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생일 맞은 일곱 아이들
생일 맞은 일곱 아이들 ⓒ 김현숙

오늘은 교실에서 뷔페식당을 열기로 한 날입니다. 3, 4월. 이런저런 일들로 쫓기느라 그동안 열어주지 못했던 생일파티를 모아서 해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온통 들떠서 가라앉히느라 한참을 씨름해야 했습니다.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편지쓰기를 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받을 수 있는 귀한 선물, 이 달에는 7명의 아이들의 생일이 들어있었습니다.  생일을 맞은 아이들과 행복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 정성껏 쓰게 하고 나서 생일책을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내가 미리 준비한 책 선물과 함께 친구들이 써준 편지를 예쁘게 생일책으로 묶어서 전달했습니다.

 생일 파티
생일 파티 ⓒ 김현숙

반 친구들이 준 축하편지를 한꺼번에 받았으니 행복할 것입니다. 편지처럼 사랑이 가득 담기는 그릇도 흔하지 않으니까요.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기쁨이고 에너지가 되어줄 것입니다. 저도 생일을 맞은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주었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자기가 받은 편지 중 가장 잘 쓴 사람을 한 명씩 고르도록 해서 그 아이들에게도 선물을 주기로 했습니다.

지난 달,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연구하다가 소원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여러 가지가 나왔는데 그중 1위가 요리하기였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중학년이라 아이들에게 요리준비를 시키려면 번거로울 것 같아서 첫 순서는 자기 집에서 한 가지씩 준비해 와서 뷔페처럼 해보자고 했습니다.

나는 뷔페식당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다는 장점에 비해 너무 번잡하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메뉴를 찾아서 오붓하게 먹는 것이 오히려 편하고 좋습니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 갈 때는 뷔페의 편리함이 필요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뷔페 식당에서 연 생일 파티
뷔페 식당에서 연 생일 파티 ⓒ 김현숙

아이들과 부모의 식성이 다르니 외식을 해도 어느 한쪽에 맞출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부모가 흩어져 먹고 다시 만난다는 가족 이야기를 듣고 어이가 없어 웃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가족들이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경우 가족들이 각종 각양의 음식들을 기호대로 골라먹을 수 있는 뷔페는 안성맞춤이기도 할 것입니다.

도시 아이들에게는 뷔페음식을 맛볼 기회가 자주 있지만 시골 아이들에겐 거의 접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씩 음식을 준비해오도록 가정통신문으로 학부모의 협조를 얻어서 생일파티를 뷔페식당놀이로 열어주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분위기를 맛볼 수 있도록, 그러면서 식사예절과 함께 서로 나누어먹는 따뜻한 마음을, 지켜야 할 음식문화를 가르치기 위한 포석도 깔려 있었습니다.

생일행사를 마치고 집에서 각자 준비해온 음식들을 모둠별로 모아놓고 뷔페식당처럼 골고루 서로 정답게 나누어먹게 했습니다. 어머니들이 친구들과 나누어먹을 수 있도록 푸짐하게 준비해준 덕분에 부족함 없이 충만하게 치러졌습니다. 시골이라서 그런지 음식 마련에서 정이 넘쳐났습니다. 부모님이 손수 마련해주신 푸짐한 음식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들로 다양했으며 모두 인기가 있었습니다. 두 아이가 가져오지 못했지만 함께 잘 나누어 먹어줘서 고마웠습니다. 어머니가 안 계신 동철이는 엎드려서 아무것도 먹을 생각을 안 했습니다. 달래고 달래서 겨우 함께 먹도록 했더니 한참 후에야 먹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준비 안 해왔으니 먹지 않으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놀이에서 자칫 상처받을까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역시 아이였습니다. 금방 웃으며 함께 어울렸습니다. 부모가 계신 준범이도 준비 안 해오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처음부터 아무렇지 않게 잘 어울렸습니다. 다행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준범이보다 동철이가 훨씬 아이다워 정이 갑니다.

어른들도 그렇지만 특히 아이들은 좋아하는 음식 먹는 일을 참 즐거워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행복해 했습니다. 어느 비싼 뷔페식당에 간들 그렇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옹기종기 앉아서들 먹으며 떠들지도 않았습니다. 몇 몇 아이들이 욕심을 부려 매너에 대한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 말고는 상차림에서부터 뒷정리까지 놀라울 정도로 아주 잘 했습니다.

오늘 생일책을 받은 민욱이는 큰 쟁반에 과일을 골고루 예쁘게, 푸짐하게 담아왔습니다. 엄마가 신경을 많이 쓴 정성이 보입니다. 복지기관인 **마을에 사는 일오와 미지는 흰떡을 맛나게 튀겨왔습니다. 범준이는 과일을 골고루 예쁘게 담아왔습니다. 부반장인 성호는 계란 한 판을 삶아서 먹기 좋게 껍질을 모두 벗겨왔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고루 나누어주고도 남았습니다.

은섭이는 엄마가 직접 가져오신다고 해서 부담을 안겨드린 것 같아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진열해놓은 음식을 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오뎅과 떡을 함께 볶았는데 국물이 있어 가져다주신 모양입니다. 고구마튀김도 맛있게, 푸짐하게 해서 보내주셨습니다. 단연 인기최고였습니다.

현범이는 유산균 음료를 학급 아이들 숫자대로 준비해 조마다 고루 나누어주었습니다. 감자는 먹기 좋게 껍질 벗겨 삶았고, 계란도 삶아서 벗겨 과일과 함께 보내셨습니다. 양준이는 김밥과 바나나를, 영준이 어머니는 치즈말이 튀김과 만두, 감자, 닭튀김을 그득하게 보내셨습니다.

지은이는 김밥, 하영이는 맛난 떡을, 지영이는 예쁜 경단밥과 과일을, 지현이는 삶은 계란, 승윤이는 야채 샐러드를, 소연이는 음료수를, 윤아는 샌드위치를 갖가지 과일꽂이로 예쁘고 푸짐하게, 미지는 과일을 푸짐하게, 모두 다 정성과 사랑이 느껴지는 음식들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음식 앞에서 상기된 아이들은 들떠서 하루 종일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생일책을 받은 아이들은 읽어보느라 음식도 안중에 없었습니다.

학부모 통신으로 쓰레기 안 나오도록 일회용은 안 된다고 부탁했더니 접시며, 젓가락, 포크  등 모두 잘 지켜주어서 전체 아이들에게서 과일 껍질 등 음식 쓰레기만 집으로 되가져가 쓰레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끝나고도 교실이 청소할 필요 없이 깨끗했습니다. 멋지고 성공적인 파티였습니다. 모두들 푸짐하게 먹고 남은 음식은 모아서 토요일 근무를 마친 선생님들의 간식으로 전했습니다.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들이 되길 소망하며 마련한 행사 자리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첨부: 학부모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행사라 일 주일 전에 미리 보낸 학부모 통신을 첨부합니다.

 학부모 통신 

*월 *일 토요일에는
  아이들의 생일파티 겸 뷔페식당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도시아이들은 수시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을 터이니
  소중한 추억과 경험의 장이 되도록 마련해주고 싶습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두 세 명의 아이들이 함께 나누어먹을 수 있는 간식을
  일회용이 아닌 그릇에 담아서 보내주시면
  멋진 뷔페식당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내가 먹는 음식으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습관도 길러주기 위함이오니
  일회용은 일체 사용하지 않도록 부탁말씀 드립니다.

  학급회의를 통해 의견을 물었더니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는데
  몇몇 아이들이 부담되는지 하기 싫어했습니다.
  그러면 과자 한 봉지라도 가져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할 수 있다고 해서
  모두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과자는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이 들어있으니
  과일 한 알이라도, 아니면 고구마 한 개,
  계란 한 개라도 삶아서 보내주셨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학부모님의 정성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방부제가 들어있지 않은
  귀한 음식을 나누는 소중한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바쁘시겠지만 기쁜 마음으로 협조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학부모님의 수고로 아이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년 *월 *일 3-* 담임 김현숙 드림


#뷔페식당#생일파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