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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는 환율이 올라서 걱정이더니, 이제는 환율이 떨어져 걱정이다. 미국발 경제위기가 시작되었던 작년 10월부터 폭등한 원-달러 환율은 올해 3월 1600원까지 치솟았다. 그 이후 다시 환율이 하락하기 시작하더니 지난 11일에는 1230원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미국 국채를 매입하면서 글로벌 달러 약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두 달 사이에 무려 400원이 내려갔다.

 

세계 최고의 변동성을 보이는 원-달러 환율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환율 변동은 대부분의 신흥시장국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대체로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각국의 환율이 상승했다가 이후에 다시 하락하는 추세이다. 선진국들은 위기 상황에 따라 신흥국에 투자했던 자본을 빼갔다가 다시 들여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환율 변동은 특히 심각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2009년 상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 의하면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환율 변동폭은 눈에 띄게 컸다. 먼저 작년 말과 올해 2월 말을 비교하여 환율이 오를 때를 살펴보면 우리의 환율 상승은 18.1퍼센트에 이른다. 올해 2월 말과 4월 말을 비교하여 환율이 떨어질 때를 살펴보아도 우리의 환율 하락은 18.9퍼센트에 이르렀다. 러시아가 8.4퍼센트, 대만이 5.4퍼센트에 그친 것과 비교하자면 매우 큰 폭이다.

 

 

한국에서 환율 변동은 무역에 따른 경상수지보다 자본수지, 특히 증권시장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흔히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하면 달러가 유입되어서 환율이 낮아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하는 시점과 달러가 들어오는 시점은 다르다. 많은 기업들이 선물환 거래를 통해 무역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미리 당겨쓰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 마음 따라 변하는 환율

 

금융시장의 불안이 극에 달했던 작년 10월 한국 주식시장의 경우 외국인들이 하루에 6000억 원을 팔아치우면서 대거 자금이 유출되었고, 이 때문에 환율은 폭등했다. 미국발 경제위기로 전 세계적으로 달러가 부족해지면서 외국인들이 투자했던 자금을 다시 거둬들인 탓이다.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후에는 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들의 매도가 이어져서 작년 10월 한 달 사이에 200억 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물론 환율은 폭등했다.

 

3월 이후 환율하락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올해 들어 채권시장에서 4조 9000억 원, 주식시장에서 4조 7000억 원을 사들이면서 발생했다. 다시 말해 이만큼의 달러가 국내로 유입되었다는 뜻인데, 약 70억~80억 달러 규모이다. 우리의 외환보유고가 2000억 달러를 조금 넘어서는 수준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휩쓸고 다니는 자금은 우리 경제에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는 규모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불안정한 외환시장의 변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각에서는 외환보유고를 늘리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외환시장을 조정하기 위해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외환의 양을 늘리고, 이를 통해 조정하자는 것이다. 또는 외환시장의 규모를 늘려서 변동성으로 인해 쏠리는 경향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외부충격 흡수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하지만 이런 주장은 환투기 세력의 개입을 상정하지 않았을 때 나오는 대책이다. 환율이 널뛰던 지난 3월 한 금융관계자는 "원화 값이 달러당 1400원대로 접어들면서 역외세력이 투기적 매수에 가담하기 시작했다"(<매일경제> 2009.3.17)면서 외부 환투기 세력을 환율 변동의 주범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환투기 세력들은 국내 외환시장에서 집중적으로 달러를 매수해서 비이상적인 환율 폭등을 조장했다가 고점에서 달러를 대량으로 판매하면서 환차익을 얻는 것이다. 또한 환율 변동을 이용한다면 달러 환산 한국 채권 가격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채권 매도와 매수를 통해 수익까지 올리고 있다.

 

현재 우리 외환시장에는 이런 투기세력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IMF의 요구에 의해 준비 없이 외환시장을 개방하고, 자유변동환율제로 전환한 탓이다. 1998년 우리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량은 약 40억 달러였으나 2006년에는 약 296억 달러로 거의 7배 수준으로 늘어났고, 이와 함께 외환시장의 불안정성도 증대되었다. 따라서 현재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을 잡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것은 외환시장에서 투기적 거래를 금지시키고, 외부적 요인에 의해 외환시장이 요동치지 않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외환위기를 겪었던 말레이시아는 IMF의 요구를 거부하고 일시적으로 해외 자금의 유출을 통제했다. 또한 고정환율제를 도입하여 링기트화와 달러화의 환율을 3.80링기트로 고정했다. 당시 말레이시아 정부의 행보는 가히 파격적이었다.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도 거셌다. 하지만 위기상황에서 정부가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을 통제했기 때문에 투기자본에 의한 피해를 보지 않고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 역시 단기적인 대규모 외환 반출입 등 투기적 성격이 짙은 외환거래를 적절히 규제하고,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시장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불안정 고비용의 자유변동환율제를 대신할 '신축적 BBC'

 

나아가 자유변동환율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는 "자유변동환율제에 대해 확립된 사실이 하나 있다면 환투기를 하려는 세력들에게 가장 편리한 제도라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환율을 시장에만 맡기는 자유변동환율제는 불안정하고 투기세력이 끼어들 여지도 많다. 정책당국이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을 잡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외환보유고를 풀거나 외평채를 발행하는 정도이다. 이 과정에서 들어가는 비용 또한 엄청나다.

 

이처럼 불안정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 현재 환율제도의 대안으로 제기되는 것 중 하나가 관리변동환율제도인 '신축적 BBC(Basket Band Crawl) 제도'이다. 이제까지 환율이 미국의 달러라는 일국 통화를 기준으로 결정되면서 변동성이 심했던 측면이 있기 때문에 복수의 국제통화(basket)를 한데 묶은 후 가중평균하여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의 경우에는 달러 외에도 교역량이 많은 엔화, 위안화 등의 통화를 묶어서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위기 시 달러가 빠져나간 자리를 다른 통화거래로 지탱할 수 있다.

 

이렇게 복수통화를 기준으로 정책 당국이 균형환율을 정하고, 적절한 변동 범위(band) 내에서는 시장에 의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허용한다. 변동 범위를 벗어나려는 조짐이 보이면 정책 당국의 개입이 예상되기 때문에 시장 스스로 범위 안쪽으로 이동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정책 당국의 결정을 통해 점진적으로(crawl) 적절한 수준으로 환율이 조정되면서 급격한 변동성 또한 사라지게 된다.

 

세계는 지금 금융시장을 대표로 하여, 시장의 실패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우리의 외환시장도 준비 없는 개방과 규제 완화 이후 실패를 맛보고 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외환시장의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수연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태그:#환율변동,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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