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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6일 대전에서 열린 화물연대의 집회에서 457명에 달하는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연행되었다. 경찰의 진압 과정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한다. 그들의 다양한 의견 속에 두 가지 큰 줄기를 잡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 째, 법치국가에서 법과 제도에 반하여 이루어지는 폭력시위는 인정될 수 없다. 둘 째, 법과 제도의 목적은 모든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이 둘의 의견들은 환경적인 요인에 따라 모두들 타당한 명제가 될 수 있다. 이제 우리들은 이러한 논의들을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명제들을 우리의 곁으로 끌어와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미 단순한 논리의 영역이 아닌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우리들 개개인의 삶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개개인이란 피와 살을 가진 인간들이다.

 

  우리 삶의 구성적인 틀인 법치의 주목적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법과 제도는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법안적 도구이다. 이러한 법과 제도가 개개인들의 삶을 아프게 한다면 법과 제도를 고쳐야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 없는 그들은 법과 제도가 아닌 사람들을 고치려한다. 왜 그들은 사람들을 고치려 하는가? 변화의 이유가 개인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인가? 아니면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서 인가? 생각해 보자.

 

  우리의 삶은 산술적이지 않다. 법치의 논리 속에서 위기를 말하는 그들은 모든 삶의 가치를 손익분기점으로 획일화 시킨다. 경제논리에 의해 모든 삶의 가치들은 무시되며 산술의 폭력성 속에 매몰되어간다. 우리의 삶은 이윤이외의 소중한 부분들이 꼭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들은 인간학에 대한 정의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설명과 문제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해야 한다. 즉 대전사건과 관련하여 우리들은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역할과 권한의 중요성에 대해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올바로 투시해 보아야한다. 왜냐하면 공권력은 날이 선 검과 같기 때문이다. 특수한 힘인 공권력은 그 힘을 휘두르는 이에 따라 우리 모두를 지켜주는 울타리와 나무가 되거나 우리 모두를 멍들게 하는 몽둥이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사실을 이 나라의 민주화 역사에서 알 수 있다. 법과 제도는 우리 모두의 삶을 풍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틀이다. 법치주의는 그러한 때에만 존중받을 수 있다. 강자만을 위한 법이나 혹은 소수 권력층만을 위한 법은 이미 법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를 억압하는 힘에 지나지 않는다. 이 모든 점에 관해 우리는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정의가 무엇이며 법이 무엇인가? 모든 제도의 중심에 인간 근본이 있다. 잘 사는 것도 대상적인 사람들이 있어야 하며 나라를 이끄는 것도 나라를 지탱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특정이익과 단체들만을 위하는 나라는 더 이상 나라가 아니다. 100년도 못사는 짧은 삶 같이 배고프지 않고,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게 사는 게 어려운 일일까?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대전#노동자#법#사회#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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