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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동떨어져 오로지 학문에 정진하는 곳.'

상아탑을 의미하는 말이다. 속세를 떠나 조용히 예술을 사랑하는 태도나 현실도피적인 학구 태도를 통칭하는 말로 쓰여 왔다. 이런 상아탑이 최근 상업시설에 잇따라 점령당하면서 '상업탑', '돈탑'이란 소릴 듣고 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대학 경쟁력 사업의 일환'이라며 각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외형을 부풀리기 위한 속셈이 내재돼 있다. 더 큰 이유는 돈이다. 업체를 유치하여 대학발전기금 지원 등 학교재정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러면서도 대학들은 "벌어들인 돈은 학생들을 위해 쓰여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업체와의 계약내용 공개와 수익금 내역의 투명한 회계처리 등 학생들의 요구는 외면해 빈축을 사고 있다.   

학생 지갑 노린 마구잡이식 수익사업...학생을 위해서라고?

대학 편의점 호황? <한국대학신문> 4월 17일 관련보도 내용.
대학 편의점 호황?<한국대학신문> 4월 17일 관련보도 내용. ⓒ 한국대학신문

오히려 마구잡이식 수익사업에 나서면서, 가뜩이나 비좁은 캠퍼스에 학생들의 지갑을 노린 극장, 고급 레스토랑, 할인점 등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외부 중소형 마트보다 고급스런 분위기와 차별화된 서비스와 가격을 대놓고 홍보하는 대학도 눈에 띈다.

<한국대학신문>의 17일 보도(성신여대 '대학생 전용 편의점' 대호황)에서 잘 읽혀진다. 이 대학이 최근 유치한 '유니쿱 훼미리마트'는 입점 전 대학에 발전기금까지 지원하고 있어 일거양득의 효과도 기대된다고 전했다.

"이 대학 관계자는 차별화된 서비스와 가격으로 학생들이 굉장히 좋아하고 있다"며 "발전기금도 적립할 수 있어 학교 측으로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기사는 또 "현재 이 사업에는 성신여대를 포함해 충남대·한밭대·전북대·전북대 의대·전주교대·공주대·공주교대 등 전국 9개 대학들이 참여하여 이미 지난 3월 초부터 운영 중이며, 오는 5월에는 인덕대도 참여할 예정이다"고 했다.

이에 앞서 일부 사립대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대학내부에 스타벅스와 씨네큐브 등을 지어 외부업체에 임대하는(이화여대) 등 삼성테스코와 계약을 맺어 이 업체 대형 할인점인 '홈플러스'의 교내 입점을 허가한 곳(서강대)도 있다.

각종 프랜차이즈 업체와 고급 레스토랑 체인 등이 성업 중인 대학이 '상아탑' 이미지를 포기하고 상업화를 용인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심지어 수익금이 학생을 위해 쓰이는지 여부도 논란의 대상이다. "수익사업에 열을 올리면서도 장학금은 오히려 감소했고, 등록금 중 학생복지 지출비율이 줄었다"는 학생들의 볼멘소리가 이를 증명한다. 대학의 상업화는 결국 학교만 살찌우고 있다는 주장이다.

교과부, '대학 내 판매시설 허용'...이것도 대학 경쟁력?

부산대 입구 부산대 입구의 상업시설화에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하는 학생들.
부산대 입구부산대 입구의 상업시설화에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하는 학생들. ⓒ 부산대 총학생회
이처럼 비좁은 상아탑 내부에 상업시설을 잇달아 허용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교수와 교직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편리성을 강조하는 대학 측의 입에 발린 소리뿐이다.

일부 대학에선 학생들이 나서 문제점을 제기하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지만 대학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그동안 이를 암묵적으로 묵인해 왔던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까지 대학 편에 섰으니 앞으로 대학이 연구실과 강의실을 줄이고 상업시설을 신·증축하지 말라는 법도 없게 됐다.    

교과부가 지난 14일 대학이 민자유치를 통해 시설 확충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대학 내 판매시설 등을 허용하는 '대학설립·운영 규정(대통령령)' 일부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대학들은 신났다. 이에 앞서 교과부는 지난해 12월에도 '대학 설립·운영 규정 개정안'을 마련한 바 있어 대학 내 판매시설 신·증축은 이 정부 들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 학교시설 사업에 민자유치 및 판매시설 허용 ▲ 교지에 교육시설 외 문화·복지시설 허용 ▲ 산업단지 등에 대학원대학 설립요건 완화 ▲ 학과 정원 증원시 학생수 기준 완화 ▲ 대학 부설연구소 등 연구시설을 교사에 산입 ▲ 위치변경시 교지·교사의 최소 확보 기준완화 ▲ 교원확보율 보고 횟수 추가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개정안의 핵심은 학교시설 사업에 민자유치 및 판매시설을 허용한다는 안이다. 대학 내 상업시설 건립이 가능해져 가뜩이나 혈안이 돼 있는 대학들의 민자유치 경쟁에 기름을 부어 준 셈이 됐다.

현재도 민간 투자자가 대학 내 건물을 지어 수익사업을 할 수는 있지만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의해 교원·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지원 시설로 사업 범위가 한정돼 왔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 따라 앞으로는 대학 내에 다양한 상업시설들이 들어설 수 있게 돼 신성시돼왔던 상아탑이 쇼핑센터와 대형할인점 등이 들어서 그야말로 무분별한 상업지대를 방불케 할 여지를 만들어 준 꼴이다.

개정안대로라면 대학 내 쇼핑센터·대형 할인마트 등 상업시설 건립이 허용되고 노인 및 어린이 시설·수련시설·업무시설들도 대학에 들어올 수 있게 된다. 문제는 대학가 주변의 영세 상권에 위협적인 요인이 될 수 있을뿐더러 학생들의 소비심리를 부추기는 것은 물론 교육과 연구활동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교육과 연구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업화 허용?

그 피해는 학부모들에게 전가될 소지가 높다. 게다가 그동안 대학설립 주체인 학교재단 외에는 대학 내에 비교육시설을 둘 수 없었지만 이번 개정안을 통해 대학설립 주체가 아니라도 노인 및 어린이 시설·수련시설·업무시설 등 문화·복지시설들을 둘 수 있게 됐다.     

상아탑이라는 말을 처음 쓴 19세기 프랑스 비평가 생트 뵈브가 들으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세속적인 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정적(靜寂)·고고(孤高)한 뜻을 지닌 상아탑은 현실과 거리가 먼 정신적 행동의 장소라는 개념으로 쓰여 오게 한 장본인이다. 그런데 이 개념은 사라지게 될 위기에 처했으니 그가 살아있다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해진다.

가뜩이나 17년 만에 수능성적을 공개함으로써 마치 판도라 상자를 열어 놓은 것처럼 후폭풍이 거세다. 상자 속의 서열화와 무한경쟁은 뚜껑이 열리자마자 평준화 해체와 3불제 폐지의 속도에 무섭게 힘을 보태고 있다. 

여기에 교과부는 대학들의 민자유치 및 판매시설 허용을 부추기고 나섰다. 이게 바로 이 정부가 추구하고자 했던 교육의 서열화, 대학의 상업화 정책의 본말인가.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교과부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육과 연구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학에 자율을 준 것이 입법 취지"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강의실과 연구실이 부족한 대학들이 많다. 한 지방대 시간강사가 최근 <오마이뉴스>에 쓴 '벼룩의 간을 빼먹은 국립대학교'란 제목의 글은 참담한 상아탑 내부의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지방 국립대에서 행해지고 있는 열악하고 비참한 현실을 교과부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그의 글을 교과부 관계자들은 재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대학이 시간강사에게 배정하고 있는 예산은 전체 예산에서 3%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강의는 45%를 맡기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증액하거나 강사를 줄이는 두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짐작하겠지만 저 대학은 후자를 택했다. 그래서 정규직 교수들이 더 많은 강의를 맡을 것을 강제하고 분반 확대를 불허했으며 2010년부터는 박사 학위 소지자만이 교양과목을 담당하도록 했다"

이 대학뿐만이 아니다. 대부분 지방대학 강사들이 겪는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이 대학은 "정문을 쇼핑몰 출입구로 바꾼 대학"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역시 학생들이 문제제기를 했다.

부산대 총학생회는 3월 26일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형 쇼핑몰과 관련한 여러 문제의 해결을 대학 본부 측에 요구하는 등 BTO 투자방식으로 지어진 국내 최초 교내쇼핑몰 효원굿플러스를 둘러싸고, 학생들이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는 등 '상업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간강사 처우개선 '고려', '협의', '유도', '안내' 소극적

시간강사 처우개선 소극적 <교수신문>의 시간강사 처우와 관련한 4월 20일 보도 내용.
시간강사 처우개선 소극적<교수신문>의 시간강사 처우와 관련한 4월 20일 보도 내용. ⓒ 교수신문

그러나 대학은 교수의 연구시간보다 시간강사 임금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고, 수업 환경이 나빠지더라도 상업시설을 허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듯하다. 지금도 많은 시간강사들은 연구실이 없어 빈 강의실과 캠퍼스 공터에 앉아 학생들과 상담하며 강의준비를 하고 있는 딱한 처지다. 하지만 안중에도 없다.

교과부가 민자유치로 대학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대학내 상업시설 허용'을 담은 개정안을 내놓음으로써 대학들은 쇼핑몰과 실버타운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교과부는 지난 17일 '2008년도 대학교원 현황'을 발표하면서 시간강사 처우개선 방안을 제시했지만 미흡하기 짝이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으로 교과부가 시간강사 처우개선 방안을 제시했지만 상당히 소극적임을 알 수 있다. 교과부는 ▲시간강사가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방안을 관계 부처와 협의 ▲시간강사 수업 비율 및 강의료 수준 대학정보공시 포함 ▲전임교원확보 따른 대학의 재정부담 고려해 교육전담교원과 연구교원 제도 적극 활용 등 세 가지 방안을 우선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교과부는 이날 2008년 대학교원 현황을 발표하면서 "시간강사에 대한 근본적인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 및 정원확보가 필요한 점을 고려해, 단기적으로 해결 가능한 과제를 우선 발굴해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과부는 여전히 대학들의 눈치를 보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시간강사에 대한 근본적인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 및 정원확보가 필요한 점을 고려하여, 단기적으로 해결 가능한 과제를 우선 발굴하여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대학의 전임교원확보에 따른 재정부담을 고려하여, 교육여건 개선 및 시간강사 처우개선을 동시에 견인할 수 있도록 교육전담교원과 연구교원 제도를 적극 활용하도록 안내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4대 보험' 보장을 추진한다는 것만으로도 눈부신 발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논쟁의 중심에 서왔던 시간강사들의 교원지위에 관해서는 언급이 전혀 없다. 그나마 나머지 추진방안들도 대학재정을 고려하여 협의, 또는 유도, 안내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교과부가 내놓은 이번 통계자료를 보면 2008년 4월 1일 기준으로, 전국 4년제 일반대학의 교원 1인당 학생수는 순수 전임교원만 따져 34.7명. 시간강사를 포함하면 18.2명. OECD 회원국의 교원 1인당 학생수는 평균 15.3명.(2006년) 시간강사를 모두 포함해도 OECD 회원국 평균에도 못 미치는 현실을 모르는 정부가 아니다. 근시안적 대책보다 근본 대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상업화와 서열화만 강조하고 있다.


#대학내 상업시설허용#시간강사 4대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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