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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고야 항구
나고야 항구 ⓒ 곽형덕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1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 인구 220만 명이 사는 아이치 현 나고야 시(名古屋市).

간사이(關西, 관서) 지방과 간토(關東, 관동) 지방 사이에 낀 이 지역은 일본 내에서 매우 독특한 문화와 위상을 갖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나고야는 경상도와 서울 사이에 끼인 대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정체성도 간사이 지방의 오사카나 간토 지방의 도쿄와는 매우 다르다.

간사이 지방의 교토나 오사카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던 곳에 과거 일본의 미야코(수도)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런 이유로 도쿄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들이 쓰는 사투리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예를 들면, 오사카 지역 외의 동북지방 사람들이 TV쇼에서 표준어를 구사하는 데 비해 오사카 사람들은 자랑스럽게 '~~야', '~~헹', '혼마카(정말이냐)' 등등의 오사카 변을 구사하는 식이다.

이러한 오사카나 교토 사람들의 자부심에 대해 도쿄 사람들은 겉으로는 무시하지만 교토에 오래도록 일본의 수도가 있었기 때문에 동경하는 마음도 동시에 갖고 있다. 이렇게 간사이와 간토 지역 사람들은 서로 으르렁대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서로 프라이드를 인정해 왔다.

그러나 이들 지역에서도 나고야 사람들에 대해서는 고지식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고야성.
나고야성. ⓒ 곽형덕

나고야 사람들은 촌스럽고 고지식하다?

오사카, 교토 그리고 도쿄의 경우 과거와 현재의 수도라는 자부심이라도 있지만 나고야는 그다지 내세울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나고야 사람들은 일본 그 어떤 지역보다도 자부심과 정체성이 대단하다.

나고야 인들이 지닌 정체성의 배경은 지리적 이유를 첫째로 들 수 있다. 간사이와 간토를 잇는 길목에 위치했다는 것이 그 이유. 역사적으로 나고야는 전국통일을 이루려는 세력들의 각축장이 돼왔다.

또 나고야는 예로부터 곡창지대로 유명했다. 에도시대에는 65만 석의 쌀을 생산했다. 상인문화보다는 농번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나고야 사람들은 폐쇄적이고 고집이 센 것으로 알려져 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나고야 출신의 오다 노부나가가 버린 성을 전국통일 후에 현재의 모습으로 축성하기도 했다. 이 성은 에도시대 17대에 걸쳐 메이지 시대까지 나고야 지역을 통치했다.

 <나고야인 일본인>(이와나카 요시후미, 초사사, 2005.2) 표지
<나고야인 일본인>(이와나카 요시후미, 초사사, 2005.2) 표지 ⓒ 초사사
나고야의 역사를 말할 때 흔히 '나고야 400년사'라고 하는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나고야성을 축성하고 모든 체제를 정비한 이후를 말한다. 이때부터 나고야는 에도(도쿄)와 교토, 오사카 다음으로 꼽히는 도시로 번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고야는 에도시대보다는 근대 이후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나고야는 일본 최대의 무역규모를 자랑하는 나고야 항을 통해 일본 자동차를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으며, 도요타 자동차 관련 기업들이 대다수 상주하고 있는 세계적인 자동차 도시이다.

이런 지리적 특성으로 2005년에는 아이치 국제박람회를 유치하는 데 성공하고, 자동차 산업 특수가 이어지면서 경제도시라는 이미지 쇄신과 함께 일본 내에 나고야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나고야 붐을 타고 나온 책이 <나고야인 일본인>(이와나카 요시후미, 초사사, 2005. 2)이라는 책이다.

"나고야를 우습게 보지만 도쿄·오사카는 이제 끝이야"

- 저금하는 것을 좋아하며, 돈에 관해서 엄격한다.
- 폐쇄적인 성격이 있으며, 매우 진지하다.
- 신문은 주니치 신문, 주니치 스포츠, 야구는 주니치 드래건즈만 인정한다.
- 어릴 적 꿈은 나고야대학을 나와서, 주니치신문 등에 취직하는 것이다.

2005년 사단법인 중부개발센터에서 일본 전국의 5천여 명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한 '나고야 붐 인지도' 조사 결과다. 도쿄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나고야 사람들의 특징이 일본 전국적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나고야 학생들은 도쿄대학에 갈 성적이 돼도 나고야대학에 들어간다.

이것은 일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나고야 사람들에 대한 기초지식 비슷한 것이다. 한국에서 경상도 사람들과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특징이 거론되는 것과 비슷한 일반론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지역적 정체성은 한 지방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지만 편견으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

위에 언급한 나고야에 대한 특징은 나고야송이라고 할 수 있는 "나고야와 에에요! 야토카메"라는 노래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2004년에 발표된 코믹한 이 노래 가사를 보자. (유튜브 http://www.youtube.com/watch?v=nwxxtYCVOR4)

"도쿄는 이제 끝이라고, 더럽지, 물러 터졌지, 병이 유행하지
[중략] 세상 사람들은 나고야를 우습게들 보지만
노부나가도 히데요시도 나고야 출신이라고
[중략] 오사카도 이제 끝이야"

'넘버3' 도시 나고야는 변신 중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것은 아이치현 출신의 야마모토 마사유키(山本 正之)이다. 야마모토는 주니치 드래건즈의 응원가 작사·작곡으로 데뷔한 이래, 독특하고 코믹한 작사·작곡 스타일로 인기를 모았다. 노래를 부른 쓰보이 노리오로 역시 아이치현 출신이다.

두 아이치현 출신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이 노래는 나고야에 대한 자부심과 더불어 나고야를 외부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보여주는 것은 물론, 매우 코믹해 일본 누리꾼들 사이에서 당시 큰 인기를 모았다.

 개부 400주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나고야시 홈페이지
개부 400주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나고야시 홈페이지 ⓒ 나고야시
2010년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와리(현재의 아이치현 서부)의 번도(藩都)를 나고야로 이전한 지 400주년을 맞는 해이다. 번도 이전 400주년을 맞는 2010년을 기념해 나고야는 문화, 역사, 관광 자산을 활용한 새로운 나고야 만들기에 노력하고 있다.

2005년 아이치 국제 박람회를 계기로 이미지 쇄신을 꾀한 이후, 나고야 성 복원 등 문화와 관광의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 도시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

또 세계경제 불황이라는 난제를 돌파하기 위해 기업과 협력하여 경제회복에 주력하고 있으며, <나고야 신세기 계획 2010>을 세우고 2009년 현재 제3차 실시계획까지 실행 중이다.

하지만 나고야는 여전히 나고야성과 몇몇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일본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관광지는 아니다. 일본 내 서열 '넘버3' 도시 나고야가 앞으로 어떠한 약진을 보여줄지 2010년 개부 400주년이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 나고야는 엄밀하게 말하면 일본 3대 도시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간사이와 간토라는 권역별로 나눴을 때 아이치, 나고야 권역을 3대 권역으로 나누는 역사적 분류의 한 흐름이 있다. 이러한 권역별 도시 구분으로 나고야를 넘버3로 설정한 것이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나고야#일본#나고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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