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선물을 주고받는 일에 여태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누구의 특별한 날에 선물을 챙기는 일에 신경을 놓고 살다보니 누구에게 선물을 받는 것도 영 쑥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모티프원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는 공표를 합니다.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오시는 분은 출입이 불허됩니다. 대신 큰 얘기 보따리를 가슴으로 이고 오세요."
돌이켜보니 제가 선물을 주고받는 그 고귀한 관행에 대해 거북한 마음을 갖게 된 몇 가지 까닭을 꼽아볼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과대한 포장입니다. 잘 팩킹된 상품을 다시 값지고 화려한 포장지로 감싸고 리본을 묶기도합니다. 저는 지나치게 과포장되는 상품을 볼 때마다 이 지구에 짓고 있는 죄업이 적지 않다는 죄책감이 들곤 합니다. 꼭 선물포장이 아니더라도 이즘 배달되는 상품을 보면 하나의 인형 속에 수많은 인형들이 포개져 있는 러시아 오뚝이 인형 마트로시카(matryoshka)를 생각나게 합니다. 발포비닐을 벗기면 다시 종이 박스가 나오고, 그 박스를 개봉하면 다시 두터운 스티로폼이 나오고 그 안에 다시 종이 완충포장과 또 다른 비닐 포장을 벗겨야 비로소 상품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둘째는 선물 받는 대부분의 물품이 딱히 절박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대가 선물을 받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한 선물을 고르긴 하지만 그것은 단지 어림일 뿐이지요. 하지만 그 대강의 헤아림이 적중하지 못한 선물은 상대에게 짐이 될 뿐입니다.
셋째는 결국 빚이라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상환해야할 부채입니다. 선물에는 그 선물 이상의 반환을 바라는 기대가 담기기도 합니다. 특히 그 선물이 오가는 당사자가 업무적으로 연결되어 있거나 그 업무가 갑과 을의 종속관계라면 선물과 뇌물의 오묘한 경계를 구분 짓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로간의 관계에 윤기를 더하고 상대의 장한 일에 대한 보람을 일깨우며 격려의 마음을 전하고 선한 노력을 부추길 수 있는 마음의 선물조차 금한다면 자칫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마음을 촉촉하게 하는 푸른 잎을 모두 잃은 졸가리만 남게 될 것입니다.
제게 있어서 그 대안은 책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책은 과대포장을 하지 않아도 되며, 쓰임이 맞지 않아 버려질 염려가 없고 선물을 뇌물로 곡해할 우려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결심하셨다면 책을 고르세요. 자신이 읽어서 가슴에 파문이 남았거나 자신의 인생항로를 몇 도쯤 바꾸는 계기가 되었던, 그렇지만 지금은 서가의 한 구석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책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드문드문 밑줄이 그어졌을 그 책을 꺼내 먼지를 털고 이 책이 자신을 변화하게 한 그 사연을 메모하세요. 그리고 그것을 책갈피대신 끼워 상대에게 전하면 됩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책은 그 책의 첫 페이지에 그 분의 한마디를 다시 써서 받거나 편지글을 함께 보내주신 것이라면 그 편지를 그 책에 끼워두어 그 책을 집어든 모든 사람들이 그 편지글도 함께 읽을 수 있게 책갈피로 대용합니다.
이렇게 상대에게 책을 전한 것은 온전하게 당신의 참마음을 전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몇 캐럿짜리의 다이아몬드를 전한 것보다 더 값지고 품위 있는 선물을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상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당신을 닮아 그 책을 자신의 가장 아끼는 누군가에게 선물할 것입니다.
책이야말로 누군가의 가슴 사이를 계속 소요(逍遙)하는 여행자가 되어야합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