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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제발 잡히지 마!

 

 이주 노동자가 당하는 인권유린을 고발하며 화제가 된 <말해요, 찬드라>. 출간 6년이 지나면서 14쇄를 찍었지만 2만부 정도가 팔려나갔다. 생할문예나 르포문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이런 좋은 책에 관심이 필요하다. 지역 도서관에 없으면 신청하시길 권한다.
이주 노동자가 당하는 인권유린을 고발하며 화제가 된 <말해요, 찬드라>. 출간 6년이 지나면서 14쇄를 찍었지만 2만부 정도가 팔려나갔다. 생할문예나 르포문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이런 좋은 책에 관심이 필요하다. 지역 도서관에 없으면 신청하시길 권한다. ⓒ 삶이 보이는 창

아주 오래 전에 공사 현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문구 가운데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는 것이 있었다. 그대로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에도 건설 현장에는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플랜카드를 흔히 볼 있다.

 

위험한 현장에서 일을 하는 가장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아빠, 제발 잡히지 마..."라고 쓰인 플랜카드가 있다면 이상할까? 하지만 현장의 외국인 노동자가 불법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다면, 그리고 그에게도 가정이 있다면 그다지 이상하지 않으리라.

 

지갑을 잃어버린 줄 모르고 식당에서 밥을 먹은 네팔인 노동자 찬드라. 밥값 몇 천원을 내지 못하자 식당 주인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들.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행려병자 수용소로 찬드라를 데려간다.

 

외국인이라고 말하자 오히려 정신병원에 감금되어야 했던 6년 4개월의 시간들. 고통과 절망 속에서 그녀를 도와준 또 다른 한국 사람들.

 

"경찰은 미워. 다른 사람들은 아니야."

 

자신을 도와준 이들에게 서툰 한국말로 고마움을 전했던 그녀가 네팔로 돌아간 지 6년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 근무하며 이주 노동자들이 당하는 착취와 인권유린을 고발했던 이란주씨의 글들이 <말해요, 찬드라>라는 이름으로 출판됐을 때. 대한민국의 노동자로 살면서도 불법이라는 딱지를 달고 숨죽여 지내던 이들은 어떤 희망을 품었을까.

 

 6년 만에 출판된 <말해요, 찬드라>의 두 번째 이야기.
6년 만에 출판된 <말해요, 찬드라>의 두 번째 이야기. ⓒ 삶이 보이는 창

이란주씨는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놓는다. 이제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불법이라는 딱지는 여전하다. 미등록 부모의 자녀로 태어난 아이들 역시 미등록 상태로 살다가 훌쩍 나이를 먹었다. 부모님이 일을 나갈 때마다 가슴 졸이며 외치는 소리는 책의 제목이 되었다. "아빠, 제발 잡히지 마!"

 

같은 인간이 다른 사람의 존재를 불법과 합법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렇다면 정부는 왜 불법인 노동력으로 국내 산업을 담당하게 하는 것일까. 그들도 뻔히 알면서.

 

정부는 왜 철마다 기간이 되면 이들을 단속하고 강제출국 시키는 것일까. 단속 기간이 끝나고 돌아가게 해달라며 스스로 찾아간 이주 노동자에겐 불법체류에 대한 벌금 벌어서 다시 오라는 이야기를 하던 그들. 상황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이 땅에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차별이 여전하다. 그러나 작은 저항이 시작됐다. 6년 만에 다시 찬드라를 찾아 네팔에 다녀온 이란주 씨의 책 <아빠, 제발 잡히지 마>에는 변화를 꿈꾸는 연대와 희망들이 담겨있다.

 

매장 점거, 불길 속에서의 외침-그들도 우리처럼

 

비단 이주 노동자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주변의 이웃들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민주국가에서 마땅히 평등해야하는 사람들이 경제적 여건이나 직업의 차이 등으로 가혹하게 대접받거나 무시당하는 사례가 없는가. 아주 많다. 우리가 언제 이랜드 홈에버 노동자들의 인권유린을 생각해 봤는가.

 

그들이 매장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지 않았다면 물건 값만 치르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무슨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을까.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관심과 이해의 수준은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라는 책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매우 피상적이었을 것이다. 언론을 통해 접하는 파업 시위에 대한 극도로 제한된 정보가 본인의 편견과 뒤섞이며 이해가 아닌 오해를 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출판된 <여기 사람이 있다>도 마찬가지다. 철거민 중에 자영업자가 있어 서민이 아니라는 주장들, 말도 안 되는 보상을 노린 이기심 때문이라는 보수세력의 주장이 드세던 시점. 용산참사를 특정 부류만이 처할 수 있는 경우로 생각했을 것이다. 공권력이 시민들을 학살했다는 사실에 흥분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검찰의 발표가 여론을 잠재운 것일까.

 

작년 촛불 시위가 모두의 일상과 직결된 문제 때문에 파급력이 커졌는데 용산사태는 왜 그런가. 개발의 망령이 활개 치는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철거민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잘못된 정책에 저항하면 공권력으로 살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들도 우리처럼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현장의 진실을 캐낸 것은 수사기록 3000쪽을 숨긴 검찰이 아니라 르포 작가들이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같은 경우엔 기획부터 출판까지 굉장히 서둘러야 했어요. 상황이 급했거든요. 사람들에게 잊혀 지기 전에 현장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려야 했죠."

 

 전문 작가가 아닌 생할인들의 글쓰기가 모여 내밀함과 진실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르포문학이 자리잡지 못한 대한민국에서 '삶이 보이는 창'은 평범한 사람들의 '르포문학 교실'을 운영해 왔다.
전문 작가가 아닌 생할인들의 글쓰기가 모여 내밀함과 진실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르포문학이 자리잡지 못한 대한민국에서 '삶이 보이는 창'은 평범한 사람들의 '르포문학 교실'을 운영해 왔다. ⓒ 김현준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를 제외하고 언급된 책들은 모두 '삶이 보이는 창'에서 나왔다. IMF 당시 어려움을 겪던 구로지역의 문화일꾼들이 모여 생활 글쓰기를 시작하며 출판사와 동명의 잡지를 발행한 것이 시작이었다.

 

주류 매체가 외면하던 삶의 목소리들이 생생하게 살아나 사회를 향해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2001년 평전과 시집으로 단행본 출간이 시작됐고, 잡지에 연재되던 글들이 쌓이면서 <말해요, 찬드라>같은 단행본도 나오기 시작했다. 단행본 <마지막 공간>은 '삶이 보이는 창'에서 운영하는 '르포문학 교실' 회원들의 글이 처음으로 묶인 것이다.

 

"80년대 실천문학, 당사자들의 수기나 기자들의 취재 이야기 등 르포형식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 많았다고 할 수는 없었죠. 그리고 르포가 실리는 지면도 별로 없었어요. 시나 소설 등 기존의 제도권 장르들은 그런 게 있었지만..."

 

 두 달에 한 번씩 발행되는 잡지에는 전국 각지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글이 모여 든다.
두 달에 한 번씩 발행되는 잡지에는 전국 각지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글이 모여 든다. ⓒ 삶이 보이는 창

창간부터 꾸준히 르포문학 교실을 운영해온 '삶이 보이는 창' 편집부의 엄기수씨가 아쉬운 듯 말문을 열었다. 애초에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글쓰기가 중심이 되어 시작된 만큼 현장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살아 꿈틀거리는 느낌이다. 소시민인 그들의 글쓰기는 기존의 매체가 외면하던 것들로 시선을 돌리며 진실과 깊이를 담아낸다.

 

여기에는 작가들의 꾸준하고도 성실한 취재가 바탕이 된다. 소설이나 시나리오 등을 쓰더라도 작가는 기본적으로 취재를 해야 한다. 그러나 르포문학의 작가들은 엄청난 인내와 노력을 요한다. <말해요, 찬드라>와 <아빠 제발 잡히지 마>같은 책들은 나오기까지 무려 6년의 세월이 걸린 책들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작가들은 어떻게 견뎠는가 하는 것이다.

 

평범한 생활의 글들이 모아져 책이 된 경우도 있지만 철거 현장이나 노동 현장 등을 제 3자가 취재하는 것은 따로 시간을 내야 한다. 당연히 취재비가 들어간다. 다른 작가들의 경우 수년 동안 집필하면서 물질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아무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영화의 경우 제작 준비 기간 중에는 차비조차 주지 않아서 떠나는 작가도 많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작품 이외의 것들에 매달리며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놓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고.

 

"르포 문학의 경우엔 타 장르의 작가들보다도 굉장히 열악한 상황에서 글을 쓰고 있어요. 취재비도 본인이 충당하고 있고요."

 

 '삶이 보이는 창'에서 출간한 도서들.
'삶이 보이는 창'에서 출간한 도서들. ⓒ 김현준

 

믿기지 않게도 그런 식으로 오랜 취재를 거친 원고를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현장으로 이끌어낸 것일까.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이들이 내놓은 결과물 안에 있다. 주류 매체가 외면하는 인간의 삶과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목소리들은 하나 같이 여기,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있다고 외치고 있다. 이 순간에도 그들은 스스로 현장으로 간다. 용역깡패가 몽둥이를 들고 공권력의 폭력이 난무하는 곳도 마다하지 않는다. 르포문학을 집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작가정신에 감탄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용산참사 현장을 기록한 <여기 사람이 있다>출판 기념회에 모인 르포작가들. 의지와 노력으로 힘을 모은 결과물이 세상으로 나온 날의 미소다.
용산참사 현장을 기록한 <여기 사람이 있다>출판 기념회에 모인 르포작가들. 의지와 노력으로 힘을 모은 결과물이 세상으로 나온 날의 미소다. ⓒ 장일호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스쿨 오브 오마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말해요, 찬드라 - 불법 대한민국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삶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03)


#르포문학#생활문예#삶이 보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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