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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로만 말한다"던 판사들의 침묵이 깨지고 있다. 11일 정영진 부장판사 등 판사 7명이 법원내부 통신망에 신영철 대법관의 결단과 사법권 독립을 촉구하는 글을 올린 데 이어 12일에도 판사들의 의견 표명이 잇따르고 있다.

 

판사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데다 특히 이번 사안의 중심에 현직 대법관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판사들이 이번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윤태식 판사 "신 대법관 행위, 재판 침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냐"

 

의정부지법 윤태식 판사는 12일 '사법권의 독립을 생각하며'라는 글을 통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을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어느 형사단독 판사님으로부터 지난해 겨울에 처음으로 전해 들었을 때의 느낌은 그저 경악스럽다는 것이었다"고 심정을 밝혔다. 

 

그는 "저는 한번도 어느 누구로부터도 그러한 전화나 이메일 등을 받아본 적도 없고, 제 주위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다"면서 당혹감을 드러냈다.

 

윤 판사는 이어 "우리 솔직해집시다. 신 대법관님의 당시 원장으로서의 행위가 '재판침해', '사법권의 독립의 침해'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입니까? 사법행정권이 특정사건에 관한 재판에도 행사될 수 있는 것입니까? 도대체 어떤 행동이 이보다 더 뚜렷하게 특정사건에 관하여 담당 재판장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러한 재판침해행위가 우리가 그렇게 믿고 존경하는 분들에 의하여 저질러진 것에 대하여 당혹스럽고 믿기 힘들 지경"이었다며 "제가 분노하는 것은 명백한 재판침해행위를 그저 그분들이 조금 '오버'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관료주의적 사법부 문화와 제도"라면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신분이 보장된 대법관에 대하여 법에 정하여진 절차에 의하지 않고 사퇴하시라고 말씀드리는 것 자체가 우리가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면서도 "사법권의 독립을 명백히 침해한 분이 지금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방패를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정아 판사 "사법부는 뭔가 다를 거라 기대했는데..."

 

김정아 판사(인천지법)도 이날 '침묵을 깨는 이유'라는 글을 통해 "지금까지 사법부는 뭔가 다른 면모를 보여줄 것이라 생각하며, (이번 사태에 대해) 도출될 합리적 결과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며 "그러나 이제 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윤리위) 심의결과를 지켜보면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김 판사는 "재판의 독립을 침해할 만한 위험성이 있었다면 그 자체로 중대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사법부 구성원들 대다수가 공감하고 납득할 만한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것"인데도 "일련의 사태의 흐름을 보면, 이미 내려진 결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판사회의 등 여러 가지 절차를 거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국민들이 사법부를 불신하는 이유에 대해 "보다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해 가고 있기 때문에 정작 사법부의 권위를 내세워야 할 부분에서조차 당당하지 못한 채 스스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라고 물었다.

 

그는 끝으로 "침묵함으로써 마치 그러한 정당성 부여에 동조하는 듯 해석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이를 경계하고 희망을 만들어 가기 위해 침묵을 깨고 의사표명을 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임희동 판사 "신 대법관, 책임없다면 공개 변소해야"

 

의정부지법 포천시법원의 임희동 판사는 "신영철 대법관님께서 공개 변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판사는 "이번 사태의 핵심은 신 대법관의 중앙지방법원장으로서의 행위가 사법행정권의 범위내인지 아니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법행위인지가 초점이라고 본다"며 "이제라도 신영철 대법관님께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지 아니한 사법행정권의 범위 내에서의 지휘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나는 책임이 없다'는 소신이라면, 그 사유를 공개하는 변소를 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법행정권의 범위 내의 법원장의 지휘권과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법원장의 지위행위 사이의 한계를 토론하여 설정하는 것이 우리 법원이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신 대법관 거취 문제가 사태해결의 열쇠

 

벌써 10여 명의 판사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입을 열었다. 판사들의 이런 움직임은 촛불 재판 개입 의혹에 대한 윤리위의 결정(10일)이 나온 이후에 두드러지고 있다. 지금까지 "윤리위의 결정을 지켜보자"며 관망하던 판사들이 윤리위가 신 대법관에게 '주의·경고'를 권고하는 선에서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려 하자 극도로 실망감과 분노를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사는 "이제 평판사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 대법관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며 신 대법관의 자진 사퇴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거론했다.

 

이 판사는 신 대법관의 징계위원회 회부 문제에 대해선 "신 대법관은 판사를 사직하고 대법관 임명절차를 거쳤다. 그런데 판사(법원장) 시절의 행위에 대해 대법관을 징계위에 회부한다는 것이 적법한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번 사태는 신 대법관의 거취문제가 정리되지 않고서는 수습이 불가능한 상황이 돼버렸다. 또한 법관 독립을 위한 제도개선 등 근본 대책이 뒤따르지 않는 한 판사들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영철#촛불재판#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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