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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인형극은 늘 해피엔딩, 권선징악만을 논해야 할까.

호주엔 특이한 인형극단이 있다. '스너프 퍼펫'. 1992년에 창단한 스너프 퍼펫은 인류의 보편가치인 자유, 평등, 환경문제 등 불편한 진실만 다룬다. 세상에서 터부시하는 것들을 상대로 무례하고, 상스럽게, 그리고 코믹하게 태클을 거는 것이다.

이들이 선보이는 인형극은 '19금'에 해당될 정도로 폭력이 난무하고, 괴기영화에나 등장할 것 같은 충격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험상궂은 인형들이 쏟아내는 신랄한 정치풍자와 거침없는 사회적 발언은 '인형극'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다.

그러나 정작 스너프 퍼펫 측은 "우리 극단의 관객은 갓 태어난 아기부터 100살이 넘은 노인까지"라며 "인형극의 충격적 상황설정은 메시지를 담아내기 위한 연극적 장치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너프 퍼펫'의 로고
'스너프 퍼펫'의 로고 ⓒ 스너프 퍼펫 제공

폭력과 정치풍자..."우리 인형극단이에요"

이들의 공연방식은 이렇다.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스너프 퍼펫의 자이언트 인형 10여명이 길거리를 떠돌면서 즉흥연기를 펼친다.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극장으로 돌아와서 무대에 선다. 그들은 길거리뿐만 아니라 선술집, 목로주점, 나이트클럽, 거리이벤트, 축제현장, 록 콘서트 등을 마구잡이로 휘젓고 다닌다. 대사보다는 퍼포먼스를 통해 극을 전달한다. 마치 한국의 마당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여기엔 1992년에 스너프 퍼펫을 창단한 세 사람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사회적 비주류를 한껏 껴안는 광대의 혼이 자이언트 인형들을 저잣거리로 떠돌아다니게 만드는 셈이다.

스너프 퍼펫의 브레드 스폴딩 매니저는 "스너프 퍼펫이 창조한 다양한 형태의 자이언트 인형들은 아나키 정신이 깃든 우스움의 센스와 화려하기 그지없는 비극적 정서를 하나로 묶어서 탄생시킨 시대의 초상"이라고 말한다.

 '스너프 퍼펫'의 작품들은 대부분 충격과 공포로 다가온다.
'스너프 퍼펫'의 작품들은 대부분 충격과 공포로 다가온다. ⓒ 스네프 퍼펫 제공

그런데 이들은 왜 '극단적 표현'을 강조할까. 스폴딩이 말하는 이유는 이렇다.

"극단적인 표현으로 충격을 몰고 온 다음, 오랜 여운과 본질적인 깨달음을 얻자는 것이다.  자이언트 인형들의 돌발적인 출현과 거침없는 사회적 발언은 무대의 확장 측면이 강하다. 극단이 갖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이벤트 형식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일부 어린이 관객 중에 극적인 장면에서 가끔 충격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스너프 퍼펫 측은 충격흡수장치로 해학을 활용하고, 절묘하게 조율한 미학적 처리 때문에, 금방 동화된다고.

 이라크 침공을 결정한 존 하워드 총리 반대시위 중인 스너프 퍼펫.
이라크 침공을 결정한 존 하워드 총리 반대시위 중인 스너프 퍼펫. ⓒ 스너프 퍼펫 제공


허름한 창고에서 세상을 평정하다

스너프 퍼펫은 1992년에 호주의 남부도시 멜버른에서 창단됐지만 그 뿌리는 행정수도 캔버라에 닿아 있다. 창단 멤버인 폴린 캔디, 사이몬 테릴, 엔디 프리어(현 예술감독) 세 명 중에서 두 명이 캔버라의 '스프린터 극단'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스너프 퍼펫 창단멤버들은 인형극단의 특성상 세상 속으로 찾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공무원과 외교관이 주로 거주하는 행정수도 캔버라보다는 호주의 문화수도로 자리매김을 한 멜버른에 둥지를 트는 게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

그들은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푸츠크레이 지역을 선택했다. 먼지 자욱하게 쌓인 허름한 창고를 빌려서 자이언트 인형을 만들고 리허설을 하던 '푸츠크레이 드릴 홀'은 지금 멜버른의 문화적 명소가 됐다.

스너프 퍼펫의 첫 번째 작품 <겁주기>(scarey)는 핏빛으로 얼룩진 무대와 거침없는 대사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겉에 드러난 충격적인 상황설정과 높은 톤의 목소리는 세상의 시선을 끌어 모으기 위한 연극적 장치였을 뿐이다.

스너프 퍼펫의 진면목은 창의성이 번뜩이는 오리지널 인형과 라이브 음악, 높은 수준의 영상미학(visual aesthetic)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렇게 일구어낸 수상기록도 화려하다.

 인형극단 '스너프 퍼펫'의 첫 작품으로, 큰 충격을 몰고왔던 '겁주기'의 한 장면.
인형극단 '스너프 퍼펫'의 첫 작품으로, 큰 충격을 몰고왔던 '겁주기'의 한 장면. ⓒ 스너프 퍼펫 제공

 반전시위에 나선 '스너프 퍼펫' 인형들.
반전시위에 나선 '스너프 퍼펫' 인형들. ⓒ 스너프 퍼펫 제공

'전쟁 반대, 환경파괴 반대' 메시지 남기고 파

이들은 인형극단을 통해 수많은 메시지를 날리고 있지만 그중 '전쟁 반대'와 '환경파괴 반대'를 가장 강조한다.

존 하워드 전 총리가 총리 시절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을 때는 하워드 전 총리의 차량 앞에 고추를 내놓은 자이언트 인형을 등장시켰고, 수많은 녹색 소 인형들이 거리를 행진하면서 환경보호를 주장하기도 했다.

2007년 멜버른에서 열린 'OECD 재무장관 회의'와 2008년 시드니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 기간에도 제3세계 국가들의 부채탕감을 호소하는 자이언트 인형극을 거리에서 펼쳤다.

이들의 최근 관심은 호주 난민문제다. 스폴딩은 호주로 밀입국하는 난민들을 돕기 위해서 지속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 관객들은 이런 스너프 퍼펫에 폭발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것이 스너프 퍼펫이 12년 동안 연방정부의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풍자와 해학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정상을 지킬 수 있는 이유다.

 호주 실업자 항의 시위에 참여한 스너프 퍼펫 '나를 $3에 사라'는 피켓이 보인다.
호주 실업자 항의 시위에 참여한 스너프 퍼펫 '나를 $3에 사라'는 피켓이 보인다. ⓒ 스너프 퍼펫 제공

 '안산 거리축제'와 '과천 어린이 축제'에 등장하는 호주 인형극단 스너프 퍼펫의 '소떼 소동' 유럽 공연 장면.
'안산 거리축제'와 '과천 어린이 축제'에 등장하는 호주 인형극단 스너프 퍼펫의 '소떼 소동' 유럽 공연 장면. ⓒ 스너프 퍼펫 제공
<스너프 퍼펫>의 한국 공연일정

▲ '숲 속의 밤'
2일(토)~4월 안산국제거리극축제 / 안산호수공원 (오후 9시)
8일(금)~9일 국립극장 KB 청소년하늘극장

▲ '소떼들'
2일(토)~4일 안산국제거리극축제 / 안산호수공원
5일(화) 과천어린이축제 / 과천시 중앙공원

▲ '코끼리'
5일(화) 과천어린이축제 / 과천시 중앙공원

덧붙이는 글 | 위 기사에는 국립극장에서 발행하는 <미르>지 4월호에 소개한 공연안내 기사와 중복되는 부분이 일부 있습니다.



#스너프 퍼펫#호주 인형극단#정치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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