지 않는 자유로운 구상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구시대 정치는 나로 끝내고 새로운 시대의 정치를 만들고 싶다."

 

투표가 종료되기 전 비행기 안에서 옆좌석에 앉아있는 저에게 당신은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되면 진짜 서민이 어깨 펴고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어요."

 

"대통령이 되면 구시대 정치는 나로 끝내고 새로운 시대의 정치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 두마디 말은 당신이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보다는 이번 대선을 어떻게 치르느냐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와 당신은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비서실장인 제가 파악한 바로는 당일 여론조사에서는 근소하게 진 것도 있지만 출구조사에서는 근소하게 이긴 것으로 나왔습니다."

 

"여론조사가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출구조사는 샘플이 훨씬 많습니다."

 

"......"

 

김포공항에 내려 여의도 설렁탕집으로 가서 소주 한 병에 설렁탕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당선을 확인하고 맨처음 약속한 것은 설렁탕집에서 일하시는 아줌마들에게 당신은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설렁탕집에 다시 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은 진정 서민 그 자체의 영혼과 모습을 지닌 우리나라 최초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당신에게 남은 것은 이제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바로 그때조차, 당신은 조금도 주저없이 마지막 남은 단 한가지 당신의 것, 당신의 생명을 송두리째 던져버리며 당신이 진정 괴로워하며 추구하고자 했던 것을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주었습니다.

 

노 대통령이 죽음으로 던진 이 물음에 이제 모든 사람이 대답할 차례이며, 특히 맨 먼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대답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물음이 회피할 수 없는 것이었듯이, 대답 또한 누구도 회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작은 결함에도 크게 괴로워한 순결함을 가진 대통령

 

당신은 자신의 가장 작은 결함에도 가장 크게 괴로워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관련된 주변의 결함에는 더욱 더 힘들어하는 순결함을 가진 대통령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제가 2002년 대선자금 문제로 불구속기소되어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 저를 대통령 관저로 불러 저녁을 함께 하며 누차에 걸쳐 저에게 빚을 졌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법원에 전화하지 않았다고 말했을 때, 저는 저의 상실감을 충분히 상쇄하고 넘어서는 긍지와 자랑스러움을 강하게 느꼈다는 사실을 이 자리를 통해 고백합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경색되어가던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오늘, 우리 정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탄식을 여기저기서 듣게 되니 10.4선언 8개항의 문안을 가다듬던 노 대통령이 더 그립습니다.

 

제 힘은 비록 미약하지만, 노 대통령의 죽음이 지지자들을 넘어서 더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묻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몇번이고 하면서 저의 두서없는 추모의 글을 여기 남깁니다.


태그:#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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